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꾸준한 그것에 중독되기.
2025년 4월 21일.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고풍스러운 도시 보스턴은 다시금 거대한 심장 박동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제129회 보스턴 마라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대회에 올해도 어김없이 약 3만 명의 러너들이 집결했다고 한다. 뉴스 앵커들은 무심하게 참가자 수가 3만 명이라고 보도하지만, 그 숫자의 무게감을 아는 사람들에게 그건 단순한 통계치가 아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인가. 전 세계 각지의 동네 공원, 강변, 트랙에서 아, 그 사람? 달리기 좀 하지라고 인정받는, 이른바 동네의 전설, 로컬 레전드들이 한 자리에 모인 셈이다. 그들은 서울의 한강변을 달리던 김 부장님일 수도 있고, 런던의 하이드 파크를 달리던 제임스 씨일 수도 있으며, 도쿄역 주변을 돌던 다나카 상일 수도 있다. 각자의 동네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운동화 끈을 조여 매던 그 끈기의 화신들이, 보스턴이라는 성지에서 조우하는 것이다.
물론 그 3만 명 중에는 타고난 심폐 지구력과 탄력 넘치는 근육을 가진 천재들도 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목격해 온,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보스턴 참가자들은 명백히 후자에 속한다. 그들은 평범한 직장인이고, 주말이면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녹초가 되는 누군가의 엄마이자 아빠다. 그들이 오직 보스턴이라는 목표 하나를 위해, 지난 2년 혹은 3년의 시간 동안 흘린 땀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할 것이다. 새벽잠을 줄이고, 회식 자리에서 술잔을 내려놓고, 기록을 1분, 아니 단 1초라도 깎아내기 위해 헐떡이는 숨을 삼키며 마침내 자격(BQ)을 얻어내는 과정. 나는 그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과정을 생생히 목격해 왔다.
그래서일까. 보스턴 마라톤이 뿜어내는 그 엄청난 바이브는 단순히 128년이라는 숫자가 주는 권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3만 명의 러너가 각자의 삶에서 길어 올린 인내의 시간과 뜨거운 열정, 그리고 극한의 고통 끝에 얻어낸 희열이 보스턴의 거리 42.195km 위에서 한꺼번에 폭발하며 만들어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에너지장이다. 그 현장에 서 있으면, 공기 중의 산소 농도조차 다르게 느껴진다. 날숨에 섞인 열기와 들숨에 섞인 의지가 뒤섞여, 가만히 서 있어도 심장이 덩달아 뛰게 만드는 마법 같은 공간이 된다.
생각해보면 마라톤은 참으로 독특하고도 민주적인 스포츠다. 다른 종목들과 비교해보면 그 특이점이 더욱 명확해진다. 축구광이 아무리 공을 잘 찬들, 손흥민 선수가 뛰는 프리미어리그 경기장에 난입하여 함께 뛸 수 있을까. 골프 싱글 플레이어가 아무리 샷 감각이 좋은들, 마스터스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와 한 조가 되어 티샷을 날릴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벽은 높고, 그들이 서는 무대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마라톤은 다르다. 세계 신기록을 보유한 킵초게 같은 프로 선수와, 이제 막 풀코스에 도전하는 일반인도 같은 날, 같은 코스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달릴 수 있다. 물론 출발 그룹은 다르고 시간차는 존재한다. 그들이 이미 결승선을 통과해 인터뷰를 할 때, 나는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며 사투를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아스팔트를 밟았고, 같은 언덕을 넘었으며, 같은 바람을 맞았다. 공간과 시간을 공유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무엇보다 1등으로 들어오나 꼴찌로 들어오나, 길가에 늘어선 시민들과 가족, 친구들의 환호는 공평하게 쏟아진다. 당신의 완주를 축하합니다라는 진심 어린 박수. 이것이야말로 마라톤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최고의 특권이자 낭만이다.
이런 벅찬 감동을 오래도록 느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얼마 전 클럽 동료들과 뒤풀이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는가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운동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루한 설교는 생략하겠다. 건강에 좋다, 살이 빠진다 같은 이야기는 이미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을 테니까. 중요한 건 지속 가능성이다.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고, 달리기를 평생의 친구로 삼기 위한 나만의 짧은 개똥철학 세 가지를 공유해 볼까 한다.
첫째, 달리기 영혼의 단짝을 찾아라.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자. 학교가 공부하러 가는 곳이기도 했지만, 사실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즐거움이 더 크지 않았던가.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업무가 힘들어도 동료와 나누는 커피 한 잔, 뒷담화의 시간이 버팀목이 된다. 달리기 판에서도 그런 동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서로의 목표를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부상의 아픔이나 기록 단축의 기쁨 같은 희로애락을 공유하며, 때로는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존경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혼자 뛰면 고독한 운동이지만, 같이 뛰면 문화가 된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함께 달리는 동료가 있다는 건, 알람 소리에 이불을 박차고 나갈 명분이 생긴다는 뜻이다. 요즘은 소셜 미디어와 지역 기반의 러닝 클럽이 워낙 잘 활성화되어 있다. 마음만 먹으면 나를 자극해 주고 이끌어 줄 러닝 소울메이트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 내가 힘들 때 내 등을 밀어주고, 그가 힘들 때 내가 앞에서 끌어주는 관계. 그런 관계 속에서 달리기는 노동이 아니라 놀이가 된다.
둘째, 몸은 영혼을 담는 정직한 그릇임을 기억하라. 주변에 성숙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책을 읽고 종교 생활도 하며, 때로는 명상을 통해 내면의 성장을 꾀하는것을 봤다. 물론 이것들은 정신을 수양하는 훌륭한 방법들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누군가를 보며 많이 성숙했다, 성장했다고 말할 때의 상황을 곰곰이 살펴보면, 대개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이나 시련을 겪은 후인 경우가 많다. 마음의 성장은 종종 아픔과 상처를 담보로 한다. 찢어지고 아물면서 단단해지는 것이다. 반면, 육체의 성장은 훨씬 직관적이고 정직하다. 딱 한 분기, 그러니까 3개월만 눈 딱 감고 꾸준히 달려보라. 우리 몸은 거짓말처럼 반응한다. 툭 튀어나왔던 뱃살이 들어가고, 헐떡이던 숨통이 트이며,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에서 리즈 시절의 핏이 돌아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정신 승리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데이터다. 엔지니어링에서 투입 대비 산출이 확실한 시스템을 선호하듯, 육체의 변화는 내가 흘린 땀방울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몸이 건강해지면 정신도 맑아진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고, 부정적인 생각들이 땀과 함께 배출된다.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지는 윈윈 전략이다. 처음엔 건강을 위해 의무감으로 뛰었지만, 어느 순간 어라? 재밌어서 뛰다 보니 덤으로 건강해졌네?라는 경지에 오르게 된다.
셋째, 축제의 현장에 몸을 던져라. 꼭 보스턴 마라톤처럼 거창한 해외 대회가 아니어도 좋다. 집 근처 공원에서 열리는 소규모 마라톤 대회라도 좋으니, 일단 구경이라도 가보길 권한다. 출발선 앞에 선 러너들의 긴장된 표정, 총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가는 인파, 거친 숨소리, 그리고 피니시 라인에서의 환호. 그 뜨거운 열기 속에 서 있다 보면, 어느새 내 가슴속에서도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도 모르게 내 가슴에 번호표를 달고 저들과 함께 달리는 상상을 하게 된다. 주로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서로 눈을 맞추며 화이팅!을 외치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순간, 우리는 묘한 연대감을 느낀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느꼈던 그 전율, 너와 내가 하나라는 그 뜨거운 감동을 다시 맛보게 될 것이다. 축제는 구경하는 것보다 참여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행복을 관장하는 4대 호르몬이 있다고 말한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 터지는 쾌락의 도파민, 마음의 평온함과 만족감을 주는 세로토닌, 타인과의 신뢰와 유대감을 느끼게 하는 옥시토신, 그리고 극한의 고통을 이겨낼 때 뇌에서 분비되는 천연 진통제 엔돌핀. 놀랍게도 달리기를 하면 이 네 가지 호르몬이 종합 선물 세트로 쏟아진다. 계획한 거리를 완주했을 때의 도파민, 아침 햇살을 받으며 달릴 때의 세로토닌, 동료들과 함께 땀 흘리며 나누는 옥시토신, 그리고 사점(Dead Point)을 넘어설 때 솟아나는 러너스 하이의 주역 엔돌핀까지.
세상에 나쁜 중독이 많다지만, 이런 행복 호르몬 칵테일에 중독되는 거라면, 나는 기꺼이 평생 중독자가 되기를 자처하겠다. 이보다 더 건강하고, 이보다 더 확실하며, 이보다 더 합법적인 쾌락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