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과 태양광 전자시계
백일을 맞은 승이는 아기 의자가 비좁을 만큼 우람했다.
사진관 주인은 난감한 얼굴로 서성였고, 결국 커다란 어른 의자가 동생의 자리가 되었다.
엄마는 그 위에 청록색 아기 포대기를 화려하게 깔아주었다. 비단처럼 반짝이는 포대기 위에 앉아 있던 아기.
사진 속의 동생은 온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작은 왕처럼 보였다.
왕은 자라며 더욱 늠름해졌다.
유치원에 간 동생은 또래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그 늠름한 뒷모습을 바라볼수록 내 마음 한구석은 자꾸만 비뚤어졌다.
우리 집 다섯 형제자매 가운데 유치원을 다니지 못한 건 나뿐이었다.
일본에서 신발 공장을 하던 시절, 오빠와 언니들은 모두 유치원 가방을 멨다. 그러나 세 살에 쫓기듯 한국으로 돌아와 네 살에 동생을 맞이한 나는, 가난이라는 이름의 문턱에 걸려 유치원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 기억은 내 어린 가슴에 남은 낙인이었고, 훗날 내가 가장 오래 써먹게 될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나는 엄마가 가장 아파할 지점을 귀신같이 알아보는 영악한 막내딸이었다.
“흥! 나만 우리 집에서 유치원 못 갔잖아. 나 저거 사줘!”
그 주문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마법처럼 유효했다. 신발 하나, 필통 하나를 얻어낼 때마다 나는 ‘유치원’이라는 카드를 꺼내 엄마의 죄책감과 거래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 손목에 그토록 갖고 싶던 검은색 태양광 전자시계가 채워지던 날. 삐삐 소리를 내며 숫자가 바뀌는 그 시계를 손에 넣고서야 나는 비로소 엄마를 놓아주었다.
유치원 가방 대신 얻어낸 태양광 전자시계.
햇볕에 충전한다며 옥상에 올라 빨랫줄에 빨랫집게로 집어 자랑스럽게 바라보곤 했던, 검고 투박했던 나의 소중한 시계.
그것은 내 어린 시절의 결핍이 보상받은 마지막 영광이었다.
다시는 성사되지 않을 엄마와 나 사이의 길고도 처절했던 보상 계약이 그날, 조용히 끝이 났다.
그 이후, 그 소중했던 태양광 전자시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 멈췄는지,
어디에 두고 왔는지,
누군가에게 건네줬는지도.
이상하게도 그 시계가 사라진 기억보다 그 시계를 갖고 있던 나의 손목 감각이 더 오래 남아 있다.
햇볕이 닿으면 다시 움직이던 숫자들.
시간은 흘렀지만,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서 무엇을 받아내지 않았다.
아마 그 시계는 내게 시간을 갖게 해주고 조용히 제 역할을 끝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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