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한 무기력의 나날들

by 은진

강박장애와 우울증을 겪고 있는 나는 엄마 역할을 수행하기가 버거웠다.


2024년에는 항상 아기에게 미안한 엄마였다. 강박장애로 청결에 민감해져 온종일 집을 쓸고 닦고 젖병의 젖꼭지를 몇 번이고 삶았는데, 그동안 아이를 모빌만 보게 하였다. 하루 종일 청소를 한 날이면 모빌을 보다가 울다 지쳐 잠든 아이를 보며 죄책감이 들었다. 아이 분유를 먹이다가도, 아이와 놀아주다가도 여느 보통의 엄마들과 다른 나의 모습을 비난하고 때론 자책하며 눈물이 났다. 그렇게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 각성 상태로 지내며 청소하고 아이를 케어하고를 반복했다.


2025년 초여름, 극심한 무기력이 찾아왔다. 아마도 2024년 무리한 탓에 에너지가 고갈이 된 것이리라. 아이는 7시에 일어나는데 나는 8시~9시가 되어서 겨우 일어났다. 만약 아이가 깨우지 않으면 아예 일어나지 않고 누워있었을 것이다. 9시가 다 되어서야 아침밥을 주었다. 밥을 주는 건 아무리 무기력해도 꼭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였다. 아이 밥을 만들고 먹이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소명 같은 것이었다. 밥을 만드는 것이 힘들었던 나는 5일 치 음식을 한꺼번에 만들어서 냉동해 놓고 끼니마다 녹여 주었다. 아이는 마치 우주식처럼 얼린 반찬과 얼린 밥을 녹인 음식을 매 끼마다 먹었다.


밥을 먹고 12시 무렵이 되면 우유를 준다. 그러면 아이는 우유를 먹고 내가 자면 따라 잤다. 처음에는 엄마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내 옆에 같이 잠든다. 같이 놀아주지 못하고 매번 자는 게 너무 미안했지만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 시기는 자살사고와 우울함의 감정으로 가득 찬 암흑기 었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엄마 없이 살게 되겠지? 그럼 우리 아이는 누가 먹여 살리지? 남편이 잘 키울 수나 있을까?’


우울증으로 인해 무시무시한 상상을 매일 했다. 아마 거짓말 조금 보태서 상상으로 50번도 더 아파트에서 떨어졌을 것이다. 그럴 때면 아이는 누가 키우냐 걱정하며 자살사고를 마무리했다. 내 목숨은 아이가 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이와 같이 자고 일어나 3시가 되어 겨우 점심을 차려준다. 아이와 놀고 싶지만 나의 기분은 한없이 다운되어 놀아줄 수가 없었다. 그게 너무 미안했다. 아이가 없던 시절 우울증을 겪던 나는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지만 아이가 있고 나서는 달랐다. 책임감이 생겨서 자살사고도 쉽지(?) 않았다. 강박장애가 있어 집에 있는 싱크대를 만질 수가 없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고, 그로 인해 우울한 것도 싫었다. 하지만 아이를 위해 버텼다.


점심을 차려주고 또 눕는다. 아이는 혼자 놀다가 잠든다. 이내 바깥이 어두워지면 아이가 일어나고, 조금 있다가 남편이 온다. 남편에게 다 표현할 수는 없기에 저녁을 함께 먹고 아이 밥을 차려주면 하루가 다 간다.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다.

“너무 무기력해요. 어떻게 해야 하죠? 아이를 데리고 일부러 캠핑을 가기도 하고 밖에 나가기도 하고 노력하는데, 쉽지 않아요.”


“지금 노력하고 있는 것도 잘하는 거예요. 날씨 탓도 있고요. 본인만의 방법을 찾아야 해요. 본인이 수영도 한다고 그랬죠? 수영할 때 힘들다고 멈추면 안 되고, 힘든 걸 참고 앞으로 나아갈 때 끝에 도달하죠? 마찬가지에요. 힘들 때 멈추지 말고 팔을 휘저으면 앞으로 나가요.”


무기력한 그 시기, 힘들지만 버텼다. 버티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무기력할 때는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팔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가야 한다. 늪에 빠질 때 가만히 있으면 끝도 없이 매몰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잠시 멈출 수는 있다. 그러나 곧, 자신만의 방법으로 팔을 휘두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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