인연

달리기, 우연의 탈을 쓰고 머무는 순간.

by 밀잠자리


달리다 보면 어떤 날은 늘 뛰던 익숙한 길을 택해 내 몸의 컨디션을 점검하고 페이스를 확인하지만, 또 어떤 날은 불현듯 이웃 동네의 낯선 풍경으로 무작정 핸들을 꺾고 싶을 때가 있다. 이번 주말 아침이 딱 그런 날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이라는 안전한 궤도를 이탈해, 낯선 행성을 탐험하고 싶은 충동. 나는 지도 앱조차 켜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골목을 누비고, 이름 모를 공원을 가로지르고, 널찍하게 뻗은 자전거 도로를 따라 무작정 달렸다.


날은 운이 기가 막혔다. 도심 러닝의 가장 큰 적인 신호등이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내가 다가갈 때마다 초록불로 바뀌어 길을 터주었다. 무려 40분 동안 단 한 번도 붉은 눈과 마주치지 않았다. 멈춤 없이 이어지는 쾌속 질주. 새로운 풍경으로 머릿속을 리프레시하려 했건만, 아이러니하게도 멈추지 않는 다리는 오히려 나에게 나의 깊은 기억 속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늦가을 청명한 공기와 처음 보는 낯선 거리의 풍경이, 역설적으로 내 안의 오래된 과거를 영사기처럼 촤르륵 펼쳐 보일 기회를 준 것인지도 모른다.


약 8km쯤 달렸을까, 드디어 빨간불이 내 발목을 잡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땀을 닦고, 무심코 고개를 들어 표지판을 본 순간, 나는 온몸에 전율이 일듯 소름이 돋았다. 초록색 표지판에 선명하게 적힌 하얀 글씨. Marathon Dr.(마라톤 길) , 애비뉴(Avenue), 불러바드(Boulevard), 로드(Road), 웨이(Way)… 수많은 길의 단위 중에서도 드라이브(Drive)는 묘하게 역동적이고 낭만적이다. 내가 사는 이 넓은 산호세의 그 수만 개의 길 중에서, 오늘 유일하게 나를 멈춰 세운 곳이 하필 마라톤 길이이라니.


누군가는 "겨우 그런 우연에 무슨 운명 타령이냐"며 싱겁게 웃을지 모른다. 하지만 러너라면 알 것이다. 길 위에서의 우연은 종종 계시처럼 다가온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만큼은 이 우연을 필연으로 해석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방금 전까지 내가 왜 달리게 되었는지, 그 길 위에서 어떤 인연들을 스쳐 왔는지를 되뇌며 달려왔기 때문이다. 빨간불로 멈춰 있는 그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내 기억의 필름은 아주 먼 과거로 되감겼다.


어린 시절의 나는 명백한 약골이었다. 동네 아이들의 골목 놀이에서 나는 늘 '깍두기' 신세였다. 술래잡기, 오징어 게임, 다방구… 친구들의 옷자락을 잡고 필사적으로 늘어져도 힘이 없어 옷만 찢어먹고, 저녁이면 엄마에게 등짝을 맞기 일쑤였다. 학교 운동회는 나에게 축제가 아니라 공개 처형의 날이었다. 6명이 뛰면 6등, 8명이 뛰면 7등(한 명이 넘어지면). 출발 총성이 울리면 아이들은 화살처럼 튀어 나가는데, 내 다리는 마치 물속을 달리는 것처럼 무거웠다. 결승선에서 공책 한 권이라도 받아보는 게 소원이었던 아이. 키가 좀 자란 중학생 때도 체력장은 굴욕의 연속이었다. 50명 중 48등. 내 인생의 전반전에 '달리기 재능' 혹은 '운동신경'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평생 책상에 앉아 펜이나 굴리며 살 운명이라고 믿었다.


그랬던 약골 소년이 처음으로 앞사람의 등을 추월해 본 짜릿한 경험은 군대에서였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에서 의경 생활. 가끔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근무를 선다는 건 낭만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실상은 매일 아침 모래사장을 달리는 지옥의 구보였다. 푹푹 빠지는 모래밭을 근본을 알수 없는 쿠션의 보급품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고통. 그곳엔 인간 병기 같은 선임들이 있었다. 특히 나의 직계 선임이자 군 생활의 아버지라 불렀던 명건 수경. 그는 중대 최고의 스프린터였다. 탄탄한 근육질의 몸으로 모래사장을 가볍게 박차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은 나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나는 살기 위해, 그리고 인정받기 위해 그를 따라 뛰었다. 폐가 터질 것 같고 다리가 끊어질 것 같아도, 그의 발자국을 밟으며 6개월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구보 마지막 전력 질주 구간. "으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마지막 힘을 짜냈는데, 내 시야 옆으로 명건 수경의 어깨가 스쳐 지나갔다. 내가 그를 앞지른 것이다. "오, 제법인데?" 그의 인정 어린 한마디. 꾸준히 따라다니면 는다.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를 나는 그때 몸으로 배웠다. 재능 없는 놈도 땀을 흘리면 할수는 있다는 사실을.


사회에 나와서도 그 작은 불씨를 꺼트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직장 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야근과 회식, 스트레스에 찌들어 배는 나오고 체력은 바닥을 쳤다. 그때 점심시간의 틈새를 공략해 나를 헬스장으로, 러닝머신 위로 끌고 간 사람들이 있었다. 한석 선배, 그리고 환 부장님. 우리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땀을 흘렸다. 옆 러닝머신에서 헉헉거리며 달리는 부장님의 모습은 결재 서류 앞에서의 근엄함과는 달랐다. 우리는 서로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동지애를 느꼈다. 기록은 형편없었지만, 점심시간 30분~1시간의 짬을 내어 함께 땀 흘리는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함께 달리는 행복은 언제나 내 인생의 최고 기록이었다.


이직 후 낯선 땅 유럽, 알프스 자락으로 갔을 땐 달리기의 의미가 또 한 번 바뀌었다. 그곳에서 달리기는 운동이 아니라 여행이자 치유였다. 자영이 형, 규찬 형, 일본인 친구 에이지 상, 그리고 독일인 친구 스테판. 우리는 황금빛 밀밭 사이 달리고, 공원이 되어버린 활주로위를 달리고, 겨울에는 달릴수 없는 눈 덮인 숲속을 크로스컨트리 스키로 단련을 했다. 숨이 차오르면 멈춰 서서 알프스의 만년설을 바라보았고, 서로 다른 언어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Beautiful!", "Wunderbar!", "스고이!", "죽인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감동은 하나였다. 기록 단축이나 경쟁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그저 달리기가 자연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가장 완벽한 방법임을 그때 깨달았다. 내 인생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러닝의 한 페이지다.


그리고 다시 이곳, 캘리포니아로 왔다. 사계절 언제나 운동화만 신으면 달릴 수 있는 러너들의 천국. 이곳에서 나는 또 다른 인연들을 만났다. 초기에 만난 한열이 형과는 국밥과 막걸리를 걸고 달렸다. "형, 이번주 마일리지는 제가 좀더 힘써볼께요!" 그 단순한 내기에 목숨 걸고 달리며, 우리는 실리콘밸리라는 치열한 정글 속에서 생존 신고를 했다. 현실감 없는 집값과 물가, 끝없는 경쟁 속에서 달리기는 우리가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정직한 성취감을 주는 행위였다.


초보 마라토너 셋이 모여 코마(KOMA, KOrea MArathon)라는 소박한 클럽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우리는 그저 "완주만 하자", "다치지만 말자"고 외치는 즐거운 러너들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점쟁이의 예언처럼 동쪽에서 귀인이 나타났다. 닉네임 무당벌레 님. 그분은 진짜배기였다. 체계적인 훈련 이론과,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가 보여주는 성실함은 우리 같은 '마린이(마라톤 어린이)'들에게 충격이었다. "그냥 뛰는 게 아니에요. 오늘은 빌드업, 내일은 LSD, 모레는 리커버리..." 그분의 지도 아래 우리는 비로소 '훈련'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나는 어설픈 날갯짓을 하던 밀잠자리가 되었고, 멤버들은 딱정벌레가 되고, 마린이가 되어 각자의 색깔을 찾아갔다. 작은 동호회는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한인 러닝 클럽으로 성장했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땀 흘리는 것을 넘어, 멘탈 관리와 영양 섭취, 그리고 카본화의 반발력을 논하는 '진지한 러너'가 되었다.


오늘 이 낯선 Marathon Dr. 표지판 앞에서 신호가 바뀔 때까지, 나는 이 긴 인연의 파노라마를 보았다. 의경시절 모래바람부터, 알프스의 차가운 공기,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까지. 내가 밟아온 모든 길 위에는 항상 누군가가 함께 있었다. 나를 끌어주던 선임, 함께 땀 흘리던 동료, 풍경을 공유하던 친구, 그리고 지금 내 옆에서 함께 호흡하는 KRUN 멤버들. 고맙게도 최근에는 같은 보석 같은 멤버들이 계속해서 이 클럽으로 모여들고 있다. 서로 다른 직업, 다른 나이, 다른 배경을 가진 우리가 '달리기'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모여 만들어내는 이 에너지가 얼마나 경이로운가. 어린 시절 꼴찌를 도맡아 하던 약골 소년은 이제 없다. 대신, 42.195km를 완주하고, 누군가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고, 함께 달리는 기쁨을 아는 중년의 러너가 서 있다. 이것은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러닝메이트'들이 내 등 뒤를 밀어주고, 옆에서 함께 뛰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호등이 다시 초록불로 바뀌었다. 나는 땀을 닦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이 Marathon Dr. 가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모른다. 끝이 막다른 길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넓은 도로와 만날 수도 있다. 내 발밑에는 과거의 인연들이 깔아준 단단한 추억의 아스팔트가 있고, 내 앞에는 앞으로 만날 새로운 인연들이라는 설레는 풍경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 길은 무조건 재미를 보장하는 '꽃길'이 될것 같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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