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2] 그림자 연인 (상)
쾅—!!
육중한 철문이 경첩이 떨어져 나갈 듯 굉음을 내며 열렸고, 장웅의 몸이 복도 벽으로 거칠게 내동댕이쳐졌다. 퍽, 하는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오래된 콘크리트 벽의 하얀 페인트 가루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이 미친 새끼야! 너 진짜 도랐어?!"
권지태 형사가 씩씩거리며 웅의 멱살을 틀어쥐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방금 전 다희 엄마를 향해 살기를 뿜어내던 웅을 간신히 끌고 나온 참이었다. 복도를 지나며 서류를 나르던 다른 형사들이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지만,
권 형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포효했다.
"대체 그놈의 라이터! 그놈의 휘파람 소리가 뭔데 20년째 지랄이야! 애초에 기억도 안 나는 과거 잡겠다고, 그 끔찍한 발작 일으키는 몸뚱이 끌고 기어코 경찰까지 된 이유가 그거 하나냐?!"
"……."
"네가 무슨 무당이야? 남의 머릿속 훔쳐보고 피 토하면서까지 경찰 배지 달고 있는 이유가, 고작 그 얼굴도 모르는 새끼 하나 잡으려는 거였냐고!"
권 형사의 일갈이 좁은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웅은 핏발 선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턱 끝으로 맺힌 핏방울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며 거친 숨이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권 형사의 말이 맞았다.
자신이 경찰이 된 이유는
숭고한 사명감 따위가 아니었다.
20년 전, 끔찍한 살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로 병원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웅의 머릿속은 백지장이었다. 자신의 부모가 왜 난도질을 당했는지, 왜 자신만 홀로 남겨졌는지.
주변의 어른들과 담당 형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기억을 잃은 대가로 웅의 뇌는 기괴하게 망가져 버렸다. 타인의 물건을 무심코 쥔 채 피부가 스칠 때면, 예고도 없이 끔찍한 환각이 발작처럼 덮쳐왔으니까.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 겉으로는 천사 같지만 뒤로는 동급생을 악랄하게 짓밟던 일진 놈의 피 묻은 명찰(매개체)을 틀어쥐고 멱살(타겟+스킨십)을 잡았을 때
웅은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보는 것은 단순한 환각이 아니라,
특정 조건이 맞아떨어졌을 때 타인의 무의식 가장 밑바닥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로 빨려 들어가는 현상이라는 것을.
20년 전 그날 밤. 자신의 부모를 무참히 난도질했던 살인 사건. 그날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도의 공포와 트라우마가 어린 웅의 기억을 통째로 날려버림과 동시에, 뇌의 방어벽을 기괴하게 망가뜨려 버린 부작용이었다.
날아가 버린 그날 밤의 텅 빈 기억 속에서, 유일하게 웅의 뇌리에 인두 자국처럼 남아있는 것은 어두운 거실의 피비린내와 덜덜 떠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살인마의 섬뜩한 소리뿐이었다.
얼굴도, 목적도 알 수 없는 악마가 남긴 그 기괴한 세 마디의 휘파람 소리.
그날 이후, 웅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20년 전 사건의 진실을 스스로 파헤치고, 합법적으로 세상의 온갖 쓰레기 같은 범죄자들의 지옥 속으로 다이빙해 단서들을 주워 담을 수 있는 유일한 직업.
경찰 배지는 웅에게 있어, 내 부모를 죽이고 내 삶을 망가뜨린 그 휘파람 부는 새끼를 추적하기 위한 유일한 통행증이었다.
"…방금 건 제가 좀 흥분했습니다."
웅이 셔츠 소매로 입가에 묻은 피를 거칠게 닦아내며, 다시 평소의 서글서글하고 차가운 '스마일 보이'의 가면을 뒤집어썼다.
"다희 엄마는 제가 던진 디테일 때문에 멘탈 완전히 나갔을 겁니다. 선배가 들어가서 마무리하시죠."
"하아… 진짜 너 이 새끼. 한 번만 더 취조실에서 난리치면 그땐 내가 직접 수갑 채운다."
권 형사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취조실로 돌아갔다.
웅의 예상은 정확했다. 국과수 감식 결과, 토끼 인형의 털 사이에서는 다희의 타액과 미세 혈흔, 그리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흘린 눈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검출되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와, 자신의 머릿속을 꿰뚫어 본 듯한 웅의 취조에 완전히 무너져 내린 가련한 천사 엄마는 결국 바닥에 엎드려 모든 범행을 자백했다.
사건은 일사천리로 송치되었고, 의식을 회복한 다희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안전한 품으로 인계되었다.
완벽했던 밀실 살인 미수 사건은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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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 뒤, 묵은 담배 냄새와 커피 찌든 내가 섞인 경찰청 강력팀 사무실.
"장 경위! 강력 3팀에서 사건 하나 토스해 왔어. 언론 타기 직전이라 빨리 넘겨받으라는데."
권 형사가 두툼한 서류철을 웅의 어지러운 책상 위로 툭 던지며 말했다. 펄럭이는 종이 뭉치 사이로 폴리스 라인이 쳐진 피투성이 오피스텔 현장 사진이 슬쩍 비쳤다.
"살인미수 및 주거침입. 피해자는 꽤 유명한 *튜브 스트리머 윤지수고, 피의자는 어젯밤 피해자의 신혼집에 무단 침입해서 예비 신랑을 흉기로
세 차례 찌르고 현장 체포됐어."
웅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아졌다.
"치정이나 원한입니까?"
"그게 환장할 노릇이다. 피의자는 피해자랑 일면식도 없는 데이터 센터 야간 관리자인데, 자기가 피해자랑 '영혼의 연인'이라고 펄펄 뛰고 있어. 심지어 피해자가 자기한테 구해달라고 구조 요청을 보냈대."
'일면식도 없는데 영혼의 연인이라….'
웅의 눈빛에 서늘한 흥미가 스쳤다.
이건 치기 어린 스토킹 범죄와는 결이 달랐다.
"피의자 이름은?"
"김태호. 32살. 지금 3조사실에 있는데,
자기는 정당방위라며 훈장이라도 받은
영웅처럼 굴고 있다."
자신의 끔찍한 집착을 '사랑'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자의 무의식. 그 비틀린 세상의 가장 깊은 곳에는 어떤 끔찍한 괴물이,
혹은 어떤 놈의 흔적이 숨어있을까.
웅이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며 3조사실을 향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 기사도 병에 걸린 미친놈은,
제가 면담 좀 하겠습니다."
끼익—.
녹슨 쇳소리를 내며 무거운 철문이 열리자, 창문 하나 없는 3조사실의 매캐하고 차가운 공기가 웅의 코끝을 훅 찔렀다.
천장에 매달린 창백한 형광등 불빛 아래.
어젯밤 사람을 세 번이나 찔러 살인미수 현행범으로 체포된 남자,
김태호가 덩그러니 놓인
철제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그의 행색은 기괴했다.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야간 서버실에서만 생활한 탓인지 피부는 핏기하나 없이 병적으로 창백했고, 며칠은 감지 않은 듯 떡진 머리카락이 이마에 들러붙어 있었다.
특히 그의 낡은 파란색 셔츠 깃과 소매 끝에는, 어젯밤의 격렬했던 살육전을 증명하듯 피해자의 검붉은 핏자국이 점점이 튀어 말라붙어 있었다.
하지만 웅의 시선을 가장 강하게 잡아끈 것은 핏자국도, 수갑도 아니었다.
바로 놈의 '자세와 눈빛'이었다.
보통의 흉악범들이 보여주는 초조함이나,
시선을 피하며 다리를 떠는 불안한 몸짓 따위는 전혀 없었다. 태호는 등받이에 기대지도 않은 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었다.
찰그랑.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수갑 사슬이 차갑게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지만,
태호는 수갑이 채워진 두 손을 책상 위에 아주 가지런히 모아두고 있었다.
마치 숭고한 성전을 마치고 왕의 하사를 기다리는 기사처럼. 손목을 옥죈 차가운 쇳덩이조차 놈에게는 영광스러운 훈장인 듯,
태호는 소름 끼치도록 평온하고
오만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김태호 씨. 밤새 조사받느라 고생이 많네요."
웅이 서글서글한 미소를 장착하며
맞은편에 앉았다.
"…지수 씨는요? 지수 씨는 안전합니까?"
웅의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태호가 몸을 앞으로 쑥 내밀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 악마 같은 자식, 제가 확실히 처리했는데. 지수 씨가 많이 놀라진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저한테 면회는 언제쯤 오나요?"
웅의 시선이 태호의 동공과 떨리는 안면 근육을 날카롭게 훑었다. 피해자의 약혼자를 '악마'라 칭하고,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가 자신을 면회 올 거라 굳게 믿는 맹목적인 확신.
거짓을 연기하는 자의 불안함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진실에 갇힌 자의 광기였다.
웅은 책상 위에 놓인 투명한 지퍼백 재질의 증거물 봉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 건드렸다.
현장에서 압수된 태호의 물건. 인조 가죽으로 된 겉표지가 새까맣게 손때를 타고 모서리가 해진 낡은 다이어리였다.
펼쳐진 페이지 안에는 *튜브 스트리머 윤지수의 라이브 방송 멘트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종이가 찢어질 듯한 필압으로 빽빽하게 적혀 있었고,
그 옆에는 여백이 보이지 않을 만큼 붉은 펜으로 기괴한 해석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특히 다이어리 우측 모서리에는 어젯밤의 처절했던 몸싸움 흔적인 듯, 피해자의 검붉은 피가 섬뜩하게 스며들어 말라붙어 있었다.
"태호 씨. 당신이 찌른 그 남자는
윤지수 씨의 예비 신랑입니다."
"하하, 형사님도 그 자식의 거짓말에 속으셨군요."
태호가 수갑 찬 손으로 책상을 탁 치며
코웃음을 쳤다.
"지수 씨가 저한테 보낸 비밀 암호를 못 보셔서 그래요. 지난주 금요일 라이브 방송, 그녀가 무슨 색 옷을 입었는지 아십니까? 파란색입니다! 그날 오프닝 멘트가 '오늘따라 유독 춥고 외롭네요' 였습니다. 파란색은 우울함, 즉 SOS 구조 요청을 뜻합니다. 억지로 결혼을 강요하는 그 쓰레기한테서 자신을 구해달라고, 오직 저한테만 절박하게 신호를 보낸 거라고요!"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는 태호의 세상 속에서는 그것이 완벽한 진실이었다.
'상대방의 아주 작은 호의나 일상적인 행동조차 자신을 향한 사랑의 암호로 완벽하게 왜곡하는 증상.
타인의 감정은 철저히 배제한 채 자신의 망상만을 진실이라 맹신하는 지독한 정신 질환….'
웅은 태호의 눈빛과 행동, 그리고 다이어리에 적힌 기괴한 패턴들을 조각 맞추듯 연결해 단번에 사건의 본질을 꿰뚫었다.
'에로토마니아(색정망상)다.'
※에로토마니아 :
다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굳게 믿는 망상장애
웅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태호의 피 묻은 다이어리를 응시했다.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차가운 서버실에서 홀로 망상의 암호를 미친 듯이 적어 내려갔을 남자의 끔찍한 고립감이 느껴졌다.
"태호 씨."
웅이 증거물 봉투에서 피 묻은 다이어리를 꺼내 태호의 앞으로 스윽 밀어주었다.
"당신 말대로, 이게 전부 윤지수 씨가 당신에게 보낸 '사랑의 암호'라면… 당신이 직접 한 번 짚어보시죠. 대체 어느 페이지에 당신을 향한 진심이 적혀 있는지."
"아, 형사님이 드디어 제 진심을 알아주시는군요! 여기, 이 페이지를 보십쇼!"
신이 난 태호가 다이어리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태호의 창백하고 떨리는 손끝이 피 묻은 종이 위로 닿으려던 찰나. 웅의 뱀처럼 차가운 손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와 다이어리를 짚으려던 태호의 손등을 콱 덮어 쥐었다.
[조건 충족: 범행의 매개체(다이어리) + 타겟(김태호) + 의도적인 신체 접촉]
삐이이이—
그 순간, 웅의 귓가에 고막을 찢어발기는 듯한 날카로운 이명과 함께 세상의 모든 소리가 전원을 뽑은 듯 차단되었다.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며 허공으로 튀어 오르던 태호의 침방울이 그대로 공중에 멈춰 섰다. 깜빡거리며 미세한 백색소음을 내던 취조실 천장의 형광등 불빛도, 공기 중에 떠다니던 먼지 알갱이들조차 완벽하게 얼어붙었다.
웅의 짙은 눈동자가 동공을 잡아먹을 듯 새까맣게 확장되며, 시야의 가장자리부터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일그러지며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끔찍한 범죄를 로맨틱한 사랑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망상 환자.
그 기괴하고도 달콤한 뇌 속으로
다이빙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