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건강 하세요.
미국에서 신정은 딸아이의 짧은 겨울방학 기간이라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쓰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이에 아빠로서의 의무가 막중한 날이다. 하지만 구정은 다르다. 이곳에서 구정은 공휴일이 아니기에 학교는 정상 수업을 하고, 아시아계 사람들만이 퇴근 후 조용히 각자의 전통을 지킬 뿐이다. 즉, 나에게는 비교적 자유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나는 신년을 맞이해서 기념이 될만한 달리기를 해볼 심산이었다. 아니 핑계로 뛰고 싶었다고나 할까. 또는 새해 뽕을 받았었을수도 있었던것 같다.
한국 시간으로 설날 당일이자, 이곳의 금요일 오후. 날씨가 기가 막히게 맑았다. 처음엔 가볍게 펀런이나 할까 했는데, 2024년이라는 숫자에 꽂히고 말았다. 그래, 20.24를 뛰는 거야! 문제는 단위였다. 마일로 환산하면 약 32.5km. 지금 내 수중엔 물 한 모금, 에너지 젤 하나 없다. 이 상태로 32km를 뛰다간 객사하기 딱 좋다. 나는 빠르게 타협했다. 그래, 우린 미터법을 쓰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지. 그렇게 20.24km를 했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 동생, 친구들의 안녕을 빌며 달리다 보니, 금요일 오후의 햇살만큼이나 마음이 훈훈해졌다.
이곳 시간으로 설날 당일 아침. 토요일. 창문을 여니 하늘이 짙푸른 색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이래도 안 뛸 거야?”라고 묻는 듯한 저 하늘. 결국 유혹에 넘어갔다. 어제 뛰었으니 오늘은 힘들 법도 한데, 시작부터 작정하고 다시 20.24km를 찍기로 했다. 이틀 연속이라 무리하지 않고 이지 런으로. 조용한 토요일 아침, 깊어가는 하늘을 보며 달리는 기분은 묘했다. 시력만 좋다면 저 하늘 너머 화성, 목성, 토성하고도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명상적인 시간. 어제처럼,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달렸더니, 의외로 가볍게 완주했다.
일요일. 미국 전역이 들썩이는 슈퍼볼 데이다. 게다가 올해는 이 지역 팀(샌프란시스코 49ers)이 결승에 올라갔으니 도시는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남자들은 대낮부터 스포츠 바에 모여 입에서 맥주 냄새를 풍기며 전술 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미식축구 룰도 잘 모르는 나는 오직 달리기 생각뿐이었다. 클럽 멤버들과 약속했다. “우리는 미식축구 대신 러닝을 하죠. 20.24km 콜?” 그렇게 3일 연속 하프 코스에 가까운 거리를 달렸다. 달린 후에는 설날 기념 러닝이니까, 메뉴는 당연히 설렁탕. 우리는 그걸 설-런-탕이라 부르며 한 그릇씩 뚝딱 비웠다. 땀 흘린 후 먹는 뜨끈한 국물 맛, 오랜만에 보는 멤버들의 웃음소리. 슈퍼볼 우승 트로피가 부럽지 않은 순간이었다.
3일 연속 20.24km. 누군가는 그 거리를 한 번 뛰는 것도 미친 짓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작년의 나조차도 “그건 관절을 갈아 넣는 짓이야”라며 고개를 저었을 테니까. 하지만 막상 해보니 할만했다. 아니, 심지어 더 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친구들이 걱정하는 내 무릎과 관절? 멀쩡하다 못해 윤활유를 친 듯 매끄럽다. 내 인생에 이렇게 건강하고 강인한 적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하지만 삶과 죽음은 참으로 얄궂은 타이밍에 교차한다. 나이가 차니 주변에서 부고 소식이 자주 들린다. 친구의 부모님, 심지어 친구 본인의 부고까지. 연말연시, 만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상실감으로 슬퍼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제발 운동 좀 하자, 가볍게라도 뛰자”며 건강 전도사 노릇을 해왔다.
그리고, 내가 3일간 60km를 넘게 뛰며 “나는 건강하다!”라고 자만하고 있던 바로 그 아침. 충격적인 뉴스가 스마트폰 화면을 채웠다. 켈빈 키텀(Kelvin Kiptum). 2023년 시카고 마라톤에서 인류의 한계라던 2시간 벽을 깰(Sub-2) 유일한 인간으로 지목받던, 세계 신기록 보유자. 그 젊고 강인한 선수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입가에서 황망하다라는 단어만 몇 시간째 맴돌았다. 가장 빠르고, 가장 강했던 심장이 멈추는 데는 예고도, 이유도 없었다. 3일 동안 2024년을 기념하며 신나게 달렸던 나의 기록들이, 그의 죽음 앞에서는 덧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다음날은 달리지 않았다. 대신, 너무나 일찍 결승선을 통과해 버린 그 젊은 별을 위해 잠시 기도하고, 또 다시 가족들의 평안을 기원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