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관대하게 보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저는 꽤 괜찮은 리더라고 생각해요."
리더십 다면 평가에서 이렇게 말하는 리더들이 참 많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같은 시점에 팀원들에게 익명으로 받은 피드백과 비교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이 준 점수와 팀원들이 준 점수 사이에 간극이 있다. 그것도 꽤 크게 말이다.
이 간극은 특별히 어떤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인식 차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경향이다.
심리학에는 '자기고양 편향(self-serving bias)'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 성격, 행동을 평균보다 더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1981년 스웨덴 심리학자 올라 스벤손(Ola Svenson)은 운전자들에게 자신의 운전 실력이 다른 운전자들과 비교해 어느 수준인지 물었다. 결과를 분석해 보니 응답자의 약 80%가 자신을 평균 이상의 운전자라고 답했다.
그런데 통계적으로 모두가 평균 이상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자신이 평균이라고 느꼈다. 그렇다면 평균 이하인 운전자들은 누구인가?
운전 실력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머 감각, 공정함, 도덕성 등의 내재적 특성과 관련한 항목에서도 자신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혀졌다.
이 편향은 성과를 해석하는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일이 잘 됐을 때는 내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잘 안 됐을 때는 상황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내가 잘 이끌었다"고 느끼고, 실패하면 "팀원들이 따라오지 못했다"거나 "타이밍이 나빴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리더십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리더십을 평가할 때 대부분의 리더는 실제 팀원들의 평가보다 스스로를 더 높게 평가한다. 실제로 우리 회사에서는 대기업의 리더십 다면평가를 매년 분석하는데, 커뮤니케이션, 공감 능력, 의사결정, 위임 방식 등 거의 모든 항목에서 자기 평가가 타인 평가보다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단, 예외는 있다. 업계에서 큰 위기를 겪고 있는 회사의 경우 리더와 팀원 평가가 역전되는 패턴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것은 이들이 나쁜 리더거나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자신을 좋게 보려는 뇌의 경향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인간 특성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경향이 우리가 스스로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는 점에 있다.
물론 여기서 이런 반론이 생길 수 있다. "저는 오히려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편인데요?" 실제로 불안이 높거나 우울한 상태에서는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경우에도 결국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점은 같다. 방향만 반대일 뿐, 왜곡이 생긴다는 본질은 다르지 않다.
1955년, 심리학자 조셉 루프트(Joseph Luft)와 해리 잉엄(Harry Ingham)은 자기인식을 설명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합쳐 '조하리 창(Johari Window)'이라고 불리는 이 모델은 나에 대한 정보를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눈다.
첫 번째는 내가 알고 타인도 아는 영역이다. 내 직업, 성격의 큰 줄기, 말투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나의 모습이다.
두 번째는 내가 알지만 타인은 모르는 영역이다. 내 속마음, 숨겨둔 감정, 말하지 않은 생각들이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속으로는 지쳐있을 때, 그 피로함은 이 영역에 있다.
세 번째는 타인은 알지만 내가 모르는 영역이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습관, 무의식적인 말투, 내가 만드는 분위기 같은 것들이 여기에 있다.
회의 때 자신도 모르게 팔짱을 끼는 습관, 긴장하면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 칭찬할 때보다 지적할 때 더 길게 이야기하는 패턴 등이 이에 해당한다. 또는 오래 함께 일한 동료에게 "당신이랑 있으면 왠지 긴장돼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본인은 전혀 몰랐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즉 주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는 것들이다. 우리가 가장 놓치기 쉬운 영역이다.
네 번째는 나도 모르고 타인도 모르는 영역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력이나 깊은 내면이 여기에 속한다.
이 모델은 나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을, 타인은 알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영역은 생각보다 넓다.
여기서의 문제는 타인이 보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점이다.
"당신은 회의에서 자주 말을 끊는 편이에요." 누군가 이런 피드백을 전달하면, 첫 반응은 대개 방어다. 자신을 설명하고 싶어진다. 예컨대, "그건 아이디어가 있을 때 빠르게 공유하고 싶어서예요." "그 상황은 좀 달랐어요." 라며 변명하고 싶다.
그런데 그 설명 뒤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바로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피드백이 불편할수록, 그것이 내가 모르는 나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피드백은 크게 불편하지 않다. 예상 밖의 것, 인정하기 싫은 것이 나를 건드릴 때 우리는 방어적이 된다.
타인의 시선은 등 뒤에 달린 거울이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혼자서는 볼 수 없는 각도를 비춰준다. 항상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거울을 완전히 외면하면 내가 보는 나만 남는다. 그리고 내가 보는 나는, 대부분 조금 더 나은 버전의 나다.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 중에 어느 쪽이 진짜냐는 질문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내 속마음과 의도는 나만 안다. 타인은 내 행동만 본다. 같은 행동도 의도를 알면 다르게 읽힐 수 있다. 그러니 타인이 보는 내가 전부 정확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런데 반대로, 내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내가 알기 어렵다. 좋은 의도로 한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됐을 때, 의도가 중요한가 결과가 중요한가? 나는 배려해서 한 말인데 상대는 잔소리로 들었다면,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울까?
어쩌면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진짜 나는 하나가 아닐 수 있다. 내가 아는 나, 타인이 보는 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나. 이것들이 모두 나의 일부다. 그리고 그 중 어느 하나도 나의 전부는 아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화에서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것이다.
지금은 한 가지만 기억해두면 된다.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 사이의 간극, 그 간극 안에 내가 아직 모르는 내가 있다. 그 간극을 불편하게 여기기보다, 나를 더 알아갈 수 있는 여지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Luft, J., & Ingham, H. (1955). The Johari window: A graphic model of interpersonal awareness. Proceedings of the Western Training Laboratory in Group Development. University of California.
Sedikides, C., & Gregg, A. P. (2008). Self-enhancement: Food for thought. 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 3(2), 102–116.
Svenson, O. (1981). Are we all less risky and more skillful than our fellow drivers? Acta Psychologica, 47(2), 143–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