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대학 방송부, 벚꽃 날리던 봄
[첫사랑 알고리즘]
초기값 분석 완료
기억 데이터 접근 중…
2006년
대학 방송부
첫 기록을 불러옵니다.
사파리를 주제로 꾸며진 식당 안.
아내와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있을 동안
나는 키오스크 앞에 섰다.
하필 메뉴가 동물이름으로 지어져 있었다.
아들은 순진한 얼굴로
“나는 ‘은빛 물개의 생선구이’ 먹을래”라고 말했다.
거기에 ‘티라노의 주먹고기 스테이크’,
‘아기 양의 초록샐러드’를 추가로 주문했다.
너무 많이 시켰나,
음식이 한가득 담긴 쟁반을 들고 자리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내는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밝은 햇살에 대비되는
차가운 얼굴이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오예 ‘은진이의 생선구이!’”
“‘은빛 물개의 생선구이‘거든. 바꿔 부르지 말아 줄래? 맛있겠다. 얼른 먹자”
아내의 표정이 일순간 짓궂게 변했다.
이번엔 확실했다.
어젯밤 내가 무슨 소리를 했고 아내는 들었다.
모른 척 해도 소용없었다.
아내는 오히려 내 반응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아빠, 근데 어제 동물원 오는 꿈 꿨어요? 어떻게 물개 이름을 알았어요?
은진아, 은진아 계속 부르던데. 대단해요.
역시 아빠가 먹이체험 시켜주려고 찾아봤구나?”
아이는 속 모르고 떠들었다.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나는 아내에서 먼저 사과할 생각으로 말을 꺼내려했으나,
아내가 더 빨랐다.
“아니야, 김은진은 아빠 ‘첫사랑’ 이름이야. 첫.사.랑.
누가 동물 이름을 그렇게 애절하게 부르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선수를 뺏겼다.
“미안해. 내가 미쳤나 봐. 왜 갑자기 그 이름이 튀어나와.
사실 어젯밤 기억이 하나도 안 나. 진심이 아닌 거 알지?”
어색한 웃음을 걸치고는 사실대로 말했다.
아내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가며 눈이 커졌다.
이내 장난기 가득한 아이의 표정으로 변했다.
그리고는 재밌다는 듯 말했다.
“뭐 어때, 바람을 핀 것도 아니고.
내가 첫사랑 잠꼬대에 화 낼 여자로 보였어?”
눈치 없는 아들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빠 첫사랑 엄마라며, 아니었어? 엄마 첫사랑은 아빠라던데?” 식은땀이 났다.
“엄마 첫사랑은 아빠 맞아. 아빠 첫사랑은 엄마 아니야.
첫사랑이 꼭 맞아떨어질 수는 없어.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거든.
엄마는 운이 좋았지.”
아내의 말을 듣던 나는
갑자기 번뜩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거짓말, 너도 나 말고 전에 만났던 남자친구 있었다며.
예전에 말했던 기억이 나는데, 아니야? 애한테 거짓말했냐?”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나는 죄책감을 덜어낼 요량으로 쏘아붙이듯 말했다.
“아닌데, 처음 연애한 사람이 첫사랑이라는 법 있어? 첫사랑이 뭔데?
첫사랑의 기준이 법으로 정해져 있었던가?”
아내의 말에 할 말이 없어졌다.
그렇네. 첫사랑은 처음 연애한 사람이 첫사랑인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아이가 외쳤다.
“아, 그럼 나도 첫사랑 있어. 우리 유치원에 나한테 껴안은 여자친구 있거든.
내가 좋대. 그래서 나도 좋아. 근데 첫사랑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데...
나 그 친구랑 결혼하고 싶은데.”
그 말에 아내와 나는 동시에 눈을 마주치고
깔깔 웃었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체 따라 웃었다.
덕분에 식사는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밥을 먹는 도중에도 식탁 위에는 한 문장이 계속 남아 있었다.
‘그렇네, 첫사랑이 뭐지? 그래서 내 첫사랑이 누군데?’
수 없이 어긋난 데도 기다릴게. 아무리 가슴 아파도 웃어볼게. 떠나선 안 돼. 서둘러 저버리진 마. 날 미워해도 깊어지는 이 사랑을 봐. 내 입을 막아도 세상이 다 아는데, 왜 너만 몰라, 왜 널 지킬 남자를 몰라
때마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버즈의 <남자를 몰라>.
눈을 떠보니 동물원 식당은 사라져 있었다.
2006년, 방송부실이었다.
창밖으로 벚꽃 휘날리는 캠퍼스의 풍경이 펼쳐졌고,
따사로운 햇빛이 쏟아지는 창가에 그 애가 앉아있다.
스피커에서는 버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첫사랑 알고리즘]
기억 데이터 로딩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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