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그여자 누구야?
[첫사랑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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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은진
기억 : 불명확
위험도 : 매우 높음
주의: 해킹의 위험이 있습니다.
분석을 시작합니다.
우리 회사 회식에는 공식이 있다.
먼저 부장이 자리를 잡고, 차장이 옆을 채운다. 관리자들의 옆자리, 신입사원들의 자리와 부장 사이의 자리가 과장인 나의 위치다. 딸깍, 소주병 따는 소리가 들리면 부장의 건배사로 술자리가 시작된다.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홍 과장, 오늘 많이 마셔! 내일 토요일이잖아."
차장이 웃으며 잔을 채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잔을 채웠다. 알콜이 목을 타고 장기를 훑어가는 느낌이 선명하다. 내려가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다. 혀가 마비되어 갔고, 입으로 넣는 음식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홍 과장, 부장님 한 잔 따라드려야지."
타는 듯한 속을 달래려 잘 구워진 고기를 한 점을 입에 가져가려던 순간이었다. 부장의 잔에 술을 적당히 채워 넣었다. 고기 대신 다시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속이 타들어가는 느낌에 내려놓은 고기를 황급히 입에 집어넣고 쓰게 씹었다.
찰칵,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조금 떨어진 자리의 신입사원 식탁이다. 핸드폰 카메라의 플래시 대신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갈색빛이 도는 액체가 담긴 하이볼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소주잔보다 가볍게 들린다.
'상급자를 먼저 모셔야지. 왜 나만... 요즘 젊은 애들은...'
쓰린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얼굴이 붉어졌고, 부장에게 술을 한 잔 따를 때마다 그쪽 식탁을 돌아봤다.
네 번쯤 돌아봤을 때, 흥미로운 점 하나를 눈치챘다.
나란히 앉은 최대리와 송주임의 말 끝이 묘하게 겹친다는 것이었다. 웃음의 타이밍이 맞았다. 최대리는 송주임의 앞접시에 잘 구워진 고기를 한 점 올려주더니, 수상한 시선을 눈치챘는지 고기를 여러 점 집어 같은 자리의 직원들 앞접시에 고루 나눠주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봐도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애매한 거리였다. 테이블의 간격 사이, 애매한 거리에 앉아있는 과장인 나만 눈치챌 수 있는 간격이었다. 시답잖은 농담에 송주임이 크게 웃었고, 최대리는 그 모습을 잠깐 쳐다보고는 다시 고기를 한 점 집어 들었다.
소주잔을 내려놓았다. 손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배 속이 찌르르 아파오는 것이 느껴졌다. 부러웠던 건지 그냥 술에 취한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만 더 이상 소주잔을 들기 싫었던 것은 분명했다.
회식이 언제 끝났는지는 모르겠다. 밖으로 나오니 밤공기가 서늘하다. 나는 대리운전기사를 기다리며 편의점에 갔다. 곧장 가게 안 쪽의 일명 부자존, 쇼케이스 냉동고에 가서 하겐다즈를 하나 집었다. 계산대의 사장님도 피곤에 절어있는 얼굴이다. 나도 저런 얼굴이겠지... 편의점 취식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한 수저 크게 떴다.
시원한 단 맛이 쓰린 속을 달랬다. 세 숟갈쯤 퍼먹었을 때, 유리문 너머로 나란히 걷고 있는 최대리와 송주임이 보였다. 애매한 거리를 유지했지만 하얀 치아가 가지런히 보였다. 무언가 비밀스러운 얘기를 했는지 어깨가 부딪힐 듯 가까워지기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홀린 듯 따라갔다. 가로등 아래에서 그림자가 겹친다. 잠깐 멈췄는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저 애매한 거리가 낯익다. 마음속 찌르르한 고통 대신 간질간질한 느낌이 채워졌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한 입에 마셨다. 이후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강렬한 햇빛에 눈이 부셨다. 휴대폰을 보니 10:00. 속이 쓰리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어떻게 집에 왔지... 하고 생각하며 부엌으로 가서 찬 물을 벌컥 들이켰다. 아내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는 듯했다. 먼저 일어난 아이들은 한창 티비에 빠져있다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아빠 일어났어?"
바람에 쓰러진 허수아비처럼 소파에 누웠다. 작은 얼굴이 올라왔다. 나는 두통이 지끈 아파와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천 근 만 근 이었다. 이내 들리는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
"아빠, 그런데 어제 꿈꿨어? 잠꼬대가 심하던데..."
들려서는 안 될 단어가 하나 더 따라왔다.
"김은진이 누구야? 어제 자면서 계속 김은진, 김은진 찾던데? 우리 유치원에 김은진 있어. 왜 찾았어?"
무겁던 눈꺼풀이 번쩍 들렸다. 코 앞에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호기심이 차 올라 무슨 말이든 집어삼킬 기세다.
들려서는 안 됐을 단어. 세 글자 '김은진'.
순간 화장실에서 들리는 물줄기 소리가 멈췄다. 거실엔 정적만이 흘렀다. 빨리 대답하라며 나를 잡아먹을 듯 바라보는 아이, 물소리가 멈춘 화장실에서 서서히 들려오는 몸 닦는 소리.
아내가 나오기까지 남은 시간 대략 3분 남짓. 기억해내야만 한다. 어젯밤 회식, 편의점 이후의 일들을. 갑자기 오한이 들어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왔고,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빠 어디 아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덜컥, 문이 열렸고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커져갔다. 그리고 들리는 아내의 목소리.
"야, 홍 과장. 죽을래?"
큰일 났다.
김은진은 그 밤에 나와서는 안 될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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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어 : 김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