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기만은 나쁜 습관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사실 그 회사 분위기가 나랑 안 맞았을 것 같아."
"면접관이 좀 이상했어. 나를 제대로 평가를 못 한 거지."
"어차피 그 정도 연봉으로는 만족 못 했을 거야."
그는 이게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할 때 괜히 조금 편해진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일어나 이력서를 고친다.
심리학은 이 현상에 오래전부터 이름을 붙여 왔다.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s)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보지 않았는가? 이는 뇌가 나를 지키기 위해 조용히, 그리고 자동으로 작동시키는 장치들을 일컫는다.
방어기제의 개념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에서 시작됐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은 그의 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였다. 1936년 출판한 《자아와 방어기제》에서 안나 프로이트는 방어기제를 "자아가 불안을 줄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전략"으로 정의했다.
핵심은 '무의식적으로'라는 부분이다. 방어기제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동한다. 마치 몸이 세균에 반응해 자동으로 면역 반응을 일으키듯, 마음이 위협에 반응해 자동으로 나를 보호하려 한다.
일상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방어기제 두 가지를 살펴보자.
첫 번째는 합리화(rationalization)다. 자신의 행동이나 실패를 그럴듯한 이유로 설명하는 것이다. 위의 면접 탈락 예시가 바로 이것이다. 실망스러운 현실 앞에서 뇌는 "그게 내 잘못이 아닌 이유"를 열심히 찾아낸다. 거짓말이 아니다. 그 이유들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이유들이 갑자기 떠오르는 타이밍이 문제다. 이것들은 내가 보호받아야 할 순간에 맞춰 등장한다. 우연이라기엔 미묘하다.
두 번째는 투사(projection)다. 자신의 불편한 감정이나 특성을 타인에게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동료에게 은근히 질투를 느끼는데, 그 감정을 인식하기 불편하다. 그러면 어느 순간 "저 사람이 나를 질투하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든다. 내 감정이 바깥으로 던져진 것이다.
코칭을 하다 보면 이런 사례를 종종 만난다. 팀 동료가 이직 얘기를 꺼낼 때마다 괜히 불편하고, 심지어 약간 짜증이 났다는 분이 있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현실에 안주를 못 하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코칭을 이어가다 보니, 사실 본인도 한동안 이직을 고민하면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던 상태였다. 자신이 직면하기 불편했던 고민이 동료를 향한 불쾌함으로 옮겨간 것이었다. 내 안의 무언가를 보기 싫을 때, 뇌는 그것을 바깥에서 발견하는 쪽을 선택한다.
합리화와 투사는 모두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게 해주는 완충재다. 충격을 그대로 흡수하는 대신, 살짝 비틀어 견딜 수 있는 형태로 바꿔준다. 문제는 그 완충재가 너무 두꺼워지면, 충격뿐 아니라 중요한 신호까지 차단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방어기제는 나쁜 것일까?
하버드 정신과 의사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1937년부터 시작된 그랜트 연구(Grant Study)를 35년간 추적했다. 하버드 대학교 남학생 268명을 청소년기부터 중년까지 추적하며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사람이 더 잘 적응하는지를 관찰한 것이다.
베일런트의 발견은 흥미로웠다. 방어기제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방어기제를 쓰느냐가 중요했다. 그는 방어기제를 성숙도에 따라 분류했다.
가장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부정(denial)이나 퇴행(regression)처럼 현실 자체를 외면하거나 어린 시절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중간 수준의 방어기제에는 합리화와 억압이 있다. 그리고 가장 성숙한 방어기제에는 유머(humor), 승화(sublimation), 이타주의(altruism) 같은 것들이 속한다. 불편한 감정을 창의적인 작업으로 전환하거나, 다른 사람을 돕는 것으로 에너지를 쏟는 방식이다.
베일런트의 연구 결과, 청소년기에는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성숙한 것보다 두 배 더 많이 사용했다. 그런데 중년이 되었을 때는 반대로 성숙한 방어기제를 네 배 더 많이 사용했다. 그리고 성숙한 방어기제를 많이 사용한 사람들은 가족 관계, 직업적 성취, 정신 건강 모두에서 더 나은 결과를 보였다.
방어기제는 사라지는 게 아니다. 성숙해지는 것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자. 왜 우리는 이렇게 많은 착각 속에서 살아갈까.
앞선 이야기들에서 우리는 자기인식의 착각, 내성의 환상, 자기고양 편향,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나, 세 자아의 갭,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 등을 살펴보았다. 이 모든 것들의 밑바닥에는 하나의 공통된 기능이 있다. 나의 자존감을 유지시키기 위한 전략들이라는 것이다.
뇌는 나를 보호하려고 한다. 내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내일도 일어나서 살아갈 수 있도록, 때로는 진실을 의도적으로 모른 척하거나 불편한 것을 보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그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의도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자기기만은 결함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짜여진 설계도다. 다만 자기기만이 언제 나를 보호하고 언제 나에게 해를 끼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면접 탈락 후의 합리화처럼 잠깐 숨을 고르게 해주는 방어기제는 유용하다. 그러나 수년 동안 비슷한 이유로 비슷한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그건 내 탓이 아니야"를 되뇌는 방어기제는 더 이상 보호 장치라고 부르기 어렵다.
방어기제를 없애려 하기보다, 지금 내가 어떤 방어기제를 쓰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곧 뇌가 울려주는 자동 경보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그 경보가 울릴 때,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 하는가?" 그리고 "그 보호가 지금 나에게 정말 필요한가?" 두 가지 질문에 답하기 시작하는 순간, 방어기제는 무의식적인 자동 장치에서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스킬로 바뀐다.
Freud, A. (1936). The ego and the mechanisms of defense.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Vaillant, G. E. (1977). Adaptation to life. Little, Brown.
Vaillant, G. E. (2000). Adaptive mental mechanisms: Their role in a positive psychology. American Psychologist, 55(1), 8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