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록스 (Xerox PARC)
1979년 12월,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한 연구소.
덥수룩한 머리에 샌들을 신은 24살의 청년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당신들은 지금 금광 위에 앉아 있어요!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도대체 왜 모르는 겁니까?!”
그 청년의 이름은 스티브 잡스.
그리고 그가 서 있던 곳은 제록스 파크(Xerox PARC)였다.
이날 잡스가 목격한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미래의 편린.
단, 정작 그 미래를 만든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만들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1970년, 복사기로 돈을 쓸어 담던 제록스는 ‘미래의 사무실’을 만들겠다며, 당대 최고의 천재들을 팰로앨토로 불러 모은다. 그들은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상상하고 연구했다.
그 결과물인 ‘알토(Alto)’ 컴퓨터는 시대를 10년, 아니 20년 앞서 있었다.
당시 컴퓨터란 검은 화면에 초록색 글씨만 깜빡이는 기계. 하지만 알토는 다르다.
화면에는 아이콘과 창(Window)이 떠 있고, 손에는 키보드 대신 마우스가 쥐어진다.
컴퓨터는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주고받고, 소프트웨어는 새로운 철학을 바탕으로 짜인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PC, 스마트폰, 인터넷의 원형이 놀랍게도 이 안에 다 있었다.
연구원들은 농담처럼 말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모든 사람의 손에 쥐어지지 않았을 뿐."
문제는 제록스 경영진이었다.
뉴욕 로체스터에 있는 본사 임원들에게 알토 컴퓨터는 그저 “너무 비싸고 복잡한 장난감”.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그래서 이게 복사기를 더 많이 파는 데 도움이 됩니까?”
그래픽을 이용한 조작법은 복사기 버튼보다 복잡해 보인다며 고개를 저었고,
복사기끼리 연결은 필요가 없다며 무시했다.
반면,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 파크 방문 직후, 그는 애플의 차기 프로젝트였던 ‘리사(Lisa)’와 ‘매킨토시’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린다. 결국 제록스가 발명한 미래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거의 아무 대가 없이 가져가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훔쳤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원래 주인이 가져가라고 내어 준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제록스 모멘트(Xerox Moment).
경영학에서는 이 순간을 기록하여 교훈으로 삼는다.
그 뒤 제록스는 일본의 후지필름과 손잡고 합작사 ‘후지 제록스(Fuji Xerox)’를 세워, 오랜 기간 복사기 시장에서는 강력한 존재감을 유지했지만, ‘미래의 개인용 컴퓨팅’이라는 파괴적 혁신은 결국 다른 회사들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역사는 반복된다.
2017년, 구글의 연구원들은 ‘Attention Is All You Need’라는 논문을 통해 트랜스포머 구조를 발표.
오늘날 ChatGPT를 비롯한 모든 생성형 AI 혁명의 씨앗이었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그 꽃을 피우고 첫 열매를 수확한 것은 구글이 아니라 OpenAI.
구글은 검색 광고라는 ‘거대한 수익’을 지키느라, 자신들이 만든 기술이 가져올 파괴적 변화를 주저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Gemini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는 중이지만.
혁신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기술을 ‘미래’라고 믿는 안목과 비전, 과거의 성공을 스스로 해체할 용기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혁신은 시장을 형성한다.
지금 우리의 서랍 속에 잠자고 있는 ‘알토’는 없는가?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묵혀두기엔, AI시대의 시간은 특히 더 빨리 흘러간다.
최대한 신중하게 팩트 체크를 거쳤지만, 기술과 역사를 다루다 보니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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