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의 착각, 입력값 해석 오류.
[첫사랑 알고리즘]
Version 1 실행 중.
오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스템이 불안정합니다.
D-Day : 7
7일 뒤 데이터가 삭제됩니다.
잠시 멍해 있었나 보다. 아들의 작은 손이 눈앞에서 휘휘 움직였다.
"아빠, 정신 차려. 무슨 생각해!"
버즈의 목소리는 여전히 식당 안에 흐르고 있었다.
아내가 씨익 웃었다.
"첫사랑 생각?"
나는 따라 웃어 보였다.
아이들은 창가 쪽에서 물개를 보며 떠들고 있었다.
접시 위 생선구이는 반쯤 식어 있었다.
스무 살의 봄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비밀 다이어리.
그리고 설명도 없이 떠 있던 숫자. D-15.
그때의 BGM은 참 오래도 남아있었다.
처음의 착각. D-7.
"그렇게 억울하면 그냥 우리 사귄다고 하자. 한 달쯤 지나면 잠잠 해지겠지."
이 말도,
“우리 처음 얘기한 한 달까지 이제 3주 남았잖아. 3주 동안만 손잡고 걸어보자.”
이 말도 분명 내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내 입으로 선언한 한 달의 시간은
어느덧 7일밖에 남지 않아 있었다.
나는 그 애도 나와 같은 처음의 설렘으로 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처음의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분명 친구 이상으로 가까웠지만,
연인이라기엔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싸이월드 비밀 공간의 D-day 숫자가 잔인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숫자가 7개밖에 남지 않았을 때,
그 애는 기어코 글로써 선언했다.
'7일 밖에 안 남았네.'
벚꽃이 지는 계절이었다.
나의 수많은 처음들이 허무하게 지고 있었다.
세찬 바람이 불어와 빠르게 질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짧고 단호한 선언에는 변명을 붙일 자리조차 없었다.
그동안 몇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그 애는 과 생활에 질렸는지 쫓기듯 동아리에 가입했다.
나도 괜히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방송부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자연히 우리의 시간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연인처럼 보일 이유가 없었다.
남은 7일은 그저 약속과 책임의 시간이었다.
그때 철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승찬아, 전에 네가 휴지 구해줬을 때 고마워서 내가 서울여대랑 미팅 잡았다. 너 꼭 나와라."
"나 여자친구 있는데... "
"헛소리하지 마. 그냥 어쩌다 사귄 거 안다.
쓸데없이 더 만나자고 매달리지 말고.
어차피 동아리 활동만 하던데. 이번 주 목요일이다."
철기는 찌질했던 나의 지난 시간을 알고 있었다.
D-day를 잊게 만들기 위해
밤마다 그 애의 집 앞을 서성인 날들,
어울리지 않던 구애의 언어들,
그리고 너도 내가 처음이냐고 술에 취해 걸었던 전화들.
"그래. 내일 미팅한다 해. 예쁘냐?"
다음 날은 방송부 면접날이었다.
살짝 긴장되는 기분에 그 애에게 문자를 했다.
'걱정 마. 잘할 거야.' 무미건조한 답장이 돌아왔다.
오히려 그 서늘함이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불을 지폈다.
학생회관 2층. 캠퍼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
방송부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면접 보러 왔습니다."
고요하던 방송부실에 내 목소리가 울렸다.
창가에 앉아있던 여학생이 고개를 돌렸다.
살짝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긴 생머리가 찰랑거리더니 자연스레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안녕. 나도 1학년이야. 방송부 김은진. 만나서 반가워!"
싱그러운 미소가 봄볕과 닮아있었다.
순간 창문으로 들어온 시원한 봄바람이 나에게도 닿았다.
김은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