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데이터가 기록됩니다. 처음, 설렘

모태솔로의 첫 취식, 첫 동행, 첫 버스

by 밤결




[첫사랑 알고리즘]


Version 1

데이터가 기록되었습니다.


첫 취식... 첫 동행... 첫 버스



온통 처음인 나. 그날 이후 사라진 그 애.

대면식 이후 나도 모르는 연애가 시작되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똑똑, "저기요. 괜찮으세요? 나와 보세요!"


물기 가득한 그 애의 얼굴을 잠시 보던 중 노크소리가 들려서 화들짝 놀랐다. 아르바이트생인 것 같았다. 아무리 남여 공용 화장실이라지만, 그림이 좋지 않았다.


점점 커지는 노크소리.

그 애도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 애는 정신이 들자마자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너랑 나랑 술 먹다가 동시에 화장실에서 발견되는 건 조금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나는 저기 변기 칸에 문 닫고 조용히 있을 테니까, 너 먼저 나가."



조금 뒤 문을 열고 그 애가 나갔다. 작은 소란이 있는 듯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잠깐 어지러워서요." 하는 그 애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다.


소란이 잦아들고 고요해졌을 때 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장난스레 웃고 있는 철기가 서 있었다.


"어이 모태솔로.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낯선 여자랑 화장실에서."


... 봤구나. 다행히 그놈 혼자였다.


안주를 먹자마자 입을 틀어막고 고양이처럼 화장실에 가는 내가 걱정돼서 따라왔다고 했다.


계속 나오지 않자 걱정에 아르바이트생에게 부탁했는데,

안에서 그 여자애만 나오자 호기심이 발동된 것이다.



"나가자. 설명할게. 일단 집에 가자. 나 속이 안 좋아."


화장실 문을 열자 웬 여자 둘이 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화장실 차례를 기다리는 줄 알았더니 기다리는 것은 철기였다.


"아 선배님. 친구가 취해서요. 배웅해주고 곧 갈게요!"


역시 박게이. 상냥함의 대명사. 곱상하고 훤칠한 신입생이 혼자 있었을 리 없지. 부러웠지만 속이 안 좋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나 먼저 갈게. 너 더 놀다 와. 힘내라." 친구를 남겨둔 채 황급히 술집을 빠져나왔다.


봄 밤, 찬 공기를 흠뻑 들이켜자 술이 약간 깨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걸어가자. 벚꽃 휘날리는 캠퍼스를 비틀비틀 홀로 걸었다. '아 이게 아닌데... 내가 생각한 대면식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야 같이 도망치자며 되게 늦게 나온다?".


그 애였다.

술에 취해 화장실에서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애의 얼굴빛도 약간 하얘져있었다.


"미안, 늦었다. 사람들이 계속 화장실에 들어와서. 몰래 나오려다 보니."


"잘했어. 괜히 소문이라도 나서 대학생활 끝나는 줄 알고 걱정 엄청 했네."


묘하게 서운한 말투였다. 처음 본 사이에 통성명도 안 하고 그런 걱정이 먼저라니. 나는 안중에도 없네. 내가 그렇게 별로 인가.


바로 옆 편의점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은 영락없는 거지꼴이었다. 괜히 울적한 마음에 그 애에게 퉁명스레 얘기했다.



"아이스크림이나 하나 먹고 가자. 내가 살 게."


그것이 여성과 처음 단 둘이서 나란히 앉아 음식물을 섭취한 기억이다.


친구 뒤처리를 위해 휴지를 사러 캠퍼스를 전력 질주하고,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온몸의 알콜을 입으로 되뱉어내고, 잔뜩 술에 취해 먹는 편의점 아이스크림 이라니.


드디어 밝은 조명 아래 그 애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여자치곤 꽤나 큰 키, 나보다 약간 작았다. 어깨까지 내려온 꼬불거리는 머리카락, 선이 굵은 얼굴. 약간 예쁘장했지만 내가 생각한 캠퍼스의 이상형은 아니었다.


"나는 홍승찬이야. 너 어디 살아?"



그제야 통성명을 했다. 우연인지 그 애도 나와 같은 동네에 살았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후딱 먹어치우고는 같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그것 역시 여성과 단 둘이 처음으로 버스를 탄 기억이 되었다.


그렇게 그 애와 하루 밤 사이 세 가지 첫 과제를 함께 했다. 첫 취식, 첫 동행, 첫 버스.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이 귀를 어지럽혔다.

처음이라 그런 건지 술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발 없는 말이 이렇게 재빠른 지 처음 알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핸드폰 문자가 한가득이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와 무시한 채 물을 벌컥 들이켰다. 학과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기다리는 동기들이 보였다. 그 가운데 난처한 눈빛으로 어색한 웃음을 짓는 박철기가 보였다.


어젯밤, 화장실 앞에서 철기를 기다리던 선배 두 명도 나를 보았다. 의리주를 마시고 처음 화장실로 달려가던 순간부터 쭉.


그 애와 내가 같은 화장실에 한참 있다가, 둘 다 일찍 집에 가버리자 의혹이 증폭되었고, 혹시나 해서 나와본 선배들에게 편의점 아이스크림을 들켜버린 것이다.


"너네 사귀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던데. 어떻게 벌써 그렇게 눈이 맞았대. 하하하. 부럽다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다시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아니야. 그냥 우연이었어." 변명을 하는데, 뒤이어 그 애가 들어왔다. 이미 문 밖에서 듣고 있었는지 과방을 슥 둘러보고는 그대로 뒤 돌아 뛰어가기 시작했다. "야! 기다려봐." 급히 외쳐보았지만 그 애는 사라진 뒤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그 애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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