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신 상담심리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담시간을 예약했다.
인생 처음으로 상담심리센터에서 상담을 받는 거라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방문했다. 에토프 컬러의 가죽재킷을 입은 나를 보시더니 상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은진 씨. 스타일이 멋지네요.”
육아만 하다가 오래간만의 칭찬에 쑥스러워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상담실로 향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떤 선생님이 귓속말을 하며 성희롱을 했어요. 그때부터 강박장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중략)… 출산 후에 오염에 대한 강박증이 다시 생겼어요. 하루 종일 집안을 쓸고 닦았어요. 어떨 때는 아이가 오염된 것 같아 안을 수 없을 때도 있었죠. 모유수유 하느라고 치료도 미뤘었습니다.”
약 20년 전 과거의 일부터 아이를 낳고 난 후 재발한 강박장애까지 한참을 말했다. 내 말을 들으시던 상담 선생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원래 잘 안 우는데 얘기를 듣다 보니 눈물이 나네요. 고등학교 때 강박증 발생한 거, 은진 씨 탓 절대로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요. 그 선생님을 지금 만난다면 어떻게 하고 싶어요?”
“나한테 왜 그랬냐고 물어보고 싶어요.”
“은진 씨 착하다. 복수하거나 욕하거나 그러지 않고요?”
“네. 세월이 지나니까 그냥 궁금해요. 대체 왜 그랬는지.”
“모유수유한다고 고생한 거 좋은 엄마예요. 요새 그렇게 하는 사람 없어요.”
상담 선생님은 당장 해결책을 말씀해 주시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하시거나 공감해 주셨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상담시간까지 이 검사지를 완성해 오세요.”
다양한 질문이 빽빽하게 있는 검사지였다. 집에 가서 무슨 검사인지도 모르고 질문의 답에 해당하는 번호를 까맣게 색칠했다.
두 번째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 선생님이 검사지를 해독해 오셨다.
“검사를 해보니까 강박도 높은데, 우울이 많이 높게 나왔네요. 그리고 직업 적합도가 매우 낮게 나왔어요. 교사가 된 지 몇 년 되셨죠?”
“10년이요.”
“10년 동안 맞지 않는 직업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힘드셨겠어요.”
상담 선생님이 말씀하신 검사지의 결과를 들으니 내가 왜 그토록 우울했는지 한 번에 이해가 되었다. 나는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해서 남들이 보기에는 우울한 지 모른다. 또한 사회생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무리 없이 해냈기에, 주변에서는 내가 교사라는 직업이 잘 맞다고 평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속은 곪을 대로 곪아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여 우울증 치료를 받았던 지난한 세월이 떠올랐다.
이후에도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상담을 여러 차례 받았고, 남편과 함께 부부상담을 받기도 하였다.
상담심리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며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씩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검사를 통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함으로써 자책을 줄일 수 있었다.
마음이 아프고 머릿속이 복잡한 경우에는 정부에서 실시하는 ‘정신건강 심리상담 바우처 사업’으로 상담 비용을 지원받아 상담을 해보기를 권한다. 누군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고, 더는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