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 변호사도 인턴자리가 없답니다.
제가 바라본 AI라는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1970~80년대에 태어난 4050 기성세대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동시에 가장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흑백 TV로 만화를 보던 시절부터 컬러 TV, 삐삐, 스마트폰을 거쳐 지금의 AI까지 인류의 모든 정보 혁명을 온몸으로 겪어낸 세대입니다. 심지어 주산학원을 다녔고 로터스 123이라는 것을 사용하다. 엑셀을 다루는 다양한 시절의 잔재까지 맛본 이들도 있죠. 그 기나긴 사회생활 동안 수많은 현장에서 깨지고 구르며 '판단'이라는 고유한 생존 근육을 뼈저리게 길렀습니다. 오너가 또는 상사가 되면 다들 왜 꼰대가 되는지 그 생리도 겪어봤기에 상사를 구슬리고 대하는 법도 본능적으로 압니다.
이 7080세대는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하기에 불행할 것입니다. 은퇴 시기는 계속 늦춰지고 온전한 휴식은 실종될 테니까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짙은 경험과 판단력을 가졌기에 오랫동안 노동 시장에서 살아남아 돈을 벌 수 있으니 가장 행복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다음 세대입니다. 최근 스탠퍼드 등 주요 대학의 연구진과 경제학자들은 AI로 인해 2030 세대의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현상을 '조용한 침식(Silent Erosion)¹'이라고 부르며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이는 거대한 대규모 해고가 아니라, 기업이 실무진의 신규 채용을 줄이면서 조직의 가장 말단에 있는 신입과 대리급 2030 직장인들이 가장 먼저 AI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조용히 밀려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왜 회사에서 사라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침식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안 사라지는 대리'가 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최종적인 '판단'과 '결정'은 결국 인간이 해야 한다는 헤게모니 싸움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글로벌 컨설팅 회사가 수백 장의 보고서를 써주어도, 결국 창조적인 방향을 정하고 도장을 찍어 책임을 지는 건 인간의 몫입니다. 그래서 기업은 어느 시대든 '판단과 경험이 많은 인간'을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2030 세대 중 상당수는 이 '판단력'을 기를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채 자랐습니다. 이른바 대한민국 사교육 시장에 뼈대 깊게 회자되던 씁쓸한 농담이 하나 있죠. "자식의 성공은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에서 완성된다." 아빠들은 교육 트렌드도 모르니 그냥 돈이나 내고 입 닥치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심지어 엄마들 무리에서도 회사 생활을 하는 엄마는 아부를 떨어야 교육 정보를 받아가는 기이한 현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엄청난 모순이 발생합니다. 그 핍박받고 무관심을 강요당하던 아빠들이야말로, 차가운 기업 현장에서 회사가 어떤 인재를 뽑고 어떤 직원을 위로 올려 보내는지 가장 뼈저리게 잘 아는 진짜 면접관이자 결정권자들입니다.
정작 현장에서 필요한 생존 지능은 배제된 채, 2030 세대는 엄마가 완벽하게 재단해 준 옷만 입고 자랐습니다. 엄마가 짜준 학원 스케줄, 엄마가 정해준 대학과 전공.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밥 잘 먹고 칭찬받으며 평탄하게 살았습니다. 내 인생의 모든 복잡한 '판단'을 엄마(혹은 부모)가 대신해 주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타인과 대립하고 부딪히며 설득해 본 경험이 없다 보니, 전화로 대화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폰 포비아(Phone Phobia)²' 증후군까지 앓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콜센터, 택시, 버스 기사 같은 직업들이 단시간 내에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과연 어떻게 사라지는지, 그리고 그 빈자리에 어떤 인간이 남게 되는지 흥미로운 실험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얼마 전, 군대에 간 아들을 포함해 가족 단위로 묶어서 보던 한국의 한 토종 OTT 서비스에서 '가정 분리'를 이유로 추가 계정을 구매하라는 안내가 떴습니다. 제가 직접 인간 상담원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해 보았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기계 그 자체였습니다. "고객님, 따로 사시면 규정상 돈을 따로 내시는 게 맞습니다."
이번에는 상황을 똑같이 가정하여 미국의 생성형 AI와 상담을 진행해 보았습니다. AI의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나라를 지키러 간 군인 아들이 그런 대우를 받으면 부모님 입장에서 정말 화가 나실 것 같습니다. 규정이 당장은 그렇지만, 이 부분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부에 보고해서 고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계속 피드백을 드리겠습니다."
미국에서 만든 AI라서 특별히 군인에 대한 예우가 깊었던 걸까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고객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공감'마저 이제는 훈련받은 매뉴얼 인간보다 AI가 훨씬 더 잘 해낸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AI가 아무리 멋진 보고서를 올려도, 결국 그 기업의 정책을 바꾸고 군인 할인 요금제를 신설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입니다. 기계처럼 규정만 읊는 인간 상담원(대리)의 자리는 사라지겠지만, AI의 리포트를 읽고 기업의 손익과 사회적 파장을 '판단'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의 자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미국 등지에서 이미 상용화되고 있는 무인 자율주행 택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율주행의 성지라 불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웨이모(Waymo) 등 무인 로보택시가 이미 전체 승차 공유 시장 점유율의 25%를 훌쩍 넘기며 인간 기사들이 운행하는 전통의 기업 리프트(Lyft)를 추월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제 무인 택시는 도로 위 4대 중 1대꼴로 돌아다니는 완벽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무인 택시들도 길을 가다 예기치 못한 도로 공사나 복잡한 사고를 만나 AI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멈춰 서면, 결국 원격 관제 센터에 있는 인간에게 통제권을 넘깁니다.³ 과거에는 인간 기사 1명이 차 1대를 몰았지만, 이제는 판단력을 갖춘 관제사 1명이 모니터 앞에서 열대, 스무 대의 무인 택시를 동시에 운행하고 제어하는 구조로 바뀌는 것입니다. 단절된 현장의 대리들은 사라지고, 통제하고 판단하는 소수의 제너럴리스트만 살아남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라지지 않는 대리가 되기 위해, 지금의 2030 세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앞으로 회사의 면접이나 실무에서는 '정답을 아는지'가 아니라 '맥락을 이해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쏟아질 것입니다.
단순한 지식을 달달 외우는 것은 더 이상 무기가 되지 못합니다. 최근 우스갯소리로 떠도는 농담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 심각한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는데 AI에게 "테헤란의 주요 거점을 타격하라"고 지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혹시 텍스트와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AI가 대한민국 서울 강남 한복판의 '테헤란로'를 폭격 대상에 포함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농담입니다.
우리는 1970년대 중동 건설 붐 당시 이란과의 우호를 다지기 위해 서울 강남에는 '테헤란로'를, 이란 테헤란에는 '서울로'를 만들었다는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단어의 표면적인 뜻만 긁어모으는 기계와 달리, 그 이면에 숨겨진 진짜 의미와 역사, 인간관계의 '맥락(Context)'을 종합해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길러야 할 진짜 문제 해결 능력입니다.
그럼 이제 와서 20대, 30대 직장인들이 다시 학원에 등록해 공부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무엇이 옳은 판단인지 알고 있습니다. 단지 내 손으로 직접 판단해 본 '경험'이 부족해서 자신이 없을 뿐입니다.
과거에는 이 경험을 조직 내에서 긴 시간 선배들과 부대끼며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선배들에게 술을 사 가며 매달리거나 열정 페이를 감수하며 배우기에는 시대도, 우리의 마인드도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버스도 떠났고, 선배들도 각자 살아남기 바쁩니다.
이제 남은 동아줄은 단 하나, 바로 '책'입니다.
가리지 않고 많이 읽는 다작 다독(多作 多讀)만이 유일한 해법입니다. 소설도 좋고,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글 같은 자기계발서도 좋고,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문학 서적이면 더욱 좋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글자를 읽어 치우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주인공이나 저자의 상황에 자신을 대입해 보십시오. "만약 나라면 저 위기에서 어떻게 판단했을까?", "내가 저 오너라면, 내가 저 상황의 대리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엄마가 재단해 준 옷을 벗어 던지고, 책 속의 수많은 간접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렇게 활자를 통해 길러낸 판단의 근육만이, 당신을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대리'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주석1] 조용한 침식(Silent Erosion) 및 스탠퍼드대 연구 : AI와 자동화 기술의 발달로 인해 화이트칼라 초급 관리자(신입~대리급)의 일자리가 서서히 사라지는 현상. 실제로 미국 스탠퍼드대와 하버드대 등의 최근 연구 논문에 따르면,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에서 경력직 일자리는 그대로 유지되는 반면 20대 초반 사회 초년생의 취업(사다리 하단)이 상대적으로 14~16%가량 크게 감소하는 고용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석2] 폰 포비아(Phone Phobia) : 스마트폰의 메신저나 텍스트 소통에만 익숙해진 나머지, 타인과 직접 음성 통화를 하거나 대면하여 설득하는 과정 자체에 극심한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증상.
[주석3] 원격 관제 자율주행 (Teleoperation) : 웨이모(Waymo) 등 미국의 무인 자율주행 로보택시 업체들은 AI가 공사 구간이나 복잡한 돌발 상황을 마주해 스스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멈춰 설 경우, 원격 지원 센터의 인간 관제사가 개입하여 차량의 경로를 지시하거나 통제권을 넘겨받아 해결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주석4] 테헤란로와 서울로 : 1977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와 이란의 수도 테헤란시가 자매결연을 맺은 것을 기념하여, 서울 강남구의 삼릉로를 '테헤란로'로, 테헤란시의 60m 도로를 '서울로(Seoul Street)'로 각각 명명한 역사적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