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입력값 감지: 캠퍼스,을왕리,싸이월드

주의: Version1. 테스트버전입니다.

by 밤결




[첫사랑 알고리즘]


입력값이 감지되었습니다.

Version 1.


주의: 테스트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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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캠퍼스

을왕리

싸이월드




늦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나는 지금 벚꽃이 휘날리는 대학교 캠퍼스를 죽어라 달리고 있다.


첫 대면식이라고 머리도 신경 써서 만졌는데, 울화통이 터진다. 급하게 달렸더니 심장도 터질 것 같다.


얼굴에 땀이 한 방울 또르르 흘러내리더니, 이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망했다.



내 이름은 홍승찬. 모태솔로다.


여성과의 연애는커녕 밥 한 번 같이 먹어본 적이 없었다. 굳이 여성과의 접점을 찾아보자면 친구 따라 가입했던 토론동아리에서 인근 여고와 한 두 번 정도 했던 좌담회가 전부였다.


남중과 남고를 거쳐 부푼 꿈을 안고 드디어 대학에 입학했다. 학창 시절, 이 날을 위해 핸드폰도 사지 않고 버텼다. 완벽히 새로운 캠퍼스 라이프를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오늘, 학과 대면식의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런 중요한 날, 이미 늦은 시간에 캠퍼스를 죽어라 달리고 있다니.

애써 꾸몄는데 땀에 흠뻑 젖어있다니.


완벽한 모습으로 시작했어야 할 캠퍼스 라이프는 시작부터 꼬이고 있었다.



학교 앞 호프집 <보물섬>의 문을 열어젖히자 선배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신입생이 빠져가지고, 이쪽으로 와. 특별지정석이다."


그 애는 나보다 먼저 특별지정석에 앉아있었다.


앞머리가 살짝 젖어있는 것을 보니 쟤도 뛰어온 것이 분명했다. 살짝 굳어 있는 얼굴이 꽤나 난처해 보였다.


한 편으로 동지가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한 그때, 나를 이 꼴로 만든 원흉이 등장했다. 오늘을 망친 건 모두 저 놈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부터 친했고 대학교도 같이 온 단짝친구 박철기다. 이름과는 다르게 곱상하게 생긴 외모에 훤칠한 키, 무척이나 상냥한 성격을 지녔다. 마초적인 이름 석 자가 어색해지는 친구였다.


러브레터를 엄청 받아보았을 것 같던 친구도 역시 모태솔로. 박철기가 모태솔로라는 사실은 '여성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 이외의 언어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붙은 그의 별명은 박게이였다.


저 놈은 늦은 주제에 얼굴이 뽀송뽀송했다. 나를 발견하고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알아서 손을 흔들며 특별지정석으로 와서 앉았다. 싱긋 웃는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고 있었다.


"야, 너 때문에 늦었잖아. 팔자 좋다?"

"미안미안, 덕분에 살았다. 내가 나중에 밥살게 고마워."


전말은 이랬다. 철기가 전 날 무언가 잘못 먹었는지 배가 아프다며 급히 공대건물 화장실로 뛰어갔다.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더니, 한참 뒤 휴지가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대면식까지는 20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다고 큰 일 치른 친구를 휴지 없이 낯선 건물에 남겨 놓을 수는 없었다.


나는 정문 편의점까지 전속력으로 달렸고, 휴지를 사다가 친구에게 전달하고, <보물섬>까지 다시 전력 질주를 해온 것이었다. 저 놈은 뒤처리를 하고 기왕 늦은 김에 느긋하게 걸어온 모양이었다.



"자, 주목! 늦은 신입생 세 명 일어나고. 우리 과의 전통인 의리게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의리게임은 해당 인원수에 비례하는 술을 대접에 따르고, 순서대로 마실 수 있는 만큼 먹어 마지막 순서에서는 전부 비워내야 하는 게임이다.


특별지정석에는 소주 9잔이 놓였다. 인당 3잔의 술이었다. 문제는 특별지정석 세 명 중 하나가 장염 걸린 철기였다는 것이다. 나와 그 애, 둘이서 각자 4.5잔의 소주를 한꺼번에 마셔야 했다.


"너 술 잘 마셔...?" 그 애와 통성명도 하기 전에 주량을 물어봤다. "아니 나 한 잔만 마셔도 취해."


그 애를 두 번째에 놓았다가 못 먹고 철기한테 넘어가면 대참사가 발생한다. 철기는 바지에 지리고 학교생활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해맑은 친구의 표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너가 첫 번째해. 먹을 수 있는 만큼은 먹어줘. 부탁해."


선배들과 동기들의 환호 속에 그 애가 대접을 들고 소주를 들이켰다.


이내 켁 하는 소리를 내며 입술을 떼어냈다. 금세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이어지는 박수소리에 떠밀리듯 대접을 움켜쥐었다. 묵직한 느낌이 아직도 한 병쯤 남은 것 같았다.



나쁜 년, 나쁜 놈... 에라 모르겠다. 대접에 코를 박고 소주를 모두 비워냈다. 쏟아지는 환호성과 박수갈채, 이것으로 땀에 젖어 망가진 머리스타일이 약간 회복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자 옆에 있던 철기가 재빨리 안주를 입에 넣었주었다. 그 애의 앞접시에도 이미 감자튀김과 치킨이 담겨있었다. 철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애의 자리는 비워져 있었다. 두 번째 치킨을 입에 넣는 순간, 높은 파도를 헤쳐가는 돛단배 위에서 버터를 통째로 먹는 상상이 들었다.




나는 슬그머니 일어난 뒤 화장실로 조심스레 걸어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 잠금장치를 걸어 잠근 뒤 변기에 얼굴을 대고 몸 안의 모든 술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우에엑. 우엑. 쏴아아."


드디어 마지막 남은 수분 한 방울까지 모조리 뱉어낸 후 찬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뒤를 돌아본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그 애가 화장실 구석에 앉아 잠을 자고 있었다. 얼굴은 방금 세수를 한 듯 물기로 흥건했다.



'너도 똑같구나.' 생각이 들자 아까 나쁜 년이라 욕했던 게 미안해졌다. 그제서야 그 애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야 일어나 봐. 우리 같이 도망가자."


그 애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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