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를 만든 거인의 어깨
1968년 5월, 어느 토요일 오후. 캘리포니아 로스앨토스(Los Altos).
로버트 노이스는 자택 앞마당에서 잔디를 깎고 있었다.
잔디깎이 모터 소리 사이로 익숙한 발소리가 들린다—옆집의 고든 무어였다.
둘은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공동 창업자.
노이스는 집적회로를 발명했고, 무어는 ‘무어의 법칙’이라 불릴 세기의 예언을 막 발표한 참이었다.
무어가 물었다.
“메모리 반도체 회사를 새로 만들면 어떨까?”
노이스가 잔디깎이를 멈췄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그해 7월 18일, 인텔이 탄생.
쇼클리 반도체에서 페어차일드로, 다시 인텔로.
‘8인의 배신자들’이 뿌린 씨앗이 마침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옛 중국 고사의 정립(鼎立)처럼, 인텔이라는 회사도 세 번째 인물의 합류로 비로소 완성된다.
앤디 그로브.
193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여덟 살에 나치 점령을 겪었다. 가짜 신분증으로 숨어 살았고, 어머니와 뿔뿔이 흩어져 전쟁을 견딘 그는 스무 살이던 1956년 10월, 소련 탱크가 부다페스트를 짓밟는 모습을 지켜봤다.
결국 헝가리 혁명이 13일 만에 진압된 직후,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로 탈출.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경계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었다.
“편집증 환자만이 살아남는다(Only the Paranoid Survive).”
그로브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이다.
그가 도입한 ‘건설적 대립’이라 불리던 조직 문화로 인해 회의실에서 직급은 사라졌다.
신입사원도 CEO에게 반박할 수 있었는데, 조건이 하나 있다.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하고, 사람이 아닌 아이디어를 사정없이 공격한다.
“이게 정말 최선입니까?”
“당신의 가정이 틀렸다면요?”
“이 숫자가 우리가 잘못됐다는 증거 아닙니까?”
당시 직원들 사이에서는 ‘인텔에서 살아남기’라는 말이 유행했다.
1978년, 인텔은 8086 프로세서를 발매.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새 시대를 연 제품이었지만, 시장은 초반에 냉담했다.
모토로라의 68000이 기술적으로 더 우수하다는 평가가 돌자, 8086 판매량이 급락.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패배주의가 퍼지기 시작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로브가 지시한 작전명은, 적을 분쇄한다는 뜻의 ‘오퍼레이션 크러쉬’.
목표는 단순했다. 1년 안에 고객사가 자사 제품에 인텔 칩을 채택하는 계약을 2,000건 따내는 것.
200만 달러의 예산과 천 명 이상의 직원이 투입됐다. 당시 인텔이 마케팅에 쓴 돈의 열 배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핵심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8086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개발 도구, 기술 지원, 소프트웨어 호환성. 칩의 성능이 아니라 생태계를 팔았다.
1년 뒤, 인텔은 2,500건의 계약을 달성해 낸다.
그중 PC의 역사를 바꾼 가장 중요한 계약이 있다.
1981년 8월, IBM은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IBM PC’에 인텔 8088을 탑재.
8088은 8086의 저가 버전이었지만, 그 선택은 x86 아키텍처를 PC의 표준으로 굳혔다.
그리고, 1991년에는 컴퓨터를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 적이 있을 법한 그 스티커,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이 시작된다. 부품 회사가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브랜드를 각인시킨 최초의 사례로 경영학과 마케팅 수업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Windows)와 손잡은 ‘윈텔(Wintel)’ 동맹은 1990년대 PC 시장을 석권.
30년 넘게 반도체 세상을 지배하는 제국의 탄생이었다.
엔비디아다, 일론 머스크다, OpenAI다, 여전히 실리콘 밸리의 수많은 기업들이 신문을 장식하는 2026년 오늘, 인텔에 관한 소식은 어쩐지 낯설다.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칩 제조를 제안했을 때, 인텔은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거절.
그 선택은 천문학적인 기회비용의 손실로 이어졌고, 모바일 시장 전체를 날려버렸다.
AI 시대가 열리자 상황은 더 나빠진다.
CPU의 ‘곁다리’쯤으로 취급하던 엔비디아의 GPU가 AI 칩 시장을 석권하는 동안, 인텔은 뒤처졌다.
다행히 영원한 제국은 없다는 격언처럼 이대로 몰락할 것만 같던 인텔에게 의외의 구원자가 등장한다.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이 격화되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2025년 인텔에 89억 달러를 투자해 지분 10%를 확보. CHIPS Act 지원금까지 합치면 총 111억 달러로, 민간 기업에 대한 전례 없는 규모의 국가 베팅이었다.
새 CEO 립부 탄은 파운드리 사업 분리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경쟁사였던 고객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설계와 제조를 분리하는 도박이다.
무어의 법칙은 60년 가까이 반도체 산업의 로드맵이 되었다.
그로브의 경영 방침은 실리콘밸리의 조직 문화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AI 시대, 인텔은 다시 회사의 운명을 결정할 질문 앞에 서 있다.
제국은 과연 앞으로의 10년을 살아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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