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나의 숨 트멍] 다섯 번째 구멍

승리(Victory)의 새우깡

by 숨나

남동생이 태어난 다음 날, 우리 자매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골목으로 튀어나갔다.
세상 모든 승리를 거머쥔 전사들처럼 우리는 만나는 사람마다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려 보였다.


“내 동생은 남자야!
이름도 승리야, 승리! 빅토리!”


승리가 아니라 승이였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승리인지 승이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장애를 가진 오빠를 둔 우리 가족에게 건강한 사내아이의 탄생은 지독하게 이어져 온 패배의 기록을 끊어낼 유일한 이름이었으니까.


승리는 이름값을 하려는 듯 발육이 남달랐다.
이유식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 엄마는 백일을 갓 넘긴 아기에게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였고, 다른 아기들이 자신의 주먹을 빨 때 내 동생은 어른들이 건네준 돼지비계를 토실한 양손에 쥐고 젤리처럼 쪽쪽 빨았다.


우람한 우량아였던 동생은 어느새 우리 집의 새로운 왕이 되었다.
가난은 가장 귀한 것을 가장 귀한 자에게만 허락했다. 우리 집에서 ‘새우깡’ 한 봉지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권력자는 아기 동생뿐이었다.


“멍멍! 승이야, 누나랑 놀자! 멍멍!”


동생의 새우깡을 합법적으로 얻기 위해 열 살이 훌쩍 넘은 언니들과 나는 기꺼이 네 발로 기어 강아지가 되었다. 우리는 동생 주위를 빙빙 돌며 꼬리를 흔드는 시늉을 했고, 과자 봉지를 툭툭 쳐 바닥에 새우깡을 떨어뜨렸다.


“아이쿠, 떨어졌네! 멍멍!”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입으로 잽싸게 낚아채며 우리는 신이 나서 낄낄거렸다.
과자를 뺏긴 줄도 모르는 아기는 누나들의 재롱이 그저 좋은지 침을 흘리며 깔깔 웃어댔고, 우리는 그 웃음소리를 방패 삼아 짭조름한 새우깡 조각을 입안에서 오래오래 아껴 먹었다.
승리를 축하하며 얻어낸 전리품치고는 참으로 가엾고, 그래서 더 달콤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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