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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종신 Feb 20. 2021

사람의 바둑을 추억하며

웹툰 미생과 알파고 그리고 이세돌, 절예, 신진서, 인공지능 바둑...

드라마화되어 더욱 유명해진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을 엮은 책에는 독특한 구성이 눈에 띈다.
제1회 응씨배 결승 5번 국 조훈현 대 녜웨이핑의 대국 기보를 매 절마다 한수 한수 해석을 더해서 실어놓은 것이다.

바둑은 착점마다 많은 고뇌와 의미를 담아 인생을 반영한 듯한 장광한 드라마가 펼쳐지는 인간들만의 예기로 여겨졌었다.
고수들이 둔  매수의 의미를 복기하고 다시 되뇌며, 스스로 기력을 올려가는 수련이 더해지던 바둑.

하지만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바둑의 본질이 더 이상 인간 능력치의 예봉을 다투는 영역으로서 수성에 실패하기에 이르렀다.

2016년 춘삼월, 구글이 투자한 딥마인드가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과의 이벤트 매치가 그 전환을 세계에 알렸다.
 
당시의 전  대국을 가슴 졸이며 인터넷 중계로 지켜봤었다.
알파고가 매수 둬가는 정석과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를 혼란 속에 설명하던 해설자의 당황한 목소리, 그리고 낙승을 예상하다 연이어 대국에 지고는 괴로운 표정을 짓던 이세돌 9단의 표정이 생각난다.

당시 딥마인드는 알파고 개발을 위해 전 세계 프로 바둑기사의 3000만 건 넘는 대국 기보를 알고리즘에 입력시켰다고 했다.  그 뒤에는 수 주 동안 알파고가 스스로 대국을 통해 머신러닝을 완성하도록 했고, 대국에 소요된 시간을 사람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1,000년 치의 대국이 진행된 것이라고 했다.  무려 1,000년의 세월....

그리고 알파고는 인간계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두는 사람 중 한 명인 이세돌 9단을 완벽에 가까운 패배로 이끌었다.  최종 전적은 4승 1패.

그래도 이세돌 9단이 연이어 세 판을 지고 수세에 몰리다가 4국에서 불계승을 거뒀을 때의 기뻤던 장면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화면에 뜬 세련되지 않은 팝업창으로 알파고는 자신의 유일무이한 1패를 알렸었다.

지금 바둑의 수련을 위해 더 이상 고수의 문하생으로 수년의 시간을 인고하며 보내지 않게 되었고 백 년이 넘게 축적된 인간의 정석도 폐기되었으며, 다만 다양한 인공지능을 통해 이기는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는 것으로 변모되었다고 한다.
19*19의 인생을 축소한 바둑판에 대한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고, 이세돌 9단도 바둑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은퇴를 선언했다.  


알파고도 진화를 계속해서 2017년 커제 9단과 대국했던 알파고_마스터 버전, 이후의 알파고_제로까지
개발이 이어졌다. 딥마인드는 바둑에는 더 이상 도달해야 할 목표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후 알파고는 개발을 멈추기에 이른다.

지금은 여러 나라의 다양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각축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절예(絶藝)’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사람과의 비교는 이제 사실상 의미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 아쉬운 결론이다.  
인공지능을 뺀 세계랭킹이 사람 바둑에 주어지는 최고의 위로가 되고 있을 뿐.
현재는 우리나라의 신진서 9단과 중국의 커제 9단이 세계랭킹 1,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앞으로도 사람들이 혹은 ‘사람들만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사람들도 하는 분야’로 만들어 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사람들만이 해 나갈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을 수성하며, 문명의 이기를 조화롭게 활용해 인간 궁극의 행복을 추구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도전은 초침이 움직이는 매 순간마다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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