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오늘을 춤추듯, 함께 행복하기

숲을 나와 타인과 손을 잡는 기쁨

by 태연하게

최근 나는 브런치에 그동안 배운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복습하며, 나만의 해석을 담은 에세이 형태의 레시피를 포스팅하기 시작했다. 거창한 요리책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욕심보다는,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 생각, 촉각, 후각의 정직함과 그 과정을 통한 치유의 경험을 기록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이 앞섰다.

단단한 당근을 씻을 때 손끝에 전해지는 서늘하고도 견고한 감촉, 칼날이 도마와 부딪히며 내는 규칙적이고 경쾌한 리듬은 복잡했던 머릿속을 정갈하게 비워주었다. 끓어오르는 냄비 안에서 퍼져나오는 구수한 흙냄새와 단맛은 그 자체만으로 정직한 위로였다.


글을 올리고 '발행' 버튼을 누를 때마다 혹시 아무도 읽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설렘 섞인 불안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은 아니어도 내 글 아래로 잔잔하게 쌓이는 '좋아요'를 보며 나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감동을 마주하고 있다. 모니터 너머의 낯선 이들에게서 전해지는 이 따뜻한 온기는 내가 지난 세월 동안 성과와 보상으로 느꼈던 기쁨과는 차원이 달랐다.


사실 20년 직장 생활 동안 나의 세계관에서 타인은 모두 '적'이거나 넘어서야 할 '경쟁자'였다. 회의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 중 그 누구도 진심으로 신뢰할 수 없었으며, 인간이란 결국 자신의 몫을 챙기기 위해 서로를 밟고 올라서야만 하는 비정한 존재라는 믿음 속에 나를 가두고 살았다. 그 불신의 밀림 속에서 나는 늘 방어 기제를 풀지 못한 채 날이 서 있었다. 그랬던 나에게 타인이 건네는 순수한 응원과 감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처럼 다가왔다. 나를 증명할 필요도, 남을 이길 필요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비로소 타인을 친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가까운 친구가 "너의 레시피로 이제야 내가 내 몸을 진심으로 돌보기 시작한 것 같아"라고 말해주었을 때, 나는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조직에서의 승진이나 연봉 인상 같은 타인의 인정을 넘어, 처음으로 나의 존재 가치가 세상에 작지만 쓸모 있게 쓰이고 있음을 증명받는 듯한 숭고한 기분이었다. 내가 정성껏 쓴 글 한 줄, 정성스럽게 다듬은 채소 하나에 불특정 다수의 타인을 향한 지지와 온기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이토록 풍요롭게 만들 줄은 몰랐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내 자신이 여전히 낯설고 신기할 뿐이지만, 이제는 확신한다. 인생의 후반전은 이렇게 타인과 온기를 나누며 함께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아들러의 '타자공헌'과 그릿의 '상위 목적'


나의 이 낯설고도 벅찬 경험을 설명해주는 열쇠는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 개념인 '타자공헌(Contribution to others)'에 있다. 아들러는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공동체 내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공헌감'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인이 나를 실제로 칭찬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주관적으로 "나는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다"라고 느끼는 내면의 상태다. 과거의 내가 타인의 박수와 인정을 갈구하며 끊임없이 나를 소모했다면, 지금의 나는 요리와 글을 통해 '스스로 공헌하고 있음'을 실감하며 진정한 행복의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탬이 된다는 감각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자존감의 원천이 된다.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Grit)' 역시 열정이 단순한 흥미를 넘어 지속되는 마지막 단계를 '목적(Purpose)'으로 정의한다. 그릿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흥미(관심)와 부단한 연습이 결국 '타인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가'라는 상위 목표와 연결될 때 비로소 멈추지 않는 강력한 에너지를 얻는다. 내가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나 혼자 즐기는 취미로 머물게 하지 않고, 브런치를 통해 타인에게 치유의 레시피로 건네는 행위는 내 열정의 엔진을 나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세상'이라는 넓은 광장으로 확장시킨 결정적 사건이다. 나만을 위한 공부는 금방 지치기 마련이지만, 누군가를 위한 나눔은 나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만든다.


아들러가 말한 '에네르기아(Energia)'적 삶, 즉 지금 이 찰나를 춤추듯 사는 인생은 바로 이 공헌감 속에서 완성된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돕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며 춤추고 있다면, 내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멀리 있는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로서 타인의 삶을 조금 더 아름답게 빛나게 하겠다는 나의 비전은, 아들러의 타자공헌과 그릿의 목적이 만나는 접점에서 나의 행복을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기둥이 된다. 이제 나는 결과에 매몰되지 않고, 매 순간 타인과 연결되는 그 행위 자체를 사랑하기로 했다.


친구에게 보내는 메시지: 함께 춤추는 인생 2막의 초대


인생의 절반을 넘게 살아온 우리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한 때는 남보다 높은 지위, 남보다 더 많은 연봉이 우리를 지켜줄 행복의 척도라 굳게 믿었지만, 이제는 안다. 진짜 행복은 타인과 따뜻하게 연결되어 내가 누군가에게 작은 보탬이 된다는 아주 사소한 감각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경쟁의 최전선에서 승리하는 것보다, 누군가의 굽은 등을 어루만져 줄 때 우리 마음은 훨씬 더 평온해진다.


우리가 지난 세월 쌓아온 경험과 통찰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우리가 겪었던 뼈아픈 실패와 그것을 극복해낸 눈물겨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되고, 우리가 투박하게 만든 소박한 음식이 누군가의 지친 하루를 달래줄 치유제가 될 수 있다. 거창한 기부나 대단한 사회 봉사가 아니어도 좋다. 그저 나다운 진실한 모습으로 세상에 작은 온기 하나를 보태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생 2막에서 누려야 할 가장 큰 특권이자 권리가 아닐까?


이제 타인을 적으로 규정하며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던 딱딱한 경쟁의 갑옷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각자의 무대에서 함께 춤을 추자고 제안하고 싶다. 정답은 따로 있지 않다. 우리가 즐겁게 춤을 추고, 그 가벼운 몸짓이 누군가에게 작은 미소를 줄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그 자체로 매 순간 완성형일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사슬을 완전히 끊고, 완벽이라는 감옥을 나와, 이제는 서로의 보탬이 되는 자유의 들판에서 춤추듯 나아가자고 말하고 싶다.


나침반은 이미 우리의 손에 단단히 쥐어져 있다. 나의 진심이 담긴 기록과 행동이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보석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어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깊은 생의 축복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 이 아름다운 축제를 멈추지 말고 끝까지 함께 계속해 나아가자!


에필로그


이 글을 쓰는 과정은 내가 나라는 세계를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걷는 시간과 맞닿아 있었다. 20년 넘게 타인의 지도를 보며 숨 가쁘게 달려왔던 내가 처음으로 내면의 숲길을 직접 내딛는 경험은 무척이나 낯설고 신기했다. 숲의 입구는 우거진 수풀처럼 막막했지만, 한 문장 한 문장 적어 내려갈수록 길은 선명해졌다. 그 길 끝에서 마주한 것은 나도 미처 몰랐던 나의 숨겨진 표정들이었고,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해묵은 감정과 생각의 파편들이었다.


비록 이 글이 너무나도 서툴고 거친 문장들의 나열일지라도, 쓰는 동안 그것은 나에게 그 무엇보다 따스한 위로가 되었다. 글을 쓰며 문득 깨달은 사실 하나는, 사회적 지위와 나이라는 숫자로는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내면 세계 속의 나는 여전히 길을 잃고 멈춰 서 있는 아이였다는 점이다. 조직의 논리와 효율성이라는 어른의 무게에 눌려 정작 돌보지 못했던 내 안의 어린 내가, 기록이라는 온기를 통해 이제야 기지개를 켜며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이다. 인생을 목적지를 향해 일직선으로 연결된 하나의 결과물로 보지 않고, 찰나의 점들이 이어지는 과정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거창한 미래를 설계하느라 소중한 오늘을 희생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점 같은 매 순간에 진심을 다하며 춤추듯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인생 지도의 의미 있는 좌표에 도달해 있을 것이라 믿는다. 결과가 수단이 되지 않는 삶, 과정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삶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진짜 자유임을!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나는 이제야 진정한 어른으로의 성장이 시작되는 고요한 출발점에 선 듯한 기분을 느낀다.

내가 이제부터 배우고 느껴갈 일상의 작은 아름다움들, 예를 들어 아침 햇살에 투명해진 찻잔의 빛깔이나 정성스레 다듬은 채소의 정직한 결 같은 소소한 기쁨을 타인과 나누고 공감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라이프스타일 큐레이터라는 이름은 결국, 내 삶의 점들을 하나씩 정성껏 찍어가는 과정 그 자체임을 이제는 안다.


비록 완벽하지 않은 지도일지라도, 그 위에 정직하게 찍히는 매일의 점들이 모여 나의 인생을 눈부신 축제로 만들기를 소망한다. 춤추는 인생은 마침표가 없다. 다만 다음 스텝을 향한 설레는 쉼표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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