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간극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
운동을 작심삼일로 끝낸 날, 또 야식을 시킨 날, 미루던 일을 결국 오늘도 못 한 날. 우리는 자신을 탓한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비슷한 자책은 관계에서도, 일에서도 찾아온다. 중요한 사람에게 또 날카롭게 말해버린 날, 후배에게 좋은 피드백을 해주고 싶었는데 그냥 넘어간 날, 오늘 하루도 하고 싶은 일 하나 못 하고 퇴근한 날.
그런데 이 자책 뒤에는 하나의 공통된 구조가 있다. 지금의 내가 어떤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진다는 것이다. 심리학은 이 느낌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왜 어떤 갭은 우울감을 만들고 어떤 갭은 불안감을 만드는지를 꽤 정밀하게 설명한다.
1987년 컬럼비아 대학교의 심리학자 에드워드 토리 히긴스(E. Tory Higgins)는 자기불일치 이론(Self-Discrepancy Theory)을 발표했다. 히긴스는 우리가 자신을 바라볼 때 단 하나의 기준이 아니라 여러 개의 기준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실제 자아(actual self)다. 지금 현재의 나를 의미한다. 이는 내가 실제로 갖고 있는 성격, 능력, 모습이다.
두 번째는 이상적 자아(ideal self)다. 내가 되고 싶은 나를 뜻한다. 이는 희망하고 꿈꾸는 나의 모습이다. "나는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건강하게 살고 싶다", "나는 창의적인 사람이고 싶다"와 같은 바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세 번째는 의무적 자아(ought self)다. 내가 되어야 하는 나를 지칭한다. 의무와 책임, 타인의 기대로 형성된 기준이 바탕이 된다. "나는 좋은 부모여야 한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이 정도는 해낼 수 있어야 한다"와 같은 당위적 문장이 여기에 속한다.
히긴스의 핵심 발견은, 이 세 자아 사이의 간극이 단순한 불만족이 아니라 구체적인 감정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직장에 다니면서 글 쓰는 걸 좋아하는 30대 직장인이 있다. 지금의 그는 야근이 잦고 글은 거의 못 쓰고 있다. 이것이 실제 자아다. 그런데 그에게는 언젠가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다. 이것이 이상적 자아다. 동시에 그는 팀의 막내로서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 하고,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이것이 의무적 자아다. 세 가지가 모두 '그'이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실제 자아와 이상적 자아 사이에 간극이 있을 때, 사람들은 낙담하고 우울해진다. 내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은 희망의 부재로 이어진다. 하고 싶었던 일을 못 하고 있는 것,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 이 갭이 클수록 무기력감과 슬픔이 깊어진다.
반면 실제 자아와 의무적 자아 사이에 간극이 있을 때는 다른 감정이 찾아온다.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은 위협감으로 이어진다. 마감을 앞두고 아직 시작도 못 한 느낌,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이 간극은 죄책감과 긴장감을 만든다.
"나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같은데, 어떤 기준과의 차이냐에 따라 찾아오는 감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나는 더 건강하게 살고 싶었는데 또 못 했다"는 이상적 자아와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찾아오는 감정은 실망과 무기력감에 가깝다. 반면 "나는 부모로서 이 정도는 해줬어야 했는데"는 의무적 자아와의 갭이다. 이럴 때 찾아오는 감정은 죄책감과 불안에 가깝다. 표면적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자책이지만, 그 뿌리는 다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자신에 대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실 꽤 구체적인 원인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나는 부족한 것 같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어떤 나와의 거리가 멀어졌을 때 어떤 감정이 오는지를 이해하면, 그 감정을 다루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대부분이 이 두 가지 간극을 동시에 안고 산다는 점이다.
되고 싶은 나도 있고, 되어야 하는 나도 있다. 그리고 둘 다 지금의 나와 거리가 있다. 꿈꾸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이상과, 맡은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는 의무가 동시에 나를 압박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 상황이 있다. 이상적 자아와 의무적 자아가 서로 충돌할 때다. 앞서 예로 든 직장인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는 퇴근 후 글을 쓰고 싶다(이상적 자아). 그런데 야근이 끝난 뒤 몸은 지쳐있고, 내일 아침 회의 자료도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느낀다(의무적 자아). 글을 쓰면 자료 준비가 불안하고, 자료를 준비하면 글을 못 썼다는 죄책감이 남는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다른 쪽과의 거리는 멀어진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나와 안정적이어야 하는 나 사이에서, 도전하고 싶은 나와 실패하지 않아야 하는 나 사이에서 우리는 번아웃을 겪는다.
이런 상태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없지." 그런데 히긴스의 이론이 말하는 것은 다르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동시에 당겨지고 있다면, 어느 쪽으로도 힘껏 가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간극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히긴스의 이론은 간극 자체를 없애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상을 포기하거나 의무를 내려놓으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 이론이 주는 첫 번째 통찰은,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를 아는 것이다.
지금 느끼는 것이 무기력감과 슬픔이라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지금 느끼는 것이 불안과 죄책감이라면, 내가 부담으로 안고 있는 기준이 너무 많거나 너무 엄격한 것일 수 있다.
이상적 자아는 나침반이다. 방향을 가리켜주지만, 언제나 지금의 나보다 앞에 있다. 의무적 자아는 울타리다. 안전하게 지켜주지만, 너무 좁으면 숨이 막힌다. 이 둘이 나를 성장시키는 도구가 되려면, 먼저 내가 지금 어떤 갭 앞에 서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감정을 탓하거나 억누르기 전에, 그 감정이 어떤 갭에서 왔는지를 먼저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자책이 아닌 자기이해의 시작점이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없지"라는 질문보다, "나는 지금 어떤 나와의 거리를 느끼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먼저다.
Higgins, E. T. (1987). Self-discrepancy: A theory relating self and affect. Psychological Review, 94(3), 319–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