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1. 토끼 인형의 침묵 (상)

[CASE 1] 토끼 인형의 침묵 (상)

by 장경장

CASE 1. 토끼 인형의 침묵 (상)


​스윽.


웅의 검지와 다희 엄마의 새끼손가락이

맞닿은 찰나.


​"어, 어? 저 미친 새끼 저거 또 눈깔 풀렸다!"


​취조실 밖 통제실. 매직미러 너머로 조사를 지켜보던 권지태 형사(55)가 모니터를 삿대질하며 벌떡 일어났다.


베테랑 형사의 직감이, 아니, 지난 3년간 웅의 사수를 맡으며 겪었던 지독한 경험이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권 형사가 다급히 통제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야, 김 형사! 너 잠깐 나가서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와. 내가 직접 조질 테니까!"


"예? 주임님, 갑자기요?"


​어리둥절해하는 후배 형사를 억지로 등 떠밀어 내보낸 권 형사가 취조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그의 눈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천장에 매달린 CCTV 카메라였다.


권 형사는 능숙하게 서류철을 들어 카메라 렌즈의 각도를 교묘하게 비틀어 가렸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웅을

바라보며 마른세수를 했다.


의자에 앉은 웅은 방금 전까지 짓고 있던

사람 좋은 미소를 굳힌 채, 초점 잃은 새까만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아... 징글징글한 놈. 뇌혈관 다 터져서 뒤지고 싶어 환장을 했지."


​권 형사가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웅의 코밑으로 휴지를 뭉쳐 대주었다.


웅의 콧구멍에서 핏방울이 느릿하게 맺히고 있었다. 현실의 시간은 이제 막 1초가 흘렀을 뿐이었다.



​삐이이이—


​고막을 찢는 이명과 함께 시야가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끝없는 암흑 속을 추락하며,

웅은 흐려지는 의식의 끈을 악착같이 부여잡았다.

다이빙의 조건은 세 가지.


범행의 짙은 감정이 묻어있는 '매개체(토끼 인형)'.
그 매개체와 강하게 연결된 '타겟(다희 엄마)'.
그리고 주파수를 맞춘 상태에서의 '의도적인 신체 접촉'.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과거, 어떤 끔찍한 사고 이후 웅의 뇌파 방어벽은 산산조각이 났다.

빗장이 부서진 뇌는 매일 밤 알 수 없는 악몽을 불러들였지만, 역설적이게도 남의 지옥(무의식)에도 프리패스로 들어갈 수 있는 저주받은 열쇠가 되어 주었다.


​'이번엔 방어 기제가 얼마나 지독할지.'


​쿵!


​중력이 돌아오며 웅의 두 발이 단단한 바닥에 착지했다.


눈을 뜨자마자, 오른쪽 관자놀이 부근에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예리한 통증이 느껴졌다.

웅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 눌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두통은 뇌를 짓누르는 고통으로, 결국에는 피를 토하는 환통으로 변할 것이다. 뇌사 상태에 빠지기 전까지 웅이 이 무의식 속에서 버틸 수 있는 생존 한계 시간. 체감상 대략 30시간 남짓이었다.


​통증을 억누르며 고개를 든 웅의 시야에,

눈이 시리도록 밝은 공간이 펼쳐졌다.

햇살이 쏟아지는 넓고 깨끗한 아파트 거실. 코끝에는 달콤한 분유 냄새와 포근한 섬유유연제 향기가 훅 끼쳤다.


​"현실의 도피처치고는 구역질 나게 완벽하네."

​현실의 차갑고 칙칙한 취조실과는 정반대의,

소름 돋도록 평화로운 공간. 웅은 본능적으로 이곳이 피의자가 자신의 끔찍한 죄를 덮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된 일상'임을 직감했다.


무기는 없다. 오직 두뇌와 감각만으로

이 완벽한 연극 무대를 파헤쳐야 했다.


​달그락, 탁탁.
​주방 쪽에서 경쾌한 도마 소리가 들려왔다.
웅은 소리 없이 걸음을 옮겨 거실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싱크대 앞에는 여자가 콧노래를 부르며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아기 식탁 의자에는 7살 다희가 생기 잃은 밀랍 인형처럼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여자가 방글방글 웃으며 다희의 입에 숟가락을 밀어 넣었다.


​"우리 다희, 착하지?

엄마가 주는 거 다 먹어야지."


​겉보기엔 완벽한 천사 엄마. 하지만 웅의 예리한 눈은 기괴한 위화감을 단숨에 포착해 냈다.
다희가 입을 꾹 다물고 음식을 거부하자,


여자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며 순식간에 눈빛이 차갑게 죽어버렸다. 그것은 자식을 향한 '사랑'이 아니었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소유물을 향한 섬뜩한 '분노와 통제욕'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벅벅, 벅벅.


​어디선가 기분 나쁜 마찰음이 웅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소리의 진원지는 주방이 아니었다.

웅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햇살이 닿지 않는 거실 소파의 가장 깊은 그늘.


그곳에 누군가 웅크리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땟국물이 흐르는 낡은 옷을 입은, 7살 남짓해 보이는 깡마른 여자아이.


아이는 한 손에 '때 탄 토끼 인형'의 목을 꽉 쥔 채,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앙상한 팔뚝을 피가 나도록 벅벅 긁어대고 있었다.


달콤한 분유 냄새 사이로

희미한 쇳내(피 냄새)가 섞여 들었다.

​아이는 주방에서 다희를 안고 있는 여자를 향해, 질투와 증오, 그리고 지독한 애정결핍이 뒤섞인 소름 끼치는 눈빛을 쏘아보내고 있었다.

​'다희가 아니야.

저 나이대 애가 또 있을 리가 없는데.'


​웅의 미간이 좁아졌다.

범죄 심리 특채의 예리한 본능이 꿈틀거렸다.

웅은 숨을 죽이고 주방의 여자와 그늘 속의 아이를 번갈아 관찰했다. 다희가 밥을 뱉어낼 때마다, 싱크대 앞의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어둠 속의 아이 역시, 정확히 같은 타이밍에 왼쪽 팔뚝을 미친 듯이 긁어대고 있었다.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발현되는 강박적 자해 행위.

두 존재의 행동 패턴이 소름 돋도록 완벽하게 동기화되어 있었다.


​'저 아이… 외부 침입자가 아니다.'


​웅은 확신했다. 저 깡마른 아이는 여자가 현실에서 짓눌러버린 불안과 결핍의 덩어리.


즉, 무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서 떨어져 나온 감정의 '파편'이었다.


​웅이 아이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상체를 기울인 찰나.


어둠 속의 아이가 짐승처럼 고개를 홱 틀어 웅과 눈을 맞췄다.


​"……!"


​아이의 흐리멍덩하던 동공이

공포와 경계심으로 미친 듯이 수축했다.

아이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토끼 인형을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들켜서는 안 될 엄청난 비밀을 안고 도망치는 짐승 새끼처럼,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거실 한구석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도망친 곳은 햇살이 전혀 닿지 않는 기이하게 어두운 복도였다. 그 좁은 통로 끝에서는 짙은 곰팡내와 함께 뚝, 뚝 떨어지는 서늘한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저기다.'


​저 아이가 향하는 곳에 이 거짓된 세상의 진짜 밑바닥, 범행의 코어 메모리가 있다.
웅이 본능적으로 복도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조심스럽고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빠직—


​하지만 무의식의 세계는 침입자에게 결코 관대하지 않았다.


웅의 구두 굽 아래서, 카펫에 가려져 있던 플라스틱 장난감 블록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웅의 척추를 타고 서늘한 소름이 쫙 돋았다.
거실을 채우던 클래식 자장가 소리, 냉장고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 창밖의 햇살마저 텔레비전 전원을 뽑은 것처럼 순식간에 차단되었다.


공간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입김이 새어 나왔다.
​거짓된 일상을 유지하던 무의식의 톱니바퀴가 멈춰버린 것이다.


​"……."


​싱크대 앞에서 다희에게 음식을 먹이던 여자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등을 돌리고 선 그녀의 어깨가 기괴하게 떨리더니, 이내 목만 180도 가까이 꺾여 웅이 숨어있는 기둥 쪽을 정확히 응시했다.


​"누구야."


​수십 명의 여자가 동시에 속삭이는 듯한,

기괴한 이중음보가 거실을 울렸다.


방금 전까지 천사처럼 웃고 있던 여자의 얼굴은 이제 표정 근육이 완전히 마비된 것처럼 차갑게 굳어 있었다. 오직 동공만이 비정상적으로 확장된 채 웅을 향해 번들거렸다.


​"누가, 우리 완벽한 집에,

흙발로 들어왔어."

이전 01화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