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와 빌 게이츠(Bill Gates)
어딘가 정석적인 엘리트이자 사업가의 면모가 강한 빌 게이츠보다, 성격은 고약하지만 구도자적인 분위기의 스티브 잡스가 내 취향이다.
사실 빌 게이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하나 더 있는데, 대학 때 수강했던 교수님의 영향이다.
이 교수님은 빌 게이츠와 동창임을 주장하는(사실 확인은 못했다) 하버드 출신이었는데, 열정적인 반 마이크로소프트 주의자였다. 당시 북미에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악’으로 규정하던 컴퓨터 긱(Geek)이 많았으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학기 내내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에 대한 험담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수업 내용은 어렴풋한데 그 입담만은 기억에 남는다.
(교수님의 빌 게이츠 에피소드는,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므로 이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다 얼마 전 빌 게이츠의 자서전, ‘소스 코드: 더 비기닝’을 읽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 특이한 책이다. 대부분의 성공한 인물들과는 달리, 꽤 두꺼운 이 책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 직후에 끝나버린다. 이 회사가 역사에 남긴 위대한 성과도, 빌 게이츠 재단으로서의 헌신적인 사회활동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이 없다.
책을 읽고, 빌 게이츠를 조금 좋아하게 되었다.
동시에 그가 자서전을 쓴 의도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고, 감탄했다.
그래서 오늘은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빌 게이츠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고 한다.
시애틀의 명문 사립고 레이크사이드 스쿨. 1968년, 학부모회가 학생들을 위해 컴퓨터 터미널을 구입했다.
퍼스널 컴퓨터(PC)가 아직 등장하지 않고, 컴퓨터의 용도가 일부 전문적인 작업에 한정되어 있던 이 시기, 명문 부자 학교만의 특혜였다. 자서전에서 빌 게이츠는 회상하길, 이 학교를 다니지 않았더라면 마이크로소프트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열세 살 게이츠는 그 기계에 빠져들었다.
수업을 빼먹고 프로그래밍에 몰두했고, 선생님들은 그것을 허락했다.
그 후에는 꽤 평범한 ‘천재의 성장 스토리’다.
클리쉐처럼 재학 중에 친구들과 함께 창업을 하고, 초반의 역경을 딛고 성공한다.
1980년, IBM의 임원들은 초조했다.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급성장하는데, 거대한 IBM은 너무 느렸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전례 없는 결정을 내렸다. 사내 벤처를 꾸리고, 외부 소프트웨어를 쓰기로 한 것이다.
그 전화를 받은 건 스물다섯 살의 빌 게이츠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당시 직원 40명짜리 작은 회사였고, 운영체제를 만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게이츠는 "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츠라는 회사에서 QDOS(후에 MS-DOS)를 사들였다.
처음에는 2만 5천 달러로 라이선스를 따고, 나중에 5만 달러를 추가로 지불해서 완전 인수했다.
IBM은 하드웨어에만 집중했다.
소프트웨어를 복사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인식조차 희미했던 시절, 소프트웨어는 아직 돈이 안 된다고 보고, 마이크로소프트와 독점 계약을 하지 않았다. 다른 PC 제조사에도 팔아도 된다는 조건이었다. IBM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양보였다.
동시에 빌 게이츠의 비즈니스 감각을 시사하는 사건이다.
컴팩, 델, HP가 IBM 호환 PC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 운영체제(MS-DOS)가 필요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 전쟁에서 한 발 떨어져, 모든 승자에게 소프트웨어를 팔았다. 마치 군수업자가 전쟁에서 돈을 쓸어다 담는 것처럼.
1985년, 윈도우 1.0이 나왔다.
혹평이 쏟아진다. 느리고, 불안정하고, 매킨토시의 조잡한 모방이라는 비판.
마이크로소프트는 예나 지금이나 소프트웨어 빼고는 다 잘 만든다.
하지만 전설적인 '카피캣' 마이크로소프트는 멈추지 않는다.
윈도우 2.0, 3.0을 거쳐 1995년 윈도우 95가 터졌다.
출시 5주 만에 700만 장이 팔렸다.
롤링 스톤스의 "Start Me Up"이 광고음악으로 울려 퍼졌고, 시작 버튼, 작업 표시줄, 휴지통이 등장했다.
PC를 다루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1998년 인터넷이 급성장하던 시절, 자유의 상징이던 웹브라우저까지 카피해서 윈도우에 끼워 팔던 마이크로소프트는, 결국 미국 정부에게 반독점 소송에 걸려, 2001년 합의로 마무리한다.
우리들의 빌 게이츠는 악당의 얼굴이 됐다.
그런데 묘한 점이 있다.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욕하면서도 계속 썼다.
왜일까? 마이크로소프트는 "좋은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업 환경에서 워드와 엑셀은 그냥 작동했다. 호환성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IT 담당자들은 안심했다. "아무도 IBM을 선택해서 해고되지 않았다"는 옛 격언이 마이크로소프트에도 적용됐다.
예나 지금이나 기업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쓰지 않는 용기를 내기란 참 힘들다.
2014년, 사티아 나델라가 세 번째 CEO가 된다.
(스티브 발머는 생략한다)
회사는 완전히 달라졌다. 클라우드 컴퓨팅 애저에 올인했고, 리눅스와 오픈소스를 껴안았다. 깃허브(GitHub)도 인수했다.
오픈소스 진영의 공공의 적, "마이크로소프트가 리눅스를 사랑한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선언이었다.
빌 게이츠도 변했다.
악명 높던 경영자에서 세계 최대의 기부자로. 게이츠 재단을 통해 감염병, 기후변화, 교육 문제에 수십억 달러를 쓰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악마’가 진정으로 회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비록 위선이라도 이 정도로 열심히 하면, 천국에도 인정하고 받아주지 않겠는가?
2026년 현재, 마이크로소프트는 AI 시대에도 핵심 플레이어다.
OpenAI에 13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Copilot을 모든 제품에 심었다. 애저는 연간 750억 달러 매출을 넘어섰다. 기업들이 AI를 도입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마이크로소프트다. B2B 시장의 절대강자는 AI 시대에도 건재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역사는 기술 산업과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가장 혁신적인 회사가 이기는 게 아니다.
가장 오래 살아남는 회사가 이긴다.
그리고 살아남으려면 크게 미움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애플이 예술가라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실무자다.
구글이 천재라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일꾼이다.
(기술과 창의성은 없지만, 진정한 영업의 신)
화려하지 않아도,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건 결국 일꾼이다.
AI시대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의 행보를 계속해서 주목하며 지켜보고 싶다.
재미있게 쓰려고 ‘영업’을 조금 비하하는 것처럼 표현한 부분이 있었다면 너그럽게 봐주세요.
저도 영업을 오래 담당한 입장에서,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 기술을 실제로 고객의 니즈에 맞게 제공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