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모르는 이유

내 머릿속 이야기를 너무 믿지 마세요

by 사심가득

"당신은 왜 그 사람을 좋아하나요?"


누군가에게 이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대개 어렵지 않게 대답한다.


"같이 있으면 편해서요." "저랑 잘 맞아서요." "배려심이 있어서요." 이런 말들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 이유가 진짜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게 정말 진짜 이유일까?


왜 그 결정을 했는지, 왜 그 사람에게 화가 났는지, 왜 그 일을 하기 싫은지. 우리는 이런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한다.


그런데 심리학 연구들은 불편한 사실 하나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우리가 자신의 행동과 감정의 이유를 설명할 때, 실제 이유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자신을 오래 알아왔다는 것이 자신의 내면을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오래된 설명일수록 더 진짜처럼 느껴지고, 그래서 더 의심하기 어렵다.




나는 왜 이 결정을 했는가

1977년,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Richard Nisbett)과 티모시 윌슨(Timothy Wilson)은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에게 여러 켤레의 스타킹을 보여주고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게 했다. 실제로는 모두 동일한 제품이었지만, 사람들은 오른쪽에 놓인 것을 훨씬 더 많이 선택했다. 이는 단순히 오른쪽에 있는 것을 선호하는 심리적 경향 때문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 왜 그 스타킹을 골랐냐고 물었더니, 참가자들은 "품질이 더 좋아 보여서요", "감촉이 더 부드러워 보여서요" 같은 이유를 댔다. 위치 때문이라고 말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제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그들은 전혀 다른 이유를 진짜인 것처럼 설명했다.


니스벳과 윌슨은 이 연구를 통해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은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그 이유를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내가 왜 이랬는지" 설명할 때, 그것은 진실을 꺼내는 과정이 아니라 이야기를 생성하는 과정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생성하는 뇌

우리 뇌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뇌는 마치 사후에 쓰이는 자서전 작가처럼, 이미 일어난 일에 가장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완성된 이야기로 만든다. 설명되지 않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떤 행동을 하거나 감정이 생기면, 뇌는 즉시 그에 맞는 이유를 찾아서 그럴싸하게 붙여버린다. 문제는 그 이유가 실제 원인이 아닐 때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의에서 동료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고 하자. "왜 기분이 나빠졌어요?"라고 물으면 "그 사람이 내 의견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요"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날 아침부터 피곤했거나, 그 동료와 쌓인 감정이 있었거나, 전혀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 있다. 우리는 가장 그럴듯한 이유를 골라 설명하는 데 능숙하지만, 그게 진짜 이유인지는 알기 어렵다.


비슷한 일이 관계에서도 일어난다. 오래 사귄 연인과 헤어진 뒤 "왜 그 사람을 좋아했어요?"라고 물으면, 당시에는 말하지 못했던 이유들이 갑자기 선명해지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좋아할 당시에는 확신했던 이유들이 시간이 지나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이유들이 진짜였는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였는지 사실 알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자신을 잘 안다고 느끼면서도 실제로는 모르는 이유 중 하나다. 스스로에 대한 설명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에, 그게 착각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기 어렵다.




일기를 써도 나를 모를 수 있는 이유

"그래도 저는 일기를 매일 쓰는데요. 그것도 소용없나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노력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중요하다. 타샤 유리크의 연구에서 자기성찰을 많이 하는 사람이 반드시 자기인식이 높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 있다.


일기를 쓰거나 스스로를 돌아볼 때 "나는 왜 이랬을까?"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라는 질문은 우리를 이야기 짓기 모드로 밀어 넣는다. 그럴듯한 설명을 찾게 만들고, 때로는 자기비판의 소용돌이로 이어지기도 한다. "왜 나는 또 이랬을까", "왜 나는 이게 안 될까"라는 방식의 성찰은 나를 더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반면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그때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나?"처럼 현재 상태를 관찰하는 방식의 질문은 훨씬 더 정확하게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그대로 포착하는 것이다.


열심히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해서,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방향이 맞아야 한다.




나를 정확히 알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완전히 자신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의 뇌는 구조적으로 모든 과정을 의식적으로 들여다볼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 그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제약 조건이다.


다만 조금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방향은 있다.


첫째, 내 행동이나 감정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게 사실인가?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한 박자 멈추는 것이다.


유리크의 연구에서도 자기인식을 높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힌 것이 바로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었다. "나는 왜 이랬을까?"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로 묻는 것. "왜"는 이야기를 만들게 하지만, "무엇"은 지금 이 순간을 관찰하게 한다.


둘째, 타인의 반응을 또 하나의 데이터로 삼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내가 설명하는 나와 주변 사람들이 경험하는 내가 다를 때, 그 간극 안에 내가 아직 모르는 내가 있다. 그 불일치가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나를 조금 더 정확하게 아는 방법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100% 완벽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게임이다. 어떤 종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온 이야기를 조금씩 의심하고, 조금씩 수정해 나가는 여정에 가깝다. 그리고 그 과정이 시작되는 순간은 내 설명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때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Eurich, T. (2017). Insight: The surprising truth about how others see us, how we see ourselves, and why the answers matter more than we think. Crown Business.

Nisbett, R. E., & Wilson, T. D. (1977). Telling more than we can know: Verbal reports on mental processes. Psychological Review, 84(3), 23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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