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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비밀다이어리, 영화관 데이트 후

by 밤결

[첫사랑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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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y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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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미니 홈페이지의 비밀 다이어리.

우리만 볼 수 있는 비밀공간이 생겼다.

그 애와의 관계는 확실히 다른 동기들과는 달랐다.

친구 이상의 관계임은 분명해 보였다.

비밀 다이어리가 증명해 주는 듯했다.


사소하지만 나의 모든 처음을 함께 했던 기억.

처음으로 같이 아이스크림을, 산책을, 버스를, 손을 잡았던 여자.

그 모든 처음의 기억은 나를 설렘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오늘은 처음으로 캠퍼스가 아닌

영화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두 시간 전, 샤워를 마치고 머리에 왁스로 발랐다.

욕심이 과했다. 머리카락이 떡져서 다시 감았다.



영화 시작 30분 전, 먼저 도착해 그 애를 기다렸다.


무슨 영화를 볼까 하고 매표소를 보았는데,

볼 만한 영화가 없다.

어차피 오늘은 여성과 단 둘이 보는

첫 영화관람에 의미가 있다.

지금 이 두근거림이 어떤 영화든 기억에 남게 만들어 줄 것 같았다.


문제는 시간대가 맞는 영화가 저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음란서생>.

20대 남학생에게 너무 매력적인 제목.

그러나 여성과의 첫 영화관람, 그 애와 보면 괜히 어색해질 것 같은데..


고민하던 중 그애가 도착했다.



“안녕, 일찍 왔네? 영화 뭐 볼까? <음란서생> 저것밖에 없네. 어쩔 수 없지 뭐.”


그 애는 무던했다.



매점으로 가 커플세트를 시켰다.

캐러멜 팝콘 하나에 콜라 두 개가 포함된 메뉴다.

팝콘이 하나면 의자 가운데의 손잡이를 들어 공간 수밖에 없다.

이미 손도 잡았는데 괜찮겠지.


......


영화가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의 온도는 서늘했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캄캄했으며,

오직 팝콘을 집기 위해 움직이는

손의 감각만이 또렷했다.



팝콘이 절반 정도 남았을 때,

팝콘박스는 바닥에 놓여 있었다.

우리의 손은 서로의 손을 감싸 쥐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다.

그 애는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외쳤다.



“나가자. 배고프다!”


극장을 나오자 밤공기가 차가웠다.


“뭐 먹을래?”


“아무거나. 근데 빨리 나오는 거 먹자. 엄청 배고파.”


우리는 근처 분식집에 들어가 떡볶이와 튀김을 시켰다.


영화관의 어둠이 아직 눈에 남아 있었는지,

형광등 아래 그 애의 얼굴이 낯설게 밝아보였다.


그 애는 한참을 영화얘기로 조잘조잘했다.


“영화 어땠어?”


“글쎄. 재밌었던 거 같은데."


그 애가 웃었다.


“뭐냐, 너 영화 안 봤지.”



나는 싱긋 웃으며 콜라를 들이켰다.

기억나는 것은 손의 온도뿐이었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짧은 인사였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돌아섰다.


집에 도착하자 온몸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렸다.


잠시 침대에 널브러져 있다가,

번뜩 싸이월드 비밀 다이어리가 생각났다.


컴퓨터를 켰다. 부팅음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비밀 다이어리.

로그인 버튼을 누르는 손이 괜히 떨렸다.


'글이 올라왔을까? 그 애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을까.'


새 글은 없었다.

대신, 화면 오른쪽 상단에 낯선 작은 숫자가 보였다.

이상하게도 오늘 처음 보였다.



[D-15]


별다른 설명도 없었다.

둘만 볼 수 있는 D-day였다.

사실, 누가 봐도 전혀 유추할 수 없는 우리의 끝.


스무 살, 처음이라는 단어는 늘 설렘이 따라왔다.

처음 생긴 비밀의 공간에서 처음으로 '끝'이 주는 서늘함을 깨달았다.


미니미 커플아이템을 꿈꾸던 도토리로, BGM 하나를 구입했다.


매 번 늦어도 이해할게.
누굴 만났니 먼저 묻지 않을게.
고집스런 내 사랑,
너의 말은 변명이라도 믿고 싶을 테니.
눈 비비는 척 눈물 닦아내고,
다음 약속도 잡을 이유 만들지.
니 맘보다 한숨과 친해져도,
널 보기 위해 난 사니까.


<버즈 - 남자를 몰라>


스피커에서 버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올해 최고 인기곡이었는데, 우리의 이야기와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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