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강박장애를 세상에 꺼내 보이다

by 은진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중에 직장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교 선생님들이 선생님 한 번 보자고 하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지금은 어려울 것 같아요. 제가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받을 당시, 아이는 모유를 적게 먹었고 분유로 보충해도 다 토해내기 일쑤여서 체중이 늘지를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거기다 매일 방을 쓸고 닦기를 반복하는 강박행동과 오염으로부터 불안에 떨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초췌하게 느껴져서 누군가를 만날 기분이 아니었다. 스스로 세상과 단절하고 육아에 전념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 강박장애, 우울증으로 신이 지치고 답답해서 누구에게라도 이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은 너무 바빴고,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은 상담시간이 너무 짧았다.

사람이 그리웠다. 옆동네에 사는 언니같은 직장동료 P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몇 개월 사이 스트레스로 살이 너무 많이 빠져 청바지가 흘러내렸다. 오래간만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벨트를 꽉 조이고 블라우스를 입었다. P선생님은 싱그러운 초록빛 정원이 보이는 레스토랑에 나를 데려갔다.


강박장애와 우울증이 있다고 사람들에게 말하면 나를 이상하게 볼 것 같아서 이제껏 숨기며 살아왔는데, P생님이라면 말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선생님. 제가 왜 사람들을 만나는 걸 피했는지 말씀드릴게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강박증이 발생했어요. 남자들을 피해 다녔는데, 남자들과 부딪히면 성기가 닿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찝찝했어요. 매일 두려움에 떨었어요. 대학교 가서 완치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기를 낳고 재발했어요. 매일 방을 쓸고 닦고 하루 종일 반복했어요. 어떤 날은 화장실 등을 갈다가 플라스틱 가루가 천장에서 떨어졌는데, 몸과 화장실이 오염된 것 같아 주저앉아 울기도 했고요. 근데 모유수유한다고 치료받는 것도 미뤘어요…….”

“쌤.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구나.”


선생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에게 깊이 공감하는 그의 표정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그 순간 주변이 환하게 빛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에 나는 힘든 것은 되도록 표현하지 않고 미련하게 혼자서 매번 해결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힘든 줄도, 아픈 것도 잘 몰랐다. 성인이라면 감정을 혼자 추스르는 게 미덕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표현하면 상대방에게도 짐을 얹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삶은 상대방이 내미는 손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쌤. 이제 모유수유 그만해. 분유 먹여도 잘 커. 나도 분유 먹였어. 분유 먹이면서 애가 엄마랑 눈맞춤 할 수도 있고 애도 양껏 먹기 때문에 만족하고. 언니 말 들어.”


이제껏 주변에서 모유수유 그만하라고 말할 때면 노력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섭섭했다. 하지만 선생님의 조언은 나의 걱정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하는 것임을 알았기에 따스하게 다가왔다.


선생님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어느 때보다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일단 치료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모유수유에 대한 목표, 아니 집착을 내려놓고 모유수유를 중단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약도 더 자유롭게 쓸 수 있으리라.

그렇게 강박장애의 정복에 한 걸음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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