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내셔널 트러스트 여행기
2019년, 나는 도망치듯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영국 해외 연수'였지만, 내면의 진짜 이유는 '생존'이었습니다.
대학병원에서의 진료, 의과대학 강의, 정책연구,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연구 논문들... 의사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삶은 매일이 숨 가쁜 전쟁터였습니다.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사가 정작 자신의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줄도 몰랐던 시절, 소위 말하는 '번아웃(Burnout)'이 찾아왔습니다.
더 이상 하얀 가운과 모니터 불빛만 보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낯선 땅 영국에서 나는 처음으로 '해야 할 일(To do list)'이 아닌, '나를 위한 시간' 을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런던에 도착했지만, 도심속의 대영박물관이나 타워브리지는 나의 지친 정신을 다독이기에는 모자랐습니다. 대신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길가 표지판에 그려진 작은 문양 하나였습니다.
'떡갈나무 잎과 도토리.'
그것은 영국의 자연과 문화유산을 지키는 시민 단체,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의 상징이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이 단체는 마치 보물지도처럼 나를 영국의 가장 깊숙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안내했습니다.
나는 아내,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내셔널 트러스트 가족 회원(Family Membership)에 가입했습니다. 그 작은 카드 한 장이 우리의 여행을, 아니 나의 인생을 바꿔놓을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우리는 주말마다 도토리 문양을 따라 숲으로, 절벽으로, 그리고 수백 년 된 정원으로 떠났습니다. 웅장한 자연 앞에서 의사 가운을 벗은 나는 그저 한 명의 아버지이자, 자연의 일부인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흙냄새를 맡으며 숲길을 걷는 동안 굳어있던 마음이 말랑해졌고, 가족들과 손을 잡고 거니는 정원에서 나는 비로소 깊은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여행자에게 내셔널 트러스트 멤버십은 단순한 입장권 그 이상입니다. 영국 전역 500여 곳의 유산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고, 대부분의 주차장이 무료입니다. (영국의 살인적인 주차비를 생각하면, 이것만으로도 본전은 뽑고도 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낸 회비가 영국의 자연을 '영원히, 모두를 위해(For ever, for everyone)' 보존하는 데 쓰인다는 사실은 여행에 특별한 가치를 더해줍니다.
�� [Travel Tip] 내셔널 트러스트 멤버십 안내
영국 여행(특히 렌터카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연간 회원권 가입을 강력 추천합니다. 3~4곳만 방문해도 이득이며, 현장에서도 바로 가입 가능합니다.
가족(Family 2 adults): 성인 2명 + 자녀/손주 무료 / 연 £159.60 (월 £13.30)
성인 2인(Joint): 성인 2명 (주소지 동일) / 연 £148.80 (월 £12.40)
성인 1인(Individual): 성인 1명 / 연 £91.20 (월 £7.60)
청년(Young person): 18-25세 / 연 £45.60
※ 2026년 기준 요금이며 변동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하세요.
이 기록은 40대 의사가 영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숲과 정원을 통해 치유받은 회복의 일기이자, 당신을 영국의 진짜 아름다움으로 안내할 가이드북입니다.
유명 관광지의 북적임 대신,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그리우신가요? 그렇다면 저와 함께 도토리 문양을 따라가 보시죠.
가장 먼저 보여드리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영화 <오만과 편견> 속 다아시가 사랑을 고백했던, 영화속 그곳 호수 정원입니다.
다음 주, '스투어헤드(Stourhead)'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