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PA와 보스턴 다이나믹스(Boston Dynamics)
보스턴 다이나믹스(Boston Dynamics).
얼마 전 CES 2026에서 화제가 된 후, 이제 대한민국에서 이 회사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MIT 출신으로 이제 현대자동차그룹의 일원이 된 이 회사가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린 건, 일반적인 기술 기업과는 달리 실리콘밸리가 아닌, 미국 국방부 산하의 한 기관 DARPA.
1992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20년간 DARPA는 Boston Dynamics에 연구비를 댔고, BigDog, Atlas, Spot 같은 초창기 로봇들의 DNA엔 DARPA의 질문이 새겨져 있다.
"전장에서 병사를 대신해 짐을 나르는 로봇, 가능할까?" 질문 하나가 로봇 공학의 역사를 뒤집었다.
오늘은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비롯해 수많은 기술 혁신의 출발점이 된 DARPA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1957년 10월 4일 밤, 하늘에 작은 점 하나가 떴다.
스푸트니크. 소련이 쏘아 올린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이다.
미국인들은 경악했다. 저 위성이 머리 위를 지나간다는 건 핵탄두도 지나갈 수 있다는 뜻이니까.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듬해 국방부 산하에 특별한 기관을 세운다.
ARPA(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훗날 DARPA로 불리게 될 조직이다.
'고등연구계획국'이라니. 이름부터 야심이 넘친다.
이 기관의 임무는 딱 하나였다. "적이 상상하지 못한 것을 먼저 상상하라."
그 뒤로 DARPA는 미국 기술 혁신의 인큐베이터가 됐다. 정부 기관인데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처럼 움직였고, 프로젝트 매니저에겐 막대한 재량을 줬으며, 실패해도 괜찮다고 했다.
단, 실패하려면 제대로 해야 했다. 소심한 실패? 용납 안 됐다.
1960년대, DARPA의 한 프로젝트 매니저가 질문을 던진다.
"핵전쟁이 터지면 통신망은 어떻게 되지?"
당시 미국 통신 시스템은 중앙 집중형이라 전화국 하나가 날아가면 그 지역 전체가 먹통이 됐고, 소련 핵미사일 한 발이면 미국 전체가 통신불능에 빠질 수도 있었다.
이 질문에 랜드 연구소의 폴 배런이 답을 내놨다. 분산형 네트워크, 중심이 없는 그물망이었다.
데이터를 작은 조각으로 쪼개서 보내고 목적지에서 다시 조립하는 방식인데, 한 지점이 터져도 데이터는 다른 길을 찾아 흐른다. 물이 바위를 피해 흐르듯이.
영국의 도널드 데이비스도 비슷한 개념을 독자적으로 개발했고, 그가 붙인 이름 '패킷 스위칭'이 살아남았다. 이 아이디어가 바로 ARPANET이 됐다.
1969년 10월 29일 밤 10시 30분, UCLA 레너드 클라인록 교수 연구실.
학생 찰리 클라인이 스탠퍼드 연구소(SRI)로 메시지를 보낸다. 보내려던 단어는 "LOGIN".
근데 시스템이 "LO"에서 멈췄다. "Lo and behold(보라!)"라는 뜻으로도 읽히는 우연이었고, 한 시간 뒤 다시 시도했을 때 비로소 성공했다.
인터넷의 역사는 그렇게, DARPA의 연구로부터 시작됐다.
DARPA의 유산은 인터넷만이 아니다.
GPS, 스텔스, 자율주행, 그리고 보스턴 다이나믹스까지. 오늘날 우리 삶을 떠받치는 기술들의 씨앗이 여기서 뿌려졌다.
흥미로운 건, DARPA는 기술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는 것.
대학과 기업에 돈을 주고, 방향만 제시하고, 기다릴 뿐이다.
대신 그들의 진짜 무기는 예산이 아니라 질문이다.
"이게 가능할까?"라고 묻는 대신, "이게 가능하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라고 물었다.
그 질문은 로봇을 넘어 자율주행으로도 이어진다.
최근 한국에서도 테슬라의 FSD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데, 이 자율주행의 시작도 바로 DARPA.
2004년, DARPA가 그랜드 챌린지를 연다.
자율주행차 15대가 모하비 사막 142마일(228km) 코스에 도전했지만 완주한 차는 없었다.
가장 멀리 간 카네기 멜론 대학의 '샌드스톰'도 겨우 11.78km에서 멈춰 섰고, 상금 100만 달러는 주인을 못 찾았다.
2005년, 상금을 200만 달러로 올리고 다시 열었더니 스탠퍼드의 '스탠리'가 132마일(212km)을 6시간 53분 만에 주파했다. 23팀 중 5팀이 완주했고, 이게 오늘날 자율주행 기술의 씨앗이 됐다.
2024년엔 또 한 번 역사가 쓰였다. ACE 프로그램에서 AI가 조종하는 F-16이 인간 조종사와 공중전을 벌였고,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자동차의 자율주행을 넘어, 비행기의 자율주행에 도전하는 중.
군사 기술이 민간으로 퍼지는 DARPA의 패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민간 기업이 분기 실적을 볼 때, DARPA는 다음 세대를 본다.
물론 비판도 있다. 군사 기관이 민간 기술을 주도해도 되는지, 실패한 프로젝트에 세금이 너무 많이 들어간 건 아닌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부정하기 어렵다.
DARPA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글을 읽고 있는 인터넷도 없었을 거라는 것.
전쟁의 공포가 기술 발전을 촉진시킨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우리는 이제 AI 시대에 살고 있다.
ChatGPT와 Gemini가 코드를 짜고, 그림을 그리고, 논문을 요약해 준다.
"답을 찾는 능력"은 더 이상 희소하지 않다. 기계가 다 해주니까.
그렇다면 우리 인간에게 남는 건 뭘까?
DARPA가 70년 가까이 세상을 바꿔온 비결을 다시 보자.
천조국 미국의 '예산'의 힘을 부정할 순 없지만, 그래도 진짜 무기는 예산이 아닌 질문이었다.
"이게 가능할까?"가 보다 "이게 가능하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전자는 현재의 한계 안에서 답을 찾게 하고, 후자는 한계 너머를 상상하게 만든다.
전자는 실패를 두렵게 하지만, 후자는 실패를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AI 시대에 우리가 배워야 할 것도 같다.
AI에게 "이거 해줘"라고 시키는 건 이제 누구나 한다.
하지만 "우리가 풀어야 할 진짜 문제가 뭐지?", "이것이 가능해지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라고 묻는 것, 그건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DARPA가 던진 질문들은 인터넷을 만들었고, GPS를 만들었고, 자율주행차를 만들었다.
질문은 그렇게 기술을 현실로 끌어낸다.
앞으로 AI와 함께 살아갈 우리에게도 같은 능력이 필요하다.
답을 찾는 기계 옆에서, 질문을 던지는 인간으로 남는 것.
최대한 신중하게 팩트 체크를 거쳤지만, 기술과 역사를 다루다 보니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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