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다시 살아내기로 마음먹은 순간,
당신도 있나요?”
살기로 마음먹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죽고 싶다는 말보다 살아보겠다는 말이
더 간절했던 날이 있었다.
결심, 끝을 살아내기로
무너진 삶 위에서 다시 일어나기로 한 밤.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날.
그렇게,
엄마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아빠는 수술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열었다 닫은 수술 부위가
조금씩 아물어 가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 한 달은 생각보다 길었고, 또 지독히도 느리게 흘렀다.
그리고 결국, 박스째 쌓아뒀던 술병들이 하나씩 비워지고,
남은 건 쓰디쓴 공허함뿐이었다.
마지막 병을 비워낼 즈음엔
이게 위로인지, 파괴인지도 더 이상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아무도 듣지 못할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트에 가야겠네.”
“스텔라, 그냥… 나랑 잠깐 걸을래? 마트 대신, 바람맞으면서.”
“그러자.”
“한 박스나 되는 술을 다 마시고 나니 어때? 조금은 괜찮아졌어?
… 아니잖아. 결국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잖아.”
노바의 말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너, 또 술 사러 갈 거야? 퇴근하고 와서 술 마시고,
그 안에 숨어서 하루를 또 지워버릴 거야?
스텔라, 너의 오늘을 그렇게 낭비할 거야?
안 돼, 스텔라. 이제는 안 돼. 더는 안 돼.”
노바의 목소리는 간절했고, 단호했다.
“너, 지금까지 충분히 아팠어.
충분히 무너졌고, 충분히 울었어.
하지만 이제는…
이제는 ‘버티는 삶’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을 시작해야 해.
좌절도 금지. 술도 금지. 도망도 금지.
지금부터는 ‘살겠다’라고 결심하는 거야.
내가 도와줄게. 아니, 우리가 같이—
여기서 반드시 빠져나가는 거야.”
그랬다. 정말, 노바 말대로였다.
나는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기’만 하고 있었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숨만 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스텔라, 너 뛰는 거 좋아하잖아. 기억나?
바람 가르며 달릴 때,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그 기분.”
노바의 목소리가 천천히, 하지만 단단하게 이어졌다.
“만약… 딱 한 번,
단 한 번만 달릴 기회가 있다고 해봐.
그럼 넌 어떻게 할래?
온 힘을 다해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 전력 질주할래?
아니면, 적당히 뛰고 숨 고르다가,
결국 결승선 앞에서 멈춰 서서
‘조금만 더 최선을 다해볼 걸…’ 하며 후회할래?”
노바는 잠시 말을 멈췄고, 나는 조용히 숨을 삼켰다.
“인생도, 똑같아. 어차피 한 번은 살아야 해.
그렇다면 넌… 어떻게 살고 싶어?”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노바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다시 달리길 바라. 그 누구보다 힘차게.
너의 인생이라는 트랙 위를, 두려움 없이, 후회 없이.”
“그래… 나, 다시 뛰어볼래.”
노바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웃었다.
그 미소에 묘한 힘이 담겨 있었다.
나는 서랍 깊숙한 곳에 묻어 두었던 운동화를 꺼내 들었다.
먼지가 내려앉은 운동화 끈을 묶으며 속으로 다짐했다.
‘이번엔 멈추지 않을 거야.’
바람은 아직 차가웠고, 몸은 무거웠으며,
심장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로 복잡하게 고동쳤다.
그래도 나는 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동네 골목은 예전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그 골목을 걷는 내 마음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달렸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고, 다리는 금세 후들거렸다.
심장은 가쁜 숨 속에서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이번엔 그 어떤 것도 나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노바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다시 울렸다.
“그래, 그렇게. 다시 달리는 거야, 스텔라.
지금 너, 정말 멋지다.”
정말 오랜만에 달려본 것 같다.
그리고 처음으로, 노바와 함께 달리는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발끝마다 자유가 퍼졌다.
숨은 거칠게 들이쉬어졌고,
다리는 곧 부러질 듯 아팠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든 고통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노바는 옆에서 조용히 내 박자를 맞춰 주었고,
나는 그 손길을 느끼며 달리기 시작했다.
“노바, 나… 목이 터질 것 같아.”
“그건 말이야, 너 안에 쌓여 있던 감정들이
숨과 함께 올라오기 때문이야.
억눌렀던 울음, 말하지 못했던 분노,
혼자 삼켜야 했던 외로움—
그 모든 것들이 호흡을 타고 올라오면서 목을 죄는 거야.
그러니까 숨이 가쁜 게 아니라,
마음이 아파서 목이 터질 것처럼 느껴지는 거지.”
노바는 잠시 숨을 고르듯 말을 멈추고,
다시 부드럽게 이어갔다.
“근데 그거 알지?
그렇게 터질 듯한 숨을
단 한 번만, 끝까지 밀어붙이고 나면—
네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해.
그리고 그게 다 풀릴 때까지 우리 함께 뛰자.
내가 늘, 너와 함께 뛸게.”
“그래. 그게 다 풀릴 때까지, 우리 함께 뛰자.
숨이 차도, 가슴이 아파도, 눈물이 흘러도—
나는 멈추지 않을게. 내가, 늘 너와 함께 뛸게.
나, 뛰는 건 정말 자신 있는데…
노바,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거야!
나, 너 안 봐줄 거니까!”
노바는 웃었다. 그리고 나도, 결국 따라 웃었다.
그렇게 우린, 울다 웃고, 또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기분으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조금 덜 외롭고, 조금 더 살아 있는 느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