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자라난 몸, 반복되는 죽음. 그리고 3초의 다이빙
비린 녹내음과 습한 곰팡이 냄새.
장대비가 쏟아지는 칠흑 같은 폐공장 안,
웅은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허억, 헉...!"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이 핏물처럼 비릿했다.
180이 훌쩍 넘는 건장한 체격에 범죄자 서넛쯤은 맨손으로 때려잡을 만큼 다부진 몸이었지만,
지금 웅은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극도의 공포에 질려 있었다.
뚜벅. 뚜벅. 뚜벅.
뒤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묵직한 발소리가 쫓아오고 있었다.
온몸을 던져 녹슨 철문을 닫고,
육중한 철근과 드럼통을 끌어와 문을 겹겹이 막았다. 손톱이 다 뒤집어지도록 바리케이드를 쳤지만, 밖에서 들리던 발소리가 문턱에서 멈춘 순간 웅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오늘 밤도 틀렸다는 것을.
— 끼기기기기긱!!
육중한 철문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뜯겨 나갔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거대한 실루엣.
웅의 눈에 핏발이 섰다.
매일 밤 겪는 똑같은 죽음.
차라리 혀를 깨물거나 벽에 머리를 박아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라도 저 새끼의 목소리를 피하고 싶었던 날이 수백 번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기어코 저놈의 면상을 보고야 말겠다는 독기가 웅의 전신을 지배했다.
"으아아아아!!"
웅이 바닥에 굴러다니던 쇠파이프를 집어 들고 짐승처럼 돌진했다.
하지만 놈은 웅의 쇠파이프를 가볍게 쳐내고는, 자비 없이 웅의 복부에 번쩍이는 칼날을 깊숙이 쑤셔 넣었다.
"컥...!"
웅이 피를 토하며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고꾸라졌다.
숨이 턱턱 막히고 내장이 타들어 가는 고통.
웅은 경련하는 몸을 이끌고, 핏발 선 눈으로 고개를 들어 놈의 얼굴을 확인하려 애썼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야는 점점 붉고 흐릿해져만 갔다. 역광에 가려진 놈의 거대한 실루엣이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는 웅을 여유롭게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놈의 손이 천천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고요한 폐공간을 가르는 서늘한 금속음.
딸깍, 챙—
일렁이는 지포 라이터의 시뻘건 불빛. 흐려지는 웅의 시야 위로 놈의 입술이 조롱하듯 호선을 그리는 것만은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숨이 완전히 끊어지기 직전,
웅의 고막에 평생을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그 끔찍한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휘— 휘— 휘익—
세 마디의 짧고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
그 소리를 끝으로 웅의 숨이 멎으며 시야가 까맣게 암전되었다.
"허억—!!"
웅이 비명을 삼키며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
웅은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찬물을 틀어 머리부터 쏟아붓고 나서야 거울 속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젖은 앞머리 아래로, 며칠 밤을 꼬박 새운 듯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과 베일 듯 날카로운 턱선이 드러났다.
넓은 어깨와 셔츠 핏을 뚫고 나올 만큼 탄탄한 잔근육이 도드라진 몸이었지만, 창백하게 질린 안색과 파르르 떨리는 입술은 방금 전 겪은 죽음의 고통을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었다.
웅이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며 자조적인 헛웃음을 흘렸다.
"하... 몸뚱이는 이렇게 컸는데.
뒈지는 건 20년째 똑같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를 악몽.
어릴 적의 기억은 통째로 날아가 버렸지만,
저 빌어먹을 라이터 소리와 휘파람만은
매일 밤 그를 찾아와 죽음을 선사했다.
웅은 수건으로 얼굴을 거칠게 닦아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번 하자,
짐승처럼 번뜩이던 그의 차가운 눈빛이 순식간에 사람 좋은 '스마일 보이'의 눈빛으로 덮여갔다.
대한민국 경찰청 범죄심리 특채 경위 장웅. 아무도 모르는 그의 진짜 얼굴을 다시 깊숙이 숨길 시간이었다.
"아이고, 우리 불쌍한 다희... 흑흑...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대신 아팠어야 했는데...!"
경찰청 조사실.
맞은편에 앉은 30대 여성이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오열하고 있었다.
원인 불명의 혼수상태로 실려 온
7살 다희의 친모였다.
유리창 너머 통제실의 형사들은 답답함에 뒷목을 잡고 있었다.
[아오, 진짜! 집안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학대 정황도 없고. 현장에서 가져온 거라곤 애 침대에 있던 저 낡아빠진 '토끼 인형' 하나뿐인데. 무작정 잡아둘 수도 없고 미치겠네.]
인이어로 들려오는 선배의 투덜거림을 한 귀로 흘리며, 웅은 책상 위에 놓인 토끼 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열하는 엄마, 완벽한 밀실,
그리고 때 탄 토끼 인형. 아동 관련 사건의 이면을 숱하게 파헤치며 벼려진 웅의 매서운 직감이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어머니."
웅이 특유의 서글서글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동네 청년처럼 넉살 좋은 미소가 그의 얼굴에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아이가 쓰러져서 많이 놀라셨죠. 저희도 안타까워서 그럽니다. 일단 진정 좀 하세요."
웅은 종이컵에 따뜻한 물을 따라 그녀의 앞으로 조심스럽게 밀어주었다. 오열하던 여성이 훌쩍이며 물잔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여성의 손끝이 종이컵에 닿으려는 찰나,
컵을 쥐고 있던 웅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본능적인 거부감.
지금이라도 손을 빼고 모른 척 도망치고 싶다는 지독한 충동이 웅의 숨통을 조여왔다.
타인의 무의식 속에서 겪어야 할 그 처절한 죽음의 감각이 떠오르자,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서늘한 공포에 웅이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웅의 시선이 책상 위,
때 탄 토끼 인형에 가닿았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차가운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7살 다희의 모습이 그 인형 위로 스치듯 겹쳐졌다.
‘빌어먹을.’
웅은 짐승처럼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스윽.
찰나의 주저함을 억누른 웅의 검지가,
여성의 새끼손가락과 짧게 맞닿았다.
삐이이이—
그 순간, 웅의 귓가에 이명과 함께 세상의 모든 소리가 차단되었다.
종이컵 안에서 찰랑이던 물결이 공중에서 얼어붙은 채 정지했다.
오열하던 여성의 눈물방울도 허공에 멈춰 섰다. 현실의 시간이 완벽하게 멈춘 것이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던 웅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온기가 증발했다.
차갑게 가라앉은 뱀 같은 눈동자가 허공에 멈춘 여성을 서늘하게 꿰뚫어 보았다.
"현실에선 3초. 그 안에서는 30시간."
웅의 짙은 눈동자가 새까맣게 확장되며,
시야가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타인의 무의식 속, 숨겨진 트라우마의 방으로 다이빙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