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009, 13일 수요일 새벽 나는 'SYDNEY TOWNHALL POLICE STATION'으로 잡혀갔다.
맨발에 반바지와 반팔티를 입은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술에 취한 채,
두 손은 처음 차보는 단단하고 차가운 수갑에 조여진 채, 덩치 큰 호주 경찰들에 의해.
문 하나 있는, 마치 냉장고 같은 차 안에 갇혔고, 이상하게도 그 순간,
TV기자가 카메라를 들고는 조명을 비추며 그 모습을 찍었던 것 같다.
불빛이 꺼지고 눈을 뜨니, 나는 맨발로 철창 안에 있었다.
아침을 주고, 나는 먹지 않고, 통역관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통역관만 오면,
나는 나의 이성으로, 나의 이 웃기지도 않은 입술로, 설명하여 금방 돌아갈 줄 만 알았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았다. 모두 나를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대우했고, 통역관인 한국인조차, 나를 그렇게 죄인처럼 바라보았다.
사건 진술을 하고는 열손가락의 지문을 찍고, DNA를 채취하고, 사진을 찍고, 내가 입고 있던 말도 안 되는 차림의 옷마저 가져가 버리고, 나에게 입으라며 던져준 한 벌의 얇디얇은 죄수복.
그리고, 그 죄수복을 입은 나에게 던지는 통역관의 목소리
"그래도 긴팔이라 다행이네 아까보다는 안 춥겠네"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몇 번이나 물을 요청하여 간신히 마셨고, 죄인인 마냥 동정이라도 받고 싶은 마냥, 겁먹은 송아지처럼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웃기지 않은가? 상상이 되는가? 그 모습, 맨발의 술 취한, 정신없는, 죄수복 입은 동양인.... 그 자신만만하고, 거침없던 나는 어디로 가고, 백인들 앞에서 동정받으려 불쌍한, 나약한, 연기를 하는 나라니..
그렇게 날이 밝고, 같은 날 13일, 수요일 낮에, 나는 같은 방식으로 옷만 바뀐 채 차에 갇혀 법정에 도착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아니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어떻게 그랬는지, 경찰들에게 잡힌 상황에서, 신발도 못 신을 정도로 급하게 끌려오는 순간이었지만, 어떻게 인지, 핸드폰을 꼬옥 가져왔다
법정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고, 재판관을 보기 전에, 이상한 곳에 갇히게 되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철문과 좌변기 하나 달랑있고, 나무침대 하나 있는 그곳에 혼자 수갑을 찬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기를 몇 십분, 교도관이 다가오더니 나의 몸을 수색하였고, 의자 하나 달랑있는 조그만 공간에 나를 다시 밀어 넣었다. 나는 의자에 멍하니 앉아 움직일 수 조차 없는 그곳에서 질문 몇 가지에 응답하였고,
다시 또 다른 곳으로 나를 끌고 가더니 철문을 열고는 나를 다시 밀어 넣었다.
아이고, 할아버지 식사하시는대, 오줌이 마려워 잠시 소변을 보았다. 좌변기와 세면대에서 광이 난다.
“WOW, IT'S SHINING!"
"YEAH, I AM ALWAYS CLEANING"
내일 이곳을 떠난대도 자기는 깨끗이 있어야 한단다.
처음, 이곳에 와서 광나게 청소를 해놓으니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고, 다시 이곳에 왔는데,
역시나 엄청나게 지저분해서 또다시 청소를 했다며
자기가 무슨 청소부냐며 구시렁대며 좌변기를 닦던 할아버지,
글을 열심히 쓰고 있는 나를, 의아하게 지켜보며 식사하신다.
자신도 등장하고 싶은지 자꾸 무언가를 도와주려 말을 건다.
"걱정 마세요. 할아버지, 이미 할아버지는 나오고 있다고요!"
이상하게도 지금은, 기분이 안정된다. 재미난 할아버지와 글을 쓰고 있는 동양인,
밖에는 소나기가 내리고, 양 옆으로 침대 한 개씩, 두 개. 좌변기, 세면대, 샤워기 하나 있는 콘크리트 벽에 갇혀있는 지금, 이 상황이 마치 현실이 아닌, 지금 쓰는 이야기,
그냥, "JUST LIKE (A) STORY" 같이 느껴지나 보다.
확실히 나는, 현실과 영화를 구별하기 힘든, 아니 못하는 것 같다. "STUPID"
할아버지의 왼쪽 가슴에는 RYAN이라는 문신이 있다.
"WHAT'S THAT MEANS?"
자신의 첫 번째 아들 이름이란다. 그러며 자신의 오른쪽 팔뚝에 있는 문신을 보여준다.
첫 번째 아내 얼굴이 있고, 얼굴 밑에 다섯 개의 이름이 있다.
"나는 여섯 명의 자식이 있고, 매우 보고 싶다."
"나도 우리 부모님이 보고 싶고, 걱정된다."
"당연하다. 나도, 부모님이 보고 싶지만, 이미 죽었고 그들은 지금 나보다 편한 곳에 있기에 걱정되지 않는다. 그저, 나의 아이들, 자식들이 보고 싶다."
그러며 또, 지금 무언가를 치우고 계신다.
힘들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손도 아프고, 그냥, 힘들다.
그렇다고 글을 멈출 수 없다.
이 글을 멈추는 순간, 나는 이 이야기 속의 내가 아닌 현실의 나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멈출 수 없다. 어찌하리 이것이, 이 자체가, 현실인 것을...
할아버지도 자신이 쓴 글을 읽고 있다.
저 할아버지가 위대한 작가라면, 셰익스피어라면,
나는 그에게 무언가를, 배울 것인가?
이 현실에서 무언가를, 배울 것인가?
맨발에 죄수복을 입고 들어서는 나를, 대여섯의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 죄수들이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뒤로 돌아서, 철창에 있는 조그마한 공간에, 수갑 채워진 손을 내밀었고, 수갑을 풀어준 후, 다시 조그만 문을 닫고 교도관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선 그곳에는 재판을 기다리는 그 죄수들이 있다.
세 개의 뚜껑 없는 알루미늄 좌변기와 오래되어 시멘트 위에 칠해진 페인트가 벗겨져 너덜거리는 사방팔방, 영화에서나 본 듯한, 말도 안 되는 공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생각해 보자.
키 큰 백인, 영국식 악센트의 보통 크기 남자, 기지 바지에 큰 티를 안에 넣어 입은 조그만 중국인,
그리고 한국인처럼 생긴 나이 많아 보이는 사람.
나는 맨발에 죄수복하나 입은 채, 그들 사이를 지나가 반대편 벽에 고정되어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았다.
한국인으로 보였던 나이 많은 분이 영어로 "어디서 왔냐?" 묻는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 영어로 대답했다. 그러나 응답이 없다. 한국인이 아닌가 보다. 시간이 흐르고 저들끼리 어울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그저 차가운 콘크리트에 내 맨발을 올려놓은 채 벽에 기대어 멍하니 앉아있을 뿐이다.
그때,
"무슨 일 때문에 여기 왔는데?"
한국말이 들렸다.
그분은 '하야시'라는 일본인으로, 아내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그분이 진짜 일본인인지는.... 한국인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한국말을 잘했고,
역시 영어도, 오지(호주인)라고 할 정도로 잘했다.
그분은 거대 마약딜러로 15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 이곳에 다시 온 이유는 인터폴에서 그분에게 정보를 얻어 내려고 다시, 이유 없이, 잡아두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곳 호주 감옥에는 마약으로 잡혀온 사람들이 엄청 많았고,
그때, 그 영국식 악센트의 사람도 마약 딜러였고, 후에 그 사람이 말하기를
'하야시' 그 사람은 빅빅드럭딜러(big drug dealer)라고 말할 정도니,
일반 사람은 아니다.
어찌 되었건 그분이 있어, 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안정되었다. 귀찮다는 듯 형식적이고, 통역밖에 하지 않고, 그것도 나중에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진 한국인 통역관을 본 나이기에, 그분은 거짓 없이 내게 다가와 주었고, 조언해 주셨기에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분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수풀 '林'자를 써서 하야시라 하며 한국말을 잘해 한국인인 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일본 사람이고,
호주 시민권자라고 말씀하셨다.
아. 힘들다. 졸리고, 팔도 아프고, 하지만 확실한 건 이 글을 쓰니, 그전보다 훨씬 마음이 안정된다.
"오, 신이시여...."
아무래도 오늘 밤은, 이 첫날의 이야기까지 써야겠다.
이런 식으로 써가며, 현실의 오늘이 왔을 때는 내 마음이 한결 안정되길 바라며....
살기 위해, 나를 잠시 되돌아본다.
살기 위해 글을 쓰니, 이것이 전부 거짓같이 느껴진다. 이거는 안 좋다.... 오버하지 말자.
"나는 감옥에 있다."
잠시, 글 쓰며 누워있던 나는, 일어나 옆에 계신 할아버지에게 질문한다.
"CAN I TAKE THIS PAPER? WHEN I GO HOME"
"OF COURSE"
"네가 여기서 받고 사는 모든 것은 네가 원한다면 가져갈 수 있다." 말씀하신다.
"THANK YOU FOR YOUR ANS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