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나의 숨 트멍] 여덟 번째 구멍

오빠의 란도셀과 요술공주 밍키

by 숨나

까만 쇠창살 안, 그 넓은 운동장에 마침내 내가 섰다.
국민학교 1학년, 생애 처음으로 학교라는 문턱을 넘어선 날이었다.


“우리들은 1학년, 어서어서 모이자~.”


교실 가득 울려 퍼진 흥겨운 노랫소리. 나는 낯설고 신기한 눈으로 아이들을 훑었다. 그러다 한 아이에게 시선이 멈췄다. 새까맣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높이 묶고 꼿꼿하게 앉아 있던 예쁘장한 아이.


‘저 애랑 친구 하고 싶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앞서가는 그 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반가움에 성큼 다가가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안녕! 너도 이쪽으로 가니? 나도 이쪽인데, 같이 가자.”


그 애는 나를 슬쩍 흘겨보더니 도톰하고 붉은 입술을 달싹이며 차갑게 말했다.


“야, 너네 집 거지니? 가방 꼴이 그게 뭐야?”


말꼬리처럼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휙 날리며 멀어져 가는 뒷모습.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억울했다.
이건 엄마가 일본에서 가져온 비싼 거라고 했는데.
내 어깨에 매달린 것은 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보이던 핑크색 ‘요술공주 밍키’ 가방이 아니었다.
오빠가 일본에서 학교를 다닐 때 메던 투박하고 딱딱한 까만색 란도셀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끝내 버리지 못하고 물려받은 오빠의 흔적.


그날, 내 어린 어깨 위에서 오빠의 란도셀이 납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졌던 것은 그 애의 차가운 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도 남들처럼 공주가 그려진 예쁜 가방을 갖고 싶다는 뒤늦은 욕망 때문이었을까.


그때 나는 세상에 홀로 선 느낌을 처음 알았다. 어깨를 누르는 무게보다 더 깊게 스며드는 부끄러움과 서러움, 그리고 그것을 혼자서 견뎌야 한다는 사실.


내 나이 이제 오십. 이제는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었지만, 정작 갖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만약 내가 그때로 돌아가 길 위에 멈춰 선 어린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그 작은 어깨를 부서지도록 꼭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귓속말을 해주고 싶다.


“울지 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요술공주 밍키 가방,
지금 바로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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