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뭐가 진짜 '나'야?

상황이 바뀌면 '나'도 바뀔 수 있다

by 사심가득

그래서 '진짜' '나'는 뭘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이 질문에 도달한다.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가 다르고, 내가 나를 설명하는 이유가 사후에 만들어진 이야기일 수 있다면, 도대체 어느 쪽이 진짜냐는 물음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리가 암묵적으로 깔고 있는 전제 하나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진짜 나"란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다는 믿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황이 바뀌어도, 시간이 지나도, 누구 앞에 있어도 변하지 않는 나의 본질이 있다고 믿는다.


예컨대 성격 검사 결과를 처음 받아보고 "이게 나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혹은 "나는 원래 내향적인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 우리는 본질에 대한 믿음을 자연스럽게 전제로 깔고 있다. 즉, 나라는 사람은 어딘가에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고, 심리 검사나 자기성찰을 통해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리학 연구들은 이 믿음에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상황을 보지 못하고 사람을 본다

1977년 사회심리학자 리 로스(Lee Ross)와 동료들은 흥미로운 실험을 설계했다. 참가자들을 무작위로 두 역할에 배정했다. 한 명은 '출제자'로, 다른 한 명은 '답변자'로 지정했다. 출제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어려운 문제를 마음껏 낼 수 있었다. 답변자는 그 문제에 답해야 했다.


이때 자신이 아는 것을 골라 낸 문제이니 출제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고, 답변자는 열 문제 중 네 개 정도만 맞혔다.


그런데 실험의 핵심은 그 다음이었다. 이 장면을 지켜본 관찰자들에게 두 사람의 지식 수준을 평가하게 했더니, 관찰자들은 출제자가 답변자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고 평가했다. 역할이 무작위로 배정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출제자가 더 많이 안 것처럼 보인 건 능력 때문이 아니라 역할 때문이었다. 그런데 관찰자들은 그 상황적 유리함을 보지 못하고, 출제자의 능력으로 귀결시켰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불렀다. 이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볼 때 상황의 영향은 과소평가하고, 그의 행동을 그 사람의 성격이나 능력 탓, 즉 내면의 영향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일상에서 이 오류가 반복된다. 발표를 잘하는 동료를 보며 "저 사람은 원래 자신감이 넘쳐"라고 생각하지만, 그 동료가 그 주제를 오래 준비했거나 익숙한 청중 앞이었다는 맥락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반면, 지각한 직원을 보며 "저 사람은 시간 관념이 없어"라고 결론짓지만, 그날 아침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기분이 좋을 때 더 오판한다

흥미로운 반전이 하나 있다. 심리학자 조셉 포거스(Joseph Forgas)는 1998년 연구에서 기분 상태가 기본적 귀인 오류의 강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기분이 좋을 때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을 성격 탓으로 더 강하게 돌리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상황적 요인을 더 꼼꼼하게 고려했다.


이는 언뜻 직관과 반대다. 기분 좋을 때 더 너그러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단순하게 판단했다. 기분이 좋으면 정보를 빠르고 직관적으로 처리하고, 기분이 좋지 않으면 더 신중하고 분석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개념이 '기본적' 귀인 오류인 것이다. 이 오류를 범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우리의 무의식적인 경향성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오늘 기분 좋다"고 느끼는 날, 타인을 가장 단순하게 판단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타인도 나를 똑같이 본다

기본적 귀인 오류는 내가 타인을 볼 때만 작동하지 않는다. 타인도 나를 똑같이 본다.


예를 들어, 내가 그날따라 말수가 적었던 건 피곤해서였다. 그런데 상대는 내가 차갑거나 불만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을 수 있다. 한편, 내가 회의에서 날카롭게 반응했던 건 그날 아침부터 일이 꼬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는 내가 원래 공격적인 사람이라고 기억할 수 있다.


나는 상황을 잘 안다. 그런데 상대는 겉으로 드러난 내 행동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행동으로부터 나라는 사람을 추론한다.


이전 이야기에서 살펴본 '조하리 창'의 세 번째 영역, 즉 타인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나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상대가 경험한 내 행동들이 쌓여서, 내가 의도하지 않은, 심지어는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나의 이미지가 형성된다.




진짜 나는 하나가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진짜 나는 뭘까?


낯선 사람 앞에서의 나와 오래된 친구 앞에서의 나는 다르다.


직장에서의 나와 가족 앞에서의 나는 다르다.


칭찬받을 때의 나와 비판받을 때의 나는 다르다.


이것들 중 어느 것이 진짜 나냐고 물으면, 사실 모두 진짜 나다.


성격심리학에서는 오랫동안 성격을 상황에 관계없이 일관된 행동 패턴으로 정의해왔다. 그런데 실제 연구들이 보여주는 것은 조금 다르다. 사람들의 행동은 상황에 따라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달라진다. 내가 어떤 환경에 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가 내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맥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존재다. 마치 물이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듯, 나라는 사람도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가짜가 아니다. 그릇이 달라졌을 뿐, 물은 여전히 물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스스로를 보며 "나는 왜 이렇게 일관성이 없지"라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일관성이 없는 게 아니라, 인간이 원래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다.


진짜 나를 하나의 고정된 모습으로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어쩌면 잘못된 질문일 수 있다.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여러 개의 나를 모두 나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오히려 더 정확한 자기이해에 가깝다. 나를 안다는 것은 하나의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알아가는 일이다.




참고문헌

Forgas, J. P. (1998). On being happy and mistaken: Mood effects on the fundamental attribution erro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5(2), 318–331.

Ross, L., Amabile, T. M., & Steinmetz, J. L. (1977). Social roles, social control, and biases in social-perception process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5(7), 485–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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