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운동 하니 ?
러너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받아봤을 질문이다. 너는 그 힘든 걸 도대체 왜 해. 대답은 제각각이다. 그냥 재밌어서, 헬스장 끊기 돈 아까워서, 기안84가 마라톤 뛰는 거 보고 삘 받아서, 뱃살 좀 빼보려고, 혹은 의사 선생님이 당 수치 위험하대서 등등. 겉으로는 이렇게 쿨하고 단순하게 대답하지만, 나는 안다. 그 대답들 이면에는 저마다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말로 다 하지 못한 철학적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오늘은 그 의미라는 녀석을 좀 파헤쳐 볼까 한다. 우리가 사서 고생하는 이 달리기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외재적 목표. 일명 관종의 영역이다. 이건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를 좇는 것이다. 대회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달성해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거나, 번쩍이는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인증샷을 찍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와, 너 풀코스 뛰었어? 인간이야?라는 찬사를 듣는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솔직히 말해보자. 우리 모두 마음 한구석엔 좋아요를 갈구하는 귀여운 관종이 살고 있지 않은가. 나 역시 스트라바에 기록 올리고 엄지척 알림이 울릴 때마다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는 걸 부정하지 않겠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타인의 인정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강력한 초기 연료 중 하나니까.
둘째, 과정 지향적 목표. 일명 갓생의 영역이다. 달리기를 통해 어제보다 더 건강해지는 내 몸을 느끼고, 훈련 계획을 짜면서 흐트러진 일상을 테트리스 맞추듯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러닝 크루에 나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끝나고 시원한 맥주 한잔하며 오늘 페이스 좋았어라고 서로 둥가둥가 해주는 사회적 교류도 포함된다. 그리고 달리기라는 운동의 메커니즘을 공부하며 아, 이래서 미드풋 착지를 해야 하는구나, 케이던스는 이렇게 조절하는구나 하며 혼자 뿌듯해하는 지적 유희까지. 이 단계에 이르면 주변에서 너 요즘 얼굴 좋아졌다?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는 감각, 그것이 주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크다.
셋째, 내재적 목표. 일명 해탈의 영역이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명상하듯 달리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통 속에서 역설적인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강인한 정신력을 다듬고, 그냥 달리는 행위 그 자체가 주는 순수한 즐거움, 즉 러너스 하이에 취하는 단계다. 이쯤 되면 남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운동화를 신는다. 주변에서는 독하다고 혀를 내두르지만, 본인은 그저 행복하다.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니오, 저는 달리기를 압니다라고 대답할 경지다.
미국 엘리트 체육계에서는 12세 전까지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성과 목표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너 이번에 1등 못 하면 코치 볼생각 하지마 라고 윽박지르는 대신, 친구들이랑 공 차니까 재밌지?라며 운동 자체에 흥미를 느끼게 유도한다. 그래야 지속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기초 체력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마치 구구단도 못 외우는 애한테 미적분 풀라고 하면 수학을 포기하는 수포자가 되듯이, 운동도 마찬가지다. 재미를 먼저 느껴야 나중에 코칭도 받고 고강도 훈련 프로그램도 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같은 사회인 러너, 즉 다 커버린 어른이들도 똑같다. 달리기가 재밌네?라는 입문 단계에서 평생 달려야지라는 지속 가능한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 걸린다. 썸 타다가 연애하고 결혼까지 골인하는 과정이 쉽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내가 꾸준히 재미를 느끼고 있는지, 권태기는 안 왔는지, 바쁜 야근과 회식 속에서도 달리기가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밀당을 해야 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조급하다. 성과를 빨리 보고 싶어 하고, 돈으로 시간을 사고 싶어 한다.
종종 이제 막 런닝화 끈 묶기 시작한 런린이 분들이 벌써 고수 반열에 오른 러너들을 흉내 내는 경우를 본다. 세계적인 선수 킵초게가 신는다는 수십만 원짜리 카본화를 지르고, 월 300km 마일리지 채우겠다고 덤비는 그 의욕, 충분히 이해한다. 장비빨이라도 세우고 싶은 그 마음, 나도 겪어봐서 안다. 하지만 냉정하게 자문해보자. 과연 그들처럼 밥 먹고 달리기만 할 수 있는가. 내 무릎 관절과 발목 인대는 그 충격을 견딜 준비가 되었는가. 카본화의 반발력을 감당할 근력이 없는 상태에서 신는 고성능 신발은, 초보 운전자에게 페라리 핸들을 쥐여주는 것과 같다. 준비 없이 욕심만 앞세우면 몸은 금세 주인놈아, 나 안 해!라며 파업, 부상을 선언하고, 멘탈은 바사삭 부서진다. 그래서 내가 오지랖 넓은 러너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결국 꼰대 같지만 하나로 귀결된다. 그냥 재밌게, 꾸준히만 하세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앞서 말한 세 가지 목적, 관종, 갓생, 해탈 중 어느 하나라도 마음에 품고 달린다면, 분명 소기의 성과는 거둘 수 있다. 다만, 기록이나 메달 같은 관종의 영역에만 올인한다면 위험하다. 기록이 안 나오면 세상이 무너진 것 같고, 대회가 없으면 뛸 의욕이 사라지는 번아웃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목표는 현실적으로 잡고, 내일 당장 서브3 하겠다는 건 망상이다, 오늘 하루 땀 흘린 그 과정 자체를 성취로 여기는 정신 승리가 필요하다.
하루 한 번쯤은 달리기가 나에게 무엇을 주는지 메뉴판 고르듯 생각해 보자. 끼니 때우듯 의무적으로 아, 오늘 뛰어야 하는데 귀찮아 죽겠네라고 하지 말고, 오늘은 스트레스받았으니 매운맛 인터벌 훈련으로 확 풀어버릴까? 혹은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달달한 조깅으로 힐링해볼까? 이렇게 나에게 특별함을 주는 달리기를 골라보는 거다. 내가 주체가 되어 달리기를 요리할 때, 비로소 우리는 달리기에 끌려다니지 않고 달리기를 즐길 수 있다.
정리하자면, 롱런하는 사회인 러너가 되기 위한 레시피는 간단하다. 첫째, 즐거울 것. 재미없으면 그건 노동이다. 둘째,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시간 없다는 핑계는 그만하자. 넷플릭스 한 편 안 보면 되고, 술자리 한 번 안 가면 된다. 셋째, 현실적인 목표를 가질 것.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다리 찢어진다는 속담은 러닝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명언이다. 넷째, 자율성을 가질 것. 누가 시켜서 하면 숙제지만, 내가 하면 취미다.
주변을 둘러보면 좋은 롤모델들이 널려 있다. 멀리 있는 전설적인 선수들만 쳐다보지 말자. 동네 공원에서 묵묵히 뛰는 아저씨, 유모차 밀면서 달리는 슈퍼맘, 배 나왔지만 포기하지 않고 완주해내는 옆집 형. 그들이 진짜 우리의 스승이다. 그들은 엘리트 선수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 바로 생활인으로서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운동화 끈을 매는 의지다. 당신 역시 인생의 다른 분야에서는 누군가의 좋은 본보기가 된 적이 있지 않은가. 회사에서 어려운 프로젝트를 성공시켰거나, 아이를 바르게 잘 키워냈거나, 하다못해 게임 레벨이라도 만렙을 찍어봤다면, 그 성취의 기억을 달리기에도 대입해 보는 거다. 나, 왕년에 한가닥 했던 사람이야!라는 그 근자감이 달리기를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된다.
단지 살 좀 빼려고, 혹은 심심해서 가볍게 운동화 신은 분들에게는 써 놓고 보니 너무 과한 잔소리, TMI가 된 것 같다. 아저씨, 말이 너무 많아요. 그냥 뛸게요라고 하신다면 할 말 없다.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