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당신에게도 있나요?”
누구나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때론 다시 가질 수 없기에 더 간절하고, 때론 너무 그리워 아프기까지 하다. 그리고 나는, 그때를 기억하는 법을 스스로에게 가르쳐야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서울에서 내려왔다. 모든 걸 멈추고 시골로 향했던 건, 도망이라기보다 사라지고 싶은 마음에 가까웠다.
말도, 사람도, 약속도 모두 버거웠고, 숨 쉬는 것조차 감당하기 힘든 날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2년 가까이 세상과 단절했다. 세상은 나 없이도 흘러갔고, 나는 그저 ‘존재를 유지하는 법’만 익혀갔다. 고립의 시간은 끝날 기미 없이 이어졌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하루가 반복되었다. 내가 나를 꺼내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구해줄 수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 고요하고 텅 빈 시간 속에 조용히 머물렀다.
숨 쉬는 것조차 벅차던 날들이었다. 하루가 저물기만을 기다렸고, 말을 걸 사람도, 기대할 일도 없었다. 몸은 살아 있었지만, 마음은 점점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보건소의 자살 예방 프로그램에 그저 한번 가보자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꽃을 심고, 등나무 바구니를 만들고, 작은 조명을 조립했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행위는 생각보다 깊은 일이었다. 처음엔 손이 움직였고, 그다음엔 아주 천천히 마음이 따라왔다.
그건 단순한 작업이 아니었다. 내 안의 생명을 다시 불러내는 일이었고, 한때 버려두었던 나 자신을 다시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난 후, 나는 다시 우울한 나로 돌아갔다. 그 짧고 따뜻했던 위로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다시 고요한 어둠 속으로 미끄러지듯, 나는 원래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세상이 싫었다. 사람도, 소리도, 모든 게 부담스러웠다. 나는 가능한 한 혼자가 되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나만 이런 걸까. 아니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어둠의 가장자리를 조용히 지나온 적이 있을까. 단지, 그 누구도 말하지 않을 뿐일까. 표현하지 않고, 조용히 삼켜버리는 걸까.
다들 괜찮은 척, 견딜 만한 척하며 그저 그렇게 하루를 넘기고 있을까. 나만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니라, 사실 모두가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울은 세상이 나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천천히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는 일일지도. 남들이 나를 외면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그 바깥으로 내모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고립의 끝으로 밀려갔고, 어느 순간, 낭떠러지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더는 발 디딜 곳조차 없는 날, 어디든 숨을 곳이 필요했고, 가까운 절을 찾아갔다.
출가하고 싶었다기보다는, 그저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이 그날따라 그렇게 번역된 것뿐이었다. “비구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불교대학에 입학해 4년간 공부하고, 졸업 후 1년간 수행해야 합니다. 그 후 시험을 통과하면 됩니다.” “… 지금 당장은… 안 되나요?” “안 됩니다.”
…아. 절에 들어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자신을 견디기 힘들어 도망치듯 향한 것마저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 순간, 그 짧은 문장은 세상이 나를 조용히 거절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입꼬리가 비틀리고,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울음에 더 가까웠다.
다시, 숨 막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공허한 시간 속에서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의미도, 목적도 없었다. 붓이 닿는 대로, 마음이 닿는 대로 그리고 또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전 기억 속 한 장소가 떠올랐다. 꿈 많던 시절, 내게 보물섬처럼 느껴졌던 동네 화방.
30년 전에도 있던 그 가게는, 놀랍게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곳을 마주한 순간, 왠지 모를 뭉클함과 안도감을 느꼈다. 나만 이렇게 세월에 휘청거린 줄 알았는데, 그곳도 나처럼 나이 들어 있었다.
화방 옆엔 어린 시절 자주 놀던 교회가 있었다. 우연히 그 교회를 마주한 순간,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아무 걱정 없이 뛰놀던 날들, 세상이 따뜻하고 환하게만 보이던 때. 문득, 이곳에 들어가면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들었다. 우울하기 전, 밝고 웃음 많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희망.
하지만 교회의 이름은 내가 기억하던 것과 달랐다. 예전의 그 교회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고, 어느새 다른 곳으로 옮겨가 있었다.
나는 차를 몰아 그 교회를 찾아갔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심스럽게 예배당 안으로 들어섰다. 안은 캄캄했고, 어두운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빈 의자들만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낯선 공간이었지만, 마음은 조용히 가라앉았다. 익숙함은 없었지만, 그 공간엔 설명할 수 없는 평온함이 있었다. 그 순간, 예전에 누군가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무 힘들 땐 신에게 기대 봐. 신에게 부탁하면, 그분이 널 가엽게 여겨 마음을 조금 평안하게 해 줄지도 몰라.’
그 말을 떠올리며, 나는 피식 웃었다. ‘기도하면 신이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준다고?’ 너무 터무니없는 이야기 같았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그 낯선 교회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말이 허무맹랑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자꾸 걸렸다. 결국 그다음 주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맨 앞줄에 앉았다. 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어김없이 교회로 향했다.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낯익은 얼굴과 이름이 하나둘 늘어났다. 살면서 처음으로 교회 수련회에도 참석했다. 1박 2일 동안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그렇게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있었다. 차창엔 서리가 맺혔지만, 마음엔 따스한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교회에 정식으로 등록했고, 목장 모임, 새 신자 교육, 생명의 삶, 풍성한 삶…그 모든 시간에 열심히 참여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열심히 하게 했는지, 나도 잘 모른다. 그저 시간이 많아서, 할 일이 없어서였다고 넘겼지만—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이 나를 살리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살고 싶어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나는 그 시간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물었다. “달리기 좋아해요?” “네, 달리는 거 정말 좋아해요.” “교회에서 러닝 크루 만들기로 했는데, 같이 할래요?” “저야 너무 좋죠!”
그렇게 나는 러닝 크루의 초창기 멤버가 되었다. 예배, 달리기, 교육, 기도회, 집회까지… 하루도 교회에 안 간 날이 없을 만큼 바빴다.
살아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건, 누군가와 일상과 삶을 공유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이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다시, 미친 듯이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건 어쩌면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땀 흘리며 달리고, 카페에서 웃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며—나는 웃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었다.
오래전 나는 웃는 법을 잊었던 걸까. 아니면, 다시 웃을 용기를 잃었던 걸까. 어쨌든 마음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열리고 있었다.
“이번엔 마라톤에 나가 봅시다. 3km, 5km, 10km 중 원하는 거리로, 완주를 목표로 뜁시다.”
나는 5km에 도전했다. 별것 아닐 줄 알았는데, 출발선에 서자 그 짧은 거리가 50km처럼 느껴졌다.
의욕이 앞섰지만, 곧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중간에 걷고, 다시 뛰고, 또 걸었다. 그만둘까 고민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단순한 달리기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던지는 싸움이었다.
‘지금 멈춰도 괜찮을까? 아니, 나는 끝까지 가고 싶어.’ 결국 마른침을 삼키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손뼉을 쳐줬고, 그 기쁨이 진심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진짜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살아 있구나. 이게 숨 쉬는 기분이구나.’ 자신감이 생겼다. 욕심도 생겼다. 예전의 나로, 아주 조금씩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기 시작했다.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이렇게 작은 시도 하나가 무너진 삶을 다시 붙잡아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교회에 온 지 다섯 달, 나는 세례를 받았다.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누군가가 날 인정해 준 것 같은 순간이었다.
부모님이 꽃다발을 들고 와 주셨고, 나는 아이처럼 기뻤다. 무너졌던 인생이, 전쟁터 같던 삶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딸, 엄마 요즘 자꾸 허리가 아파.” “병원 가 봐.”
무심한 대답이었다. 나이 들면 그럴 수도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엄마는 입원하셨고, 나는 여전히 바쁘게 살고 있었다. 사회복지사 수업, 운전면허 학원, 요양보호사 수업까지. 하루 24시간이 부족했다.
오랜만에 무언가에 몰입하고 있었다. 삶이었다. 생기였다. 다시 뛰는 심장이었다.
우울증으로 무너졌던 삶이 다시 세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거의 5년 만에 나는 다시 살아났다.
미쳐가기 직전, 낚싯줄에 걸려 바닥에서 파닥거리던 물고기처럼 이미 끝난 인생이라 생각했지만, 어떤 손이 나를 조용히 들어 올려 다시 바다로 헤엄치게 해 준 것 같았다. 그 손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른다. 용왕이었을까? 신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그 시절 곁에 있었던 평범한 사람의 손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살게 되었다. 숨을 쉬었고, 웃었고, 농담을 주고받았고, 친구를 만났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할 수 있었고, 사람들 속에서 다시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영원히 닫힌 줄 알았던 내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정확히 말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또 다른 삶 속에서, 아주 천천히 나도 모르게 열리고 있었다.
엄마의 허리 시술은 잘 끝났고, 며칠 뒤면 퇴원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안도했고, 동시에 내 일상에 완전히 몰입했다. 사회복지사 수업, 운전면허 연습, 요양보호사 자격시험 준비까지. 정신없이 하루를 쪼개며 달리고 있었다.
엄마를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고, 잠깐 짬이 날 때면 병원에 들러 필요한 것만 전해주곤 나왔다. 이제 정말 끝이 보였다. 수업은 모두 끝났고, 출석도 다 채웠고, 딱 한 시간, 마지막 한 시간만 남아 있었다.
‘오늘은 그냥 집에 갈까?’ 잠깐 그런 생각이 스쳤다.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느슨해지는 순간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지만, 끝은 내 손으로 마무리하자고 자신을 다독였다.
마지막 수업 시작 10분 전이었다. 머릿속이 미친 듯 회전했다. 오늘까지 다 끝내면, 조금 더 나아질 것 같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듯 익숙한 번호. 받고 싶지 않은 번호였다.
어쩌면 나는, 조각조각 깨졌던 인생을 나 혼자 이어 붙이며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전화를 받는 순간 다시, 산산조각 날 줄은 그 누구도, 나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다.
마치 힘겹게 세워 올린 도미노가마지막 한 칸을 남기고 내 손끝의 실수 하나로 와르르 무너지는 장면처럼. 그렇게, 모든 게 다시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