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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켰나? 안 들켰나?

by 밤결




[첫사랑 알고리즘]

초기값이 반응했습니다.


이름 : 김은진

기억 : 탐색 중

위험도 : 매우 높음


주의 : 해킹의 위험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싸맨 아내가 벌써 도착했다.


결국 나는 어젯밤의 일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술에 만취해 기억을 모조리 잊어버린 모양이다. 결국 때가 오고 말았다.


“야, 홍 과장. 죽을래?”


“아, 아니... 사실은... 그게...”



“오늘 애들이랑 동물원 가기로 약속한 거 잊었어? 지금 몇 시야! 빨리 씻고 준비해!”


응? 다행이다. 그 여자 얘기가 아니었다.


“알았어! 금방 준비할게.” 공포는 고통을 잊게 했다.

나는 기상나팔 소리를 들은 군인처럼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대피했다.


콩닥콩닥 뛰는 심장소리를 들킬까 샤워기를 세게 틀었다.



샤워기를 등지고 섰다.

뜨거운 물줄기가 뒤통수를 쉴 새 없이 때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김은진’ 이라니 말도 안 된다.


그 이름이 유치원생 아들 입에서 나오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리고 미뤄뒀던 가장 중요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내도 들었을까? 들었으면 나는 사망이다.’


고개를 떨어내고는 일단 다시 뜨거운 물에 몸을 맡겼다.

머리를 타고 흐르는 물줄기에 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뜨거운 물도 머리에 떠오른 공포를 녹여내는 데는 실패했다.

여전히 두 귀는 바깥의 상황에 집중하고 있었다.


“엄마, 어제 아빠가 잠꼬대를 하는데...”


아이가 아내에게 어젯밤의 일을 얘기하려는 것 같았다.


얼른 이 샤워를 마치고 나가야 한다.

서둘러 몸에 묻은 비눗물을 닦아내고 문을 열었다.

축축하게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덮어 얼굴을 가렸다.


아내는 햇살이 비치는 창가의 식탁에 앉아있었다.

그 옆자리에 아들이 앉아 있었다.

태연하게 머리를 털어 내며 식탁에 앉았다.



“아유, 술 냄새가 아직까지 진동을 하네.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어제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은 나지?”


나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당연하지, 근데 술을 많이 먹긴 했나 봐. 너무 피곤해서 바로 잠들어버렸네.” 하고 대답했다.


동시에 열심히 눈을 굴려 상황을 파악했다.

일단 아내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동물원에 가기 위해 시간에 쫓기는 얼굴이다.

밝은 햇살이 아내의 얼굴을 비췄고 눈을 찡긋 감았다.


“얼른 먹고 준비해, 늦었어. 빨리 가야 해. 더 늦으면 차 엄청 막혀!”


식탁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꿀물이 담긴 머그컵과

여전히 호기심의 눈빛을 쏘아대고 있는 아이만 남았다.


"너도 빨리 준비해 인마." 괜히 아이의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따뜻한 꿀물을 한 모금 삼키자 심장박동이 잦아들었다.

뾰루퉁한 얼굴로 째려보는 아이를 안아 들고 방으로 가서 옷을 입었다.



동물원은 사람들로 붐볐다.


아내의 눈초리는 '네가 늦게 일어나서 그렇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껏 과장된 몸짓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동물원으로 입장했다.


"솜사탕 먹을래? 슬러시도 하나 사자."


다행히 아이들은 달콤함에 취했다.

동물을 잠시 둘러보다가 이내 싫증을 내더니

동물을 흉내 내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아내의 표정도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나도 마음을 놓고 동물흉내를 내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갔다.


"크앙, 나는 티라노사우르스다."



아이들이 놀라는 시늉을 하며 도망쳤다.

아이들이 도망친 곳에서는

때마침 동물 먹이 주기 체험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빠, 동물 먹이 주기 체험하고 싶어요."


나는 생선이 든 바구니를 들고 아이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물개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이었다.

집게로 생선 한 마리를 집어 들어 아이의 손에 쥐어줬다.

사육사가 힘차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은진아. 간식 먹자! 옳지 은진이. 박수."


물개는 힘차게 박수를 쳤고, 관중들의 웃음이 터졌다.

아이는 환하게 웃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바구니 속 생선을 한 마리 집어

다시 물개의 입에 넣어주었다.

고개는 들리지 않았다.


다시 들리는 사육사의 한 마디.



"잘했어요! 고생한 꼬마 사육사에게 박수 주세요. 은진이도 박수 세 번 시작!"


물개 은진이의 박수소리에 맞춰 관중들의 박수 소리도 커져갔다.

아이도 박수를 치며 깔깔대고 웃었다.


다행히도 쿵쿵 울려대는 내 심장소리는 들리지 않았을 것 같았다.

이때 사육사의 한 마디가 가슴에 쐐기를 박아 넣었다.


"은빛 자태가 아름다운 물개, 은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신기하게도 저 멀리 관중석에 아내의 얼굴만 또렷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일어나는 모습에 돌아서는 얼굴이 보였다.

반만 보이는 얼굴에도 얼음장 같은 무표정만 걸려있었다.


어젯밤 들었구나. 무슨 일이 있었구나.

난 죽었다. 순진무구한 아이의 얼굴만이 남아있었다.




[첫사랑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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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명 :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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