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ple
1983년, 애플 본사 ‘밴들리 3 빌딩’ 지붕에 해적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직접 건, 해골 그림에 애플 로고를 무지개색으로 칠한 깃발.
해군에 입대하느니 해적이 되겠다.
Why join the Navy if you can be a pirate?
20대 초반 히피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인도까지 가서 깨달음을 찾던 반항아 잡스다운 선언이다.
당시 애플은 이미 성공한 회사. 애플 II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열며 회사는 급성장 중. 그런데도 잡스는 불만이었다.
회사가 점점 관료화되고, 대기업 특유의 느릿함이 스며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앤디 허츠펠드, 빌 앳킨슨 같은 소수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를 데리고 ‘해적단’을 꾸렸다.
지난 편에서 다뤘듯이 1979년 12월, 잡스의 Xerox PARC 방문은 기술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우연 중 하나로 꼽힌다. 움직이는 마우스 포인터, 클릭하면 열리는 프로그램, 동시에 띄울 수 있는 창.
잡스는 그 놀라운 직관성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잡스는 돌아온 직후, 특유의 자신감으로 선언한다.
“이것이 컴퓨터의 미래다.”
1984년 1월 24일, 매킨토시가 공식 발표된다.
계시처럼 다가온 기술들을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데에는 몇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 결과는 마우스로 조작하는 아름다운 인터페이스, 다양한 글꼴과 그래픽, 그리고 유려한 디자인. 그야말로 ‘매킨토시’였다.
잡스는 발표장에서 매킨토시가 직접 자기소개를 하게 한다. 음성 합성 기술을 이용해 컴퓨터가 말을 한 것이다.
그로부터 40년 후, 이제는 스마트폰도 글을 쓰고 말도 한다.
혁신적이었던 만큼 매킨토시는 비쌌고, 메모리는 128KB에 불과했다.
애플의 비싼 가격과 적은 메모리는 오랜 전통이다.
결국 얕봤던 IBM 호환 PC가 시장을 장악한다. 1985년, 잡스는 이사회와 충돌 끝에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났다. 해적 깃발은 내려왔다.
애플은 표류했고, 시장 점유율은 추락했다. 한때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97년, 12년 만에 잡스가 돌아온다.
컴퓨터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알 만큼 드라마틱한 귀환.
(12년 간의 광야에서의 방황 중, 픽사(Pixar)를 성장시킨 스토리도 흥미롭지만 이번에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iPod, iPhone, iPad… 잡스의 복귀 후 애플은 진정 해적처럼 무자비하게 시장을 장악해 나아갔다. 동시에 실패도 많았다. 매킨토시 직후의 NeXT 컴퓨터는 너무 비싸 외면받았고, 2000년대의 Power Mac G4 Cube는 아름다웠지만 1년 만에 단종됐다. MobileMe는 출시 직후 서버가 다운됐고, 잡스는 담당 팀을 해고했다.
2007년 처음 등장한 아이폰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었다. 전화, 카메라, 지도, 음악, 인터넷, 은행, 소셜 네트워크—삶의 거의 모든 것이 손바닥 위로 들어왔다.
인류 역사상 이토록 빠르게 전 세계에 퍼진 기술은 없었다.
10년 만에 50억 명이 스마트폰을 갖게 됐다.
AI 시대가 오기 훨씬 전부터, 손 안의 컴퓨터 ‘스마트폰’은 인간의 시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 된다.
아이폰은 중국 정저우의 폭스콘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15만에서 20만 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거대한 ‘아이폰 시티’. 과도한 초과근무, 파견직 남용, 열악한 처우 문제. 혁신의 아이콘이 된 제품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불편하지만, 외면하기 어렵다.
(패트릭 매키의 '애플 인 차이나'라는 책에서 이 부분을 상세히 다뤘다.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2026년, AI 인터페이스가 새로운 화두다.
시리를 선보이며 누구보다 빠르게 AI에 관심을 보이던 애플은, 결국 ChatGPT나 구글에 비해 한참 뒤처졌다. 2024년 WWDC에서 애플 인텔리전스를 발표하며 OpenAI와 손을 잡았지만, 그것도 신통치 않았던지 올해는 구글 제미나이를 탑재할 것이란 소문.
컴퓨터 산업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2011년 세상을 떠났다.
거인의 뒤를 이어 애플을 15년간 이끈 운영의 달인 팀 쿡은, 애플의 시가총액을 3조 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나는 스티브 잡스를 열혈히 추앙했지만, 팀 쿡도 참 좋아한다.
2026년 초, 쿡의 은퇴 준비 소식이 들려온다.
한편 잡스와 함께 애플 디자인의 영광을 이끌었던 조너선 아이브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025년 OpenAI가 그의 회사 io를 인수했고, 아이브는 샘 올트먼과 함께 AI 시대의 새로운 디바이스를 개발 중이다. 2026년 하반기 공개를 목표로 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과연 올트먼이 아이브를 컨트롤할 수 있을 것인가?
시대는 빠르게 변한다. 특히 AI 시대는 더욱 그렇다.
영원할 것 같던 수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견디지 못하고 덧없이 사라진다.
AI도 요즘은 엣지 디바이스에서 동작하는 ‘작은’ 모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인류에게 스마트폰을 선사한 애플은, 새로운 세상에서 인공지능의 새로운 ‘육체’로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을 놓친 대가로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것인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에서, 오랜 애플 팬으로서 소소하게나마 응원하며 지켜보고 싶다.
최대한 신중하게 팩트 체크를 거쳤지만, 기술과 역사를 다루다 보니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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