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창살 너머의 하얀 스타킹
여섯 살의 나는 병원 벽장 속에 가득 쌓인 황도와 백도 통조림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알맹이가 톡톡 씹히는 쌕쌕 음료수, 뚜껑을 따는 소리, 입안에 번지던 단맛.
버스에 치여 병상에 누운 엄마의 고통은 그때의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빠는 돈을 벌러 나가야 했고, 언니들은 학교에 갔으며, 아기 때 2층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세 살 지능에서 성장이 멈춘 오빠는 마른 변이 굴러다니는 집에 방치된 채였다.
여섯 살의 나는 간병인이 아니라 병원이 허락한 잔심부름꾼으로 그곳에 상주했다. 엄마의 비극이 남긴 통조림의 단맛에 취해 나는 내가 불행한 줄도 몰랐다.
어느 날, 병원 복도에서 만난 또래 여자아이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유치원에 뭘 가지러 가야 한다는 말에, 나는 말로만 듣던 유치원을 구경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쫄래쫄래 그 애를 따라나섰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유치원이 아니었다. 그 애는 차갑고 까만 쇠창살 문 앞에 나를 세워둔 채 혼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넓은 운동장 너머로 그 애의 등이 멀어졌다. 나는 맨발로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딛고 서서 해가 기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발가락이 시려왔다. 어둠보다 먼저 공포가 내려앉았다.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헝클어진 머리에 환자복을 입고 나를 찾아 헤매던 엄마는 무서운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어디에 다녀왔느냐는 불호령 앞에서 나는 유치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는 말 대신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화를 내다가 이내 아무 말 없이 복숭아 통조림 한 캔을 따주었다. 공포와 추위에 떨던 나는 그 달콤한 과육을 씹으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복도에서 다시 만난 그 애에게 나는 반갑게 달려갔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얼음장 같은 냉대였다.
“흥! 너는 말도 없이 혼자 가냐? 너랑 다시는 안 놀아!”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흔들며 새하얀 스타킹에 반짝이는 까만 구두를 신은 아이는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멀어졌다.
그 애는 유치원 안에서 무엇을 가져왔을까. 내가 쇠창살 밖에서 떨던 시간에 그 애는 따뜻한 교실 안에서 누구와 웃고 있었을까.
그 뒷모습이 흐릿해 보였던 것은 내 눈에 고인 눈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끝내 닿을 수 없었던 그 애의 새하얀 스타킹의 빛깔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다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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