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도 착각한다
짝사랑하는 사람과 공포영화를 보러 가면 고백 성공률이 높아진다는 말, 들어본 적 있는가? 도시전설처럼 떠도는 이 이야기가 사실 심리학 연구에 꽤 탄탄한 근거를 갖고 있다.
심리학자 신디 메스턴(Cindy Meston)과 페니 프롤리히(Penny Frohlich)는 놀이공원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롤러코스터를 타기 직전 줄을 서 있는 사람들과, 막 타고 내린 사람들에게 각각 접근했다. 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이성의 사진을 보여주고 매력도와 데이트 상대로서의 적합성을 평가해달라고 했다.
결과가 매우 흥미롭다. 롤러코스터를 막 타고 내린 사람들이, 아직 타기 전인 사람들보다 사진 속 인물을 훨씬 더 매력적으로 평가했다. 같은 사진인데, 롤러코스터를 탔느냐 아니냐에 따라 점수가 달라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반전이 있었다. 연인과 함께 탄 경우에는 이 효과가 사라졌다. 이미 "내가 지금 두근거리는 건 롤러코스터 때문"이라는 맥락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각성의 원인을 알고 있으면, 그 각성이 다른 감정으로 옮겨가지 않는다.
이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각성의 오귀인(misattribution of arousal)이라고 부른다. 이는 신체 각성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을 엉뚱한 곳에 돌리는 것(귀인)을 의미한다. 롤러코스터가 만든 두근거림이,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한 설레임으로 둔갑한다. 공포영화 데이트 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이 실험이 불편한 이유는 우리가 감정을 꽤 믿을 만한 정보로 여기기 때문이다. "내 감정이 그렇게 느끼는걸?" 혹은 "내 직감이 그렇다는데?"라는 말에는 감정과 직감이 진실에 가깝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심리학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감정은 정확한 측정값이 아니라 뇌의 해석이다. 몸에서 어떤 신호가 올라오면, 뇌는 그 신호의 원인을 주변 맥락에서 찾는다. 이 과정에서 꽤 자주 오류가 난다.
앞서 언급한 실험 말고도 일상에서 이런 오귀인은 흔하게 일어난다. 발표를 앞두고 긴장했는데, 그 긴장감이 "나는 이 일이 싫다"는 신호로 읽힌다. 피곤한 날 가족에게 예민하게 반응하고는 "나는 이 관계가 힘들다"고 결론 내린다.
코칭을 하다 보면 비슷한 패턴을 자주 만난다. "팀장이 오늘 회의에서 제 의견을 무시했어요. 역시 저를 싫어하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분이 있었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그날 아침 집에서 배우자와 크게 다툰 상태였고, 몸 상태도 영 좋지 않았다. 팀장의 반응 자체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이미 활성화된 예민함이 그 상황에 쏟아진 것이다. 물론 팀장의 태도가 실제 문제일 수도 있다. 다만 그 판단을 내리기 전에, 내 감정의 출처를 먼저 살펴볼 필요도 있는 것이다.
몸의 상태와 주변 맥락이 뒤섞이면서, 감정의 원인이 흐릿해진다.
이쯤에서 한 가지 불편한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이 질문이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어렵다. 코칭 현장에서 이 질문을 던지면 많은 사람들이 잠시 멈춘다.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실망한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불편한데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요." "그냥 기분이 이상해요."
감정을 느끼는 것과 감정을 아는 것은 다르다. 몸은 분명히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어디서 온 것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별개의 능력이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감정 인식(emotional awareness)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능력은 사람마다 상당히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꽤 정확하게 포착하고,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모른 채 지낸다. 심지어 자신이 스스로의 감정을 잘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기도 한다(meta-awareness).
그렇다고 감정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감정은 여전히 중요한 정보다. 다만 그 정보가 언제나 정확하지는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 먼저다.
감정이 올라올 때, 잠깐 한 발 물러서서 물어볼 수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이 정말 내가 지금 처한 상황에서 유래한 건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이미 켜져 있던 신호가 지금 여기로 흘러든 건지. 또는 내가 현재 피곤한 상태인지, 배가 고픈지, 다른 일로 이미 각성되어 있는지. 이 맥락들을 한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정확도는 달라진다.
감정을 아는 것은 감정을 느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이 나를 아는 데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든다.
Meston, C. M., & Frohlich, P. F. (2003). Love at first fright: Partner salience moderates roller-coaster-induced excitation transfer. Archives of Sexual Behavior, 32(6), 537–544.
Schachter, S., & Singer, J. (1962). Cognitive, social, and physiological determinants of emotional state. Psychological Review, 69(5), 379–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