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는 딸아이에게 훈수를 둘 때면, 나도 모르게 내 안의 숨겨진 코치 자아가 튀어나오고 한다. 야, 거기서는 동작을 좀 더 크게 해야지! 세계적인 선수들 영상 봤잖아? 그 사람들처럼 우아하면서도 힘 있게, 응? 상상을 해보란 말이야.
내 딴에는 좋은 동기부여가 되라고, 목표를 높게 잡으라고 던지는 말이지만, 막상 듣는 딸아이의 표정은 미묘하다. 그도 그럴 것이 딸아이가 하는 바통 트월링(Baton Twirling)이라는 종목은 내 말처럼 단순히 흉내만 낸다고 되는 만만한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바통 트월링을 단순히 퍼레이드에서 행진하며 봉을 돌리는 치어리딩 정도로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이다. 이건 리듬체조의 유연성, 발레의 우아함, 그리고 기계체조의 폭발적인 근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종합 예술 스포츠다. 지름 1cm 남짓한 얇은 금속 봉(바통)을 공중으로 수 미터나 던져 올리고, 그사이에 텀블링이나 회전을 한 뒤, 떨어지는 바통을 보지도 않고 등 뒤로 받아내야 한다. 손가락 사이로 바통을 쉴 새 없이 돌리면서도 미소는 유지해야 하고, 발끝은 항상 포인트(Point) 상태여야 한다. 중력과 싸우면서 동시에 음악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 그야말로 극한의 신체 조절 능력을 요하는 종목인 것이다.
그러니 아빠라는 사람이 옆에서 엘리트 선수처럼 해봐라고 훈수를 두는 게 얼마나 현실 감각 없는 소리였겠는가. 그 어려운 기술 하나를 익히기 위해 아이가 쏟았을 수천 번의 땀방울과 멍 자국을 알기에, 결국 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오면 나는 꼬리를 내리고 이렇게 말해준다. 딸, 여태껏 정말 열심히 준비했잖아. 대회장 가서는 누구 흉내 내려고 하지 말고, 그냥 연습한 만큼만 해. 너 자신이 되어서 즐기고 와. 그러면 결과가 어떻든 아빠는 절대 실망 안 해.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니까.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딱 해왔던 만큼만 보여주는 것. 그것이 후회를 남기지 않는 유일한 비결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딸에게는 그렇게 의젓하게 말해놓고, 정작 나 자신의 달리기에서는 그게 잘 안 된다. 달리기를 갓 시작한 초보 시절, 우리는 유튜브에서 엘리트 선수들의 영상을 찾아보며 눈을 높인다. 킵초게의 주법을 분석하고, 그들이 신는다는 카본화를 사 신으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주변에 잘 달리는 고수들을 보면 나도 당장 다음 달에는 저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구치기도 한다. 좋은 자극제가 되고 동기부여가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달리기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정직하다. 내가 바라는 그 속도와 거리는 단순히 마음만 먹는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다. 밥을 짓듯이 뜸을 들이고, 벽돌을 쌓듯이 꾸준히 마일리지를 쌓아 내 근육과 심장을 튜닝해야만 비로소 내 것이 된다. 남들이 뛴다고 해서 뱁새가 황새 따라가듯 보폭을 찢다가는 햄스트링만 찢어질 뿐이다.
문득 몇년전, 그러니까 2022년 6월의 뜨거웠던 여름이 생각난다. 그때 나에게는 달리기의 은인과도 같은 멘토, 닉네임 무당벌레님이 계셨다. 그해 여름, 우리는 매주 주말마다 트레일에 나가 함께 달렸다. 오늘처럼 혼자 그 트레일을 뛰다 보니 당시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당시 무당벌레 님의 연습 페이스는 1마일당 9분 초반대였다. 지금 생각하면 조깅 페이스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그 속도가 얼마나 버거웠는지 모른다. 숨은 턱 끝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워지는데, 옆에서 무당벌레 님은 평온한 얼굴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셨다. 나는 대꾸할 힘도 없어 헉, 헉 소리만 내면서도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나는 할 수 있다. 오늘 훈련량 다 채울 수 있다. 죽지 않는다.
그렇게 그분의 뒤꽁무니를 쫓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던 시간들. 신기한 건,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나는 묘하게 신이 나 있었다는 점이다. 불과 몇 년 전보다 내가 훨씬 잘 달리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이 고수처럼 언젠가는 나도 편안하게 달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나를 춤추게 했다. 그때 나는 세계적인 마라토너들, 그리고 내 옆의 무당벌레 님을 보며 나도 꼭 저렇게 되고 말 거야라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나도 제법 '러너' 태가 나기 시작했다. 꿈에 그리던 보스턴 마라톤 자격(BQ)을 획득했고, 내가 사는 지역 대회에서는 몇 번이나 포디움 위에 올라서는 짜릿한 순간도 맛보았다. 아마추어 러너로서 가질 수 있는 소기의 목표들은 어느 정도 이룬 셈이다. 기록 단축이 주는 도파민은 강렬했고, 남들에게 나 좀 달립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훈장 같았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제는 누구처럼 빠르게 달리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어떻게 하면 앞으로 40년 동안 아프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한다. 나는 6대 마라톤을 모두 완주할 것이고,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손주들에게 할아버지랑 5km 뛸까라고 제안할 수 있는 건강한 노인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을 의식하는 속도 경쟁보다는, 내 몸이 편안해하는 리듬,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그 순간들에 더 집중해야 함을 깨닫는다. 이것이 바로 나다운 달리기, 나를 위한 달리기다.
다시 무당벌레 님, 그리고 주변에 오랫동안 묵묵히 달려온 친구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은 이제 구태여 말로 나 잘 뛴다고 떠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과 눈빛, 그리고 매일매일 쌓여가는 스트라바 기록에는 어떤 경지에 이른 자들만의 아우라가 있다. 성실함이 빚어낸 여유, 그리고 달리기를 진정으로 즐기는 바이브가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온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달리기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가 아니라, 나와 나누는 긴 대화라는 것을.
글이 길어졌다. 글쓰기 책을 보면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고 근거를 대야 설득력이 있다고 하던데, 나는 천생 엔지니어라 그런 문학적 재능은 영 없는 모양이다. 주절주절 서론이 길었지만, 더 늦기 전에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바통 트월링을 하는 내 딸이 수천 번 바통을 떨어뜨리며 자신만의 기술을 완성해가듯, 나 또한 남의 속도에 기죽지 않고 묵묵히 나만의 마일리지를 쌓아가려 한다. 엘리트 선수가 아니어도 좋다. 금메달이 아니어도 좋다. 나는 그저 나의 호흡으로, 나의 보폭으로, 가장 나다운 달리기를 하고 싶다. 그렇게 달리는 내 모습이, 꽤 괜찮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