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1] 토끼 인형의 침묵 (하)
지이잉—!
그녀의 기괴한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웅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시뻘건 쇠꼬챙이로 쑤시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무의식의 주인이 웅을 '침입자'로 완벽히 인식하면서, 웅의 뇌혈관을 맹렬하게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크윽…!"
웅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신음하는 사이,
거실의 창문들이 시멘트 벽으로 쾅쾅 막혀버렸다. 따뜻했던 아파트가 순식간에 숨 막히는 콘크리트 감옥으로 변했다.
스르릉.
목이 꺾인 여자가 싱크대 위에 놓인 커다란 식칼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마치 고장 난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관절을 삐걱거리며 웅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젠장."
웅은 입술을 꽉 깨물고, 아이가 사라졌던 어두운 복도를 향해 짐승처럼 몸을 날렸다.
어두운 복도로 뛰어드는 순간,
웅의 등 뒤로 아파트 거실의 풍경이 마치 녹아내리는 촛물처럼 치익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뒤를 쫓던 괴물 같은 형체도 어둠 속으로 녹아 사라졌다.
뚝. 뚝.
거친 숨을 몰아쉬며 웅이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아파트 복도였던 공간은 온데간데없었다.
웅이 서 있는 곳은 곰팡내가 진동하는,
무릎까지 물이 찬 축축하고 좁은
반지하 단칸방 앞이었다.
두통은 아까보다 훨씬 더 심해져 있었다.
웅은 녹이 슬어 삐걱거리는 반지하
철문을 천천히 밀어 열었다.
그 방 한가운데, 아까 거실에서 보았던 깡마른 아이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가까이서 본 아이의 얼굴은 소름 끼치도록 익숙했다. 불안할 때면 파르르 떨리던 눈밑 근육, 애정결핍으로 잘근잘근 씹어놓은 아랫입술.
현실의 취조실에 앉아있던 용의자가 보여주던 징후들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과거에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해 이 축축한 반지하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용의자의 '내면아이(Inner Child)'가 분명했다.
아이는 자신의 품에 안긴 '때 탄 토끼 인형'을 바닥에 눕혀놓고, 그 위에 비정상적으로 크고 무거운 시멘트 덩어리를 낑낑대며 쌓아 올리고 있었다. 인형의 솜이 터져 나올 정도로 짓눌리고 있었지만,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숨이 막혀 찌그러진 인형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기괴할 정도로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프면… 아프면 엄마가 와준댔어….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토끼야."
순간 웅의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오한이 치밀었다.
아이가 부른 저 토끼 인형은 곧 현실의 '다희'였다.
웅은 숨소리를 죽인 채 이 비틀린 연극을 날카롭게 프로파일링했다. 성인이 된 피의자는 현실의 독박 육아와 고립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과거의 상처받은 내면아이로 퇴행해 버린 것이다.
자신이 관심받기 위해 아파야만 했던 그 끔찍한 공식을, 이제는 자신의 딸에게 고스란히
투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인형을 짓누르는 무거운 시멘트 덩어리의 압박은 현실에서 무엇을 상징하는가.
혈액 검사에서 검출되는 약물? 아니다. 피검사로도 흔적이 남지 않는,
가장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상해.
'…질식.'
순간, 웅의 머릿속에 산산조각 나 있던 퍼즐이 완벽하게 맞춰졌다.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
※타인의 신체적 또는 심리적 증상을 의도적으로 위조하거나 만들어내는 정신 질환
아이가 잠들었을 때, 저 푹신한 애착 인형으로 다희의 코와 입을 내리눌러 저산소증을 유도한 것이다.
완벽하게 위장되었던 범행의 끔찍한 실체가, 무의식 속 내면아이의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 낱낱이 해부되는 순간이었다.
쿠구구궁—!!
갑자기 반지하 방 전체가 거대한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치명적인 비밀의 근처에 다가선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 무의식이 거대한 붕괴를 시작했다. 천장의 시멘트가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바닥에서부터 핏빛 흙탕물이 솟구쳤다.
"크아악!"
웅이 머리를 감싸 쥐며 바닥에 뒹굴었다.
한계 시간에 다다른 뇌혈관이 터질 듯 비명을 질렀다. 두통을 넘어선, 시야가 새빨갛게 물드는 끔찍한 환통. 부서지는 무의식의 파편들에 온몸이 찢길 듯한 고통 속에서 웅의 시야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그 절대적인 암흑 속.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공간에서, 웅의 귓가로 공간을 찢는 듯한 서늘한 금속음이 파고들었다.
"……!"
웅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충격이었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과거, 매일 밤 자신을 난도질하며 끝없는 죽음을 선사하던 그 끔찍한 악몽 속의 사운드.
오직 내 머릿속에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그 기괴한 소리가… 도대체 왜 전혀 상관없는 이 여자의 무의식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건가?
얼굴도, 실루엣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웅의 고막에 평생을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그 끔찍한 멜로디만이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이어졌다.
'설마… 당신도 그놈을 알아?'
웅은 어둠 속으로 손을 뻗으려 했지만,
무의식의 붕괴는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아아아악!!"
세 마디의 짧고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웅의 세상이 산산조각 나며 현실로 강제 추락했다.
"야, 장웅!!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짜악!
뺨을 후려치는 매서운 손길에 웅이 허억, 하고 거친 숨을 들이켜며 눈을 번쩍 떴다.
눈앞에는 사색이 된 권 형사가 CCTV를 등진 채 자신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하지만 웅의 귓가에는 현실의 소리 대신, 방금 전 무의식에서 들었던 그 끔찍한 휘파람 소리가 이명처럼 왱왱거리고 있었다.
현실의 취조실.
맞은편에는 다희 엄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형사님? 갑자기 코피를… 괜찮으… 꺄아악!!"
쾅—!!
가련한 목소리로 묻던
여자의 비명이 취조실을 찢었다.
웅이 책상을 딛고 짐승처럼 튀어 올라,
순식간에 여자의 멱살을 틀어쥔 것이다.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의자가 나뒹굴었다.
"말해."
웅의 눈동자는 완전히 까뒤집혀 있었다.
코와 입에서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져 여자의 하얀 블라우스 위로 번졌지만,
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소리. 그 라이터 소리 어디서 들었어."
"네, 네?! 형사님, 갑자기 왜 이러시… 켁!"
"말하라고!! 당신 머릿속 가장 밑바닥에 숨어있던 그 새끼!! 그 휘파람 부는 새끼 누구야!!!"
20년 동안 억눌려있던 웅의 광기가 폭발했다. 당장이라도 목을 졸라 죽여버릴 듯한 웅의 살기에 여자는 사시나무 떨듯 떨며 눈물을 터뜨렸다.
아동 학대를 숨기려던 천사 엄마의 연기조차 까맣게 잊은, 순수한 공포 그 자체였다.
"저, 저는 몰라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살려주세요, 흑…!"
"야, 장웅!! 미쳤어?! 안 떨어져?!"
권 형사가 기겁하며 달려들어 웅의 허리를 뒤에서 껴안고 필사적으로 뜯어말렸다.
"이 새끼가 진짜 돌았나! 당장 놔!"
"선배, 놔봐요! 이 여자가 알아! 이 여자가 그 새끼를 안다고!!"
"네가 무슨 헛것을 봤는지 몰라도 일단 진정해, 미친놈아!"
권 형사의 완력에 밀려 뒤로 나뒹굴면서도 웅의 시선은 뱀처럼 여자를 옭아매고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콜록거리며 공포에 질려있는 여자. 그녀의 눈빛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로 자신의 무의식 속에 그 악마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 묻은 입술을 짓씹던 웅의 눈에, 책상 위에 뒹굴고 있는 증거물 봉투 속 '낡은 토끼 인형'이 들어왔다.
웅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기억이 안 난다? 그래. 그럼 네가 숨기고 싶어 환장했던 진짜 지옥부터 까발려주지."
웅이 권 형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선배. 저 토끼 인형 얼굴 털 부위,
국과수에 당장 넘기십쇼."
"어? 얼, 얼굴 털은 갑자기 왜…."
"다희가 살려고 발버둥 치며 흘린 눈물, 타액. 그리고 숨이 막혀 입술이 터지면서 묻은 미세 혈흔까지 전부 다… 저 뽀송한 털 사이에 겹겹이 스며들어 있을 테니까."
서늘한 웅의 목소리가 취조실에
울려 퍼지는 순간.
공포에 질려 훌쩍이던 여자의 울음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멎었다.
조금 전까지 웅의 미친 짓에 당황했던 권 형사조차 소름이 돋은 듯 굳어버렸다.
"무, 무슨…!"
여자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그녀의 두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흔들렸다.
약물이 아니라 인형으로 얼굴을 눌렀다는 사실은, 방 안에는 오직 자신뿐이었던 완벽한 밀실 범죄의 핵심이었다. 대체 저 미친 형사는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패닉에 빠져 입술만 덜덜 떠는 여자를 향해, 웅이 한 걸음 다가서며 쐐기를 박았다.
"증거 나오면 다희 얼굴에 묻어있던 미세 섬유 조직이랑 대조해서 살인미수로 쳐넣을 거니까 변명할 생각 마. 다희가 숨 막혀서 발버둥 칠 때, 당신은 토끼 인형 위로 체중을 싣고 속삭였지. '조금만 참아, 토끼야.' 라고."
"……!!"
여자의 숨이 헉, 하고 넘어갔다. 방 안엔 CCTV도, 목격자도 없었다. 입 밖으로 낸 적도 없는, 오직 자신의 머릿속에만 있던 그 순간의 혼잣말을 눈앞의 형사가 정확히 읊어낸 것이다.
그녀의 다리가 버티지 못하고 스르륵 풀렸다.
"아… 아아…."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는 더 이상 억울한 천사 엄마의 연기를 하지 못했다. 완벽했던 알리바이가 산산조각 났다는 끔찍한 절망감에,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며 짐승처럼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동 학대 범죄의 완벽한 '체크메이트'였다.
하지만, 무너져 내린 피의자를 내려다보는 웅의 눈빛엔 사건을 해결했다는 후련함 따위는 단 1%도 없었다.
웅이 피 묻은 손으로 여자가 기대어 있는 책상을 강하게 쾅! 내리쳤다.
"내 말 들어. 당신 범죄 따윈
이제 내 알 바 아니니까."
웅이 허리를 숙여,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여자의 눈을 무섭게 파고들었다.
"똑바로 기억해 내. 당신 그 시궁창 같은 지옥문 앞에 서 있던 그 새끼."
"흐윽, 네…? 누, 누구…."
"네 머릿속에서 라이터 켜고 휘파람 불던 그 개새끼가 대체 누구였는지 기억해 내라고!!!"
사건의 해결은 끝났다. 하지만 20년 전 멈춰버린 웅의 지옥은 이제 막 수면 위로 끌어 올려지며 거대한 서막을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