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한 연락

by Stella

“단 한 통의 전화로, 삶이 송두리째 뽑힌 적, 당신에게도 있나요?”



아무런 예고도 없었다. 진동음 하나, 이름 하나.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는 걸. 피할 수 없다는 걸.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듯했지만, 운명은 그 끝을 허락하지 않았다.


“최○○ 님 보호자시죠?” “네…” 짧은 말 한마디에, 불안이 물밀듯 밀려왔다.


“H 병원인데요. 지금 보호자님이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지금 갈게요.”

전화를 끊고 바로 오빠에게 연락했다.



“엄마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보호자가 와야 한다고 해서 지금 가는 중이야.” “어. 가보고 전화해.” “응.”


수업을 마치지도 못한 채, 급하게 짐을 챙겨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실에 들어서자, 간호사 여러 명이 엄마 주변에 몰려 있었고, 환자들은 웅성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는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었고, 인공호흡기를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산소포화도는 60이었다. 정확한 수치는 몰랐지만, 그 숫자가 ‘위험한 수치’라는 건 본능적으로 알았다.


“일단 응급실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곧 엄마는 응급실로 옮겨졌고, 나는 병실에 남아 짐을 챙겨 차에 실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빠르게 움직였고, 발걸음은 분주했다. 모든 것이 정신없이 흘러갔지만, 나는 그 한가운데 멍하니 서 있었다.


응급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나 혼자만 이질감 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피검사, CT, 소변줄까지. 엄마는 온몸을 기계에 내맡긴 채 검사를 받았지만, 그 와중에도 정신은 또렷했다. 소변줄을 꽂으려는 간호사의 손길에 엄마는 툭, 한마디를 던졌다. “나, 화장실 잘 가는데.” 마치 이 상황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 말투엔 여전히 익숙한 엄마의 ‘체면’이 묻어 있었다.


한참 후, CT 결과가 나왔다.


“폐가 하얗습니다. 물도 차 있고요. 여기선 더 이상 치료가 어렵습니다. 상급병원으로 옮겨야 합니다.”



병원에서는 엄마를 받아줄 상급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곧 B 병원에서 환자를 받을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엄마는 곧바로 응급차에 실려 이송되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따라, 나는 내 차를 몰고 B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를 태운 응급차는 앞서 달렸고, 나는 그 뒤를 놓치지 않으려 눈앞에 번쩍이는 빨간 신호만 바라봤다.


창밖은 어두웠고, 불빛은 시야를 휘감듯 스쳐 지나갔다. 등대를 따라가는 작은 배처럼, 그 순간엔 오직 그 불빛만이 내가 가야 할 방향이었다.



B 병원까지 거리는 멀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뒤죽박죽이었다. B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피검사, CT, X-ray 등 검사가 이어졌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누군가 다가와 말했다.

“중환자실 병실이 나면, 바로 옮길 예정입니다.”


‘중환자실.’그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서울에 있는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중환자실로 옮겨야 한대.” “왜?” “나도 모르겠고…”


갑작스레 터진 눈물에, 그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의사도, 간호사도, 누구 하나 내게 정확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 무엇이 어떻게, 왜 나빠졌는지조차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응급실 복판에 홀로 서 있었다.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 환자들로 북적였지만, 그 순간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눈물은 놀람인지, 공포인지, 어쩌면 그 둘이 뒤섞인 감정의 파도였는지도 모른다.



아빠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아빠, 엄마가 몸이 좀 안 좋아서 B 병원으로 옮겼어. 오늘은 내가 있어야 할 것 같아. 알고만 있어.”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눈물이 터진 것도, 그저 너무 놀라서였다고 자신을 달랬다. 밤새 엄마는 응급실 복도 한 편의 임시 침대에서 주무셨다. 심지어 코까지 골면서.


나는 오히려 그 모습에 조금 안심했다. 왠지 모르게, 조금은 괜찮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다행이라는 마음이, 처음으로 스쳐 지나갔다.



오전 8시. 엄마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면회는 11시 30분부터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집에 들러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중환자실 앞에는 면회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조용히,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출입자 명부에 이름을 적고, 흰 비닐 가운을 입고, 비닐장갑을 꼈다.



나는 맨 뒤에 서서 조용히 순서를 기다렸다. 11시 25분. 1분이 10분처럼 느리게 흘렀고, 벽에 기대선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대도 체념도 아닌, 조용한 초조함만이 스머 있었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평온해 보이는 건출입 안내를 맡은 보안요원뿐이었다.



11시 30분 정각, 문이 열렸다. 사람들은 말없이 각자의 가족을 향해 흩어졌다. 나는 맨 마지막으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입구 쪽에 서 있던 간호사에게 물었다. “최○○ 님 보호자인데, 혹시 자리가 어디인가요?” 간호사는 이름을 확인하고 짧게 말했다. “9번이요.”



넓은 중환자실. 긴 병실 양옆으로 나란히 놓인 침대 사이를, 나는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엄마는 그중 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창백한 얼굴, 반쯤 감긴 눈, 말라 있는 입술, 헝클어진 머리, 여러 개의 줄과 기계들이 마치 투명한 벽처럼 엄마를 감싸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알던 세상의 질서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걸 말없이 직감했다.



의식은 없었다. 엄마는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누워 있었다. 기계음이 일정한 박자로 공간을 채웠고, 그 소리만이 이 안에 흐르는 유일한 생기였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엄마의 이마를 짚었다. 뜨거운 듯했지만, 열은 없었다. 볼을 쓰다듬고, 손을 꼭 잡았다.

뼈만 남은 손등 위로, 내 손을 조심스럽게 얹었다.


그리고, 말을 꺼냈다. 입안에서 수없이 맴돌았던 단어 하나.

“엄마…”


그 말은, 목이 메어 나오다 끝내 공중으로 사라졌다.


왜 그렇게, 그 단어 하나가 목에 걸렸을까. 결국 나는 그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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