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국 공간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여행했던 것은
공간이었을까, 아니면 그 안의 사람들이었을까.
예전에 나는
작은 도서관을 기획하고 만든 적이 있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회사 사옥 빌딩이었지만,
창밖으로는 서울의 산과 고궁의 풍경이 겹쳐 보이는 꽤 좋은 위치였다.
그 풍경을 품은, 잠시 머물 수 있는 ‘책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시작은 꽤 설레는 일이었다.
여러 도서관을 참고하고, 우리만의 기준과 방식을 담아보려 했다.
하지만 현실은
수많은 직원이 사용하는 업무공간 안의 일부였고, 다양한 요구와 조건 속에서
그 공간은 점점 ‘조율된 결과물’이 되어갔다.
외부 풍경이 잘 담기게 하기 위한 층과 위치를 사수했고
다양한 좌석 형태를 갖춘 공간이었지만, 결국 직원들이 자주 머무는 장소가 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일하는 공간 안에 ‘책을 통한 쉼 공간’을 만들고, 잘 운영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레이 올든버그가 말한
‘제2의 장소’인 회사 안에 ‘제3의 장소’를 억지로 들여놓으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누구나 자연스럽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오히려 도시 속 어딘가에 따로 존재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여행에서 만났던 그 도서관.. 서점.. 들처럼
그러고 보니, 도서관과 서점은 닮아 있으면서도 다른 공간이다.
도서관이 머무는 곳이라면,
서점은 선택하는 곳에 가깝다.
최근엔 그 경계가 희미해지는 공간들도 생겨나고 있지만
여하튼, 책을 매개로 영감과 환대의 공간이었으면 싶다.
도서관 프로젝트를 하던 그 시절의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책이 있는 공간'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한 장의 인증샷을 위한 포토존을 찾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제약과 조율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을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머무는 방식과 그 너머의 공간 가치를 탐험하고 싶었던 것 같다.
고민이 길어지던 시기, 회사 옆 서점을 매일 오가며 시간을 보냈고
버티기 위해 떠났던 여행길에서도
결국 내가 바라고 있었던 건
책이 아니라,
그 책이 놓여 있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공간이
사람을 어떻게 머물게 하는지에 대한 방식.
그 시간들은
내 경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번역되고 있는 순간들이었기를 바라본다.
지금까지는 누군가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면
이제부터는 내가 바라보고 싶은 공간,
나를 환대하는 공간에 조금 더 다가서보면 어떨까.
그래서 나는
이 여정을 조금 더 이어가 보려 한다.
다음은 책방문화가 살아있는 도시 도쿄의 서점들일지도,
아니면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작은 동네의 서점여도 좋겠다.
어쩌면 이 모든 여정은
나를 환대하는 공간을 너머
언젠가 내가 함께 할 공간을 만들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