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닉스 (UNIX)
1969년 여름, 뉴저지주 머레이 힐.
온 세상이 TV 앞에서 인류가 달에 첫 발을 딛는 장면을 숨죽여 지켜보던 그 시각.
벨 연구소의 켄 톰슨은 먼지가 뽀얗게 쌓인,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낡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PDP-7. 메모리는 고작 8KB.
스마트폰 사진 한 장도 담지 못할 보잘것없는 성능.
하지만 톰슨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이거면 충분해. 내가 만들고 싶은 건 거창한 게 아니니까."
세상이 닐 암스트롱에게 환호하던 그 순간,
톰슨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소프트웨어의 첫 줄을 타이핑하기 시작한다.
유닉스(UNIX)의 탄생이었다.
당시 톰슨은 벨 연구소의 야심찬 프로젝트 ‘멀틱스(Multics)’에 참여하고 있었다.
"수천 명이 동시에 쓸 수 있는 완벽한 운영체제를 만들자!"
목표는 원대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너무 많은 기능을 넣으려다 보니 시스템은 비대해졌고, 느려졌으며, 걸핏하면 멈췄다.
5년의 세월 끝에 겨우 완성된 멀틱스는 결국 상업적 실패로 막을 내린다.
이 때 톰슨은 깨달았다.
"완벽함이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는 멀틱스(Multics)를 비꼬듯, 자신의 운영체제에 '유닉스(UNIX)'라는 이름을 붙인다.
철학은 단순했다.
한 가지 프로그램은 한 가지 일만 아주 잘하게 만들어라 (Do one thing and do it well).
거대한 만능칼 대신, 잘 드는 식칼과 가위, 송곳을 따로 준비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도구들을 ‘파이프’라는 연결 통로로 묶어 무한한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이 단순함은 놀랍도록 강력했다.
친구 데니스 리치(Dennis Ritchie)가 만든 C 언어와 결합하자, 유닉스는 날개를 달고 순식간에 전 세계 대학과 연구소로 퍼져 나갔다. 어떤 컴퓨터든 C 언어만 사용하면 유닉스를 그대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소스 코드를 무료로 공유했고, 누구나 마음껏 뜯어고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유닉스는 ‘개발자들의 토대’가 되었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유닉스의 세상에 살고 있다.
"저는 윈도우 쓰는데요?"
물론 그럴 수 있다. 참고로 필자는 맥을 쓴다.
하지만 우리가 접속하는 웹사이트, 네이버와 구글의 서버, 아이폰(iOS), 갤럭시(Android), 심지어 집에 있는 와이파이 공유기까지. 이 모든 것의 심장에는 유닉스, 혹은 유닉스의 계승자들이 뛰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 만든 ‘넥스트(NeXT)’ 컴퓨터도 유닉스 기반이었고, 그가 애플로 돌아와 만든 macOS의 뿌리도 결국 유닉스. 리누스 토발즈가 취미로 시작해, 지금 수많은 기업용 서버에서 쓰이는 리눅스(Linux) 역시 유닉스 이름을 계승했다.
클라우드라는 거대한 집합체도, AI를 돌리는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도 마찬가지다.
현대의 운영체제는 결국 켄 톰슨과 동료들이 만든 유닉스라는 단단한 기반 위에, 반세기 동안 쌓아 올린 성들이다.
2026년, 우리는 다시 한번 복잡함의 역습과 마주하고 있다.
AI 모델은 점점 거대해지고, 하드웨어는 또다시 무거워지며, 전력 소모는 끝없이 늘어난다.
하지만 가장 복잡한 문제를 푸는 열쇠는, 언제나 가장 단순한 원칙에 있었다.
"한 번에 하나씩, 제대로."
유닉스의 철학은 코드를 넘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에서, 해야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참 많다.
그러다 복잡한 하루 속 조바심에 쫓겨, 정작 삶의 갈피를 잃어버리곤 한다.
숨 가쁘게 달리지만, 정작 내가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조차 잊은 채.
오늘따라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단순함'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밤이다.
최대한 신중하게 팩트 체크를 거쳤지만, 기술과 역사를 다루다 보니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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