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왕리, 달빛데이트, 신체접촉
[첫사랑 알고리즘]
Version 1
테스트가 진행 중입니다.
위치 : 을왕리
상태 : 관계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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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왕리> 앞 바닷가 모래사장. MT의 성지다.
허름한 민박집에는 30명은 족히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방이 있었다. 우리 과 MT에는 꼭 이만큼 넓은 거실이 필요했다.
신문방송학과 명물, '달빛데이트'를 하기 위해.
규칙은 간단했다.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반대편으로 먼저 나가 뒤돌아 있으면, 남학생들이 차례대로 마음에 드는 여학생 뒤로 가서 선다.
여학생들은 뒤돌아 뒤에 선 남학생들을 선택하고, 그렇게 짝이 맞으면 달빛 모래사장으로 데이트를 떠나는 것이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그 애에게로 가서 섰다. 다시 헛소문을 퍼뜨리지 말라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우리는 애매한 거리를 숨기려는 듯 조금 더 나란히 서서 걸어갔다. 평소와 같이 말은 함께 하지 않았다.
대신 을왕리 모래사장을 따라 선선한 바람이 함께 해주었다. 바람에 등 떠밀려 어느새 오락실에 도착했다.
"어, 저기?"
그 애의 손이 가리킨 곳엔 농구공을 던지는 철기가 있었다. 옆에는 우리 과 동기가 있었다. 달빛데이트에 매칭되었나 보다.
"철기야, 축하한다. 성공했구나."
그러자 철기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고맙다. 친구야. 근데 우리 진짜로 진지하게 만나기로 했어. 내 여자친구야."
그러면서 여자친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모태솔로 친구가, 둘이 하나로 포개지는 모습은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철기에게 폭 안긴 여자친구가 쐐기를 박았다.
"너희가 1호 커플이잖아. 얼마나 부럽던지. 너네 보고 철기도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던데? 너희 덕분이야!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
잠시 후 편의점.
정확히 2주 전 여성과 단 둘이 처음 먹었던 그 아이스크림을 지금 을왕리에서 넷이 먹고 있다.
남자 둘, 여자 둘. 모태솔로 고등학교 친구 둘이 더블데이트라니. 설렘 가득한 철기커플의 모습이 이상하게 불편했다.
‘철기 저 놈은 나한테 찜찜함 남기지 말고 담판 지으라고 부추기더니, 본인은 버젓이 멀쩡한 연애를 하고 있네.’ 생각을 하며 그 애를 보았다.
그 애는 지루한 표정을 지으며 태연하게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푸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편의점 바깥으로 지나가는 한 무리의 동기들이 보였다.
달빛데이트 커플 매칭이 끝났나 보다.
그중 한 명이 편의점에 있는 우리를 발견하곤 휘파람을 불었다. 환호성에 보답하듯 철기가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1호 커플임에도 손을 들고 환호에 보답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민망했다. 그 애의 얼굴에도 어색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민박집으로 돌아가는 길,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철기커플을 두 걸음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다.
그 애와 나 사이의 애매한 거리. 솔로도 커플도 아닌 어정쩡한 나의 캠퍼스 라이프. 버스에 앉아 있는 그 애를 볼 때 느꼈던 두근거림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우리의 애매한 거리를 억지로 좁혀보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슬쩍 손을 스쳤다.
그 애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내친김에 그 애의 손가락 끝을 살포시 잡아보았다.
심장이 약간 더 빠르게 뛰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느낌 감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잘못 느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 처음 얘기한 한 달까지 이제 3주 남았잖아. 3주 동안만 손잡고 걸어보자.”
그 애는 말이 없었다.
다만 내 얼굴을 한 번 돌아보더니 다시 철기커플을 응시했다. 그래도 붙잡은 손을 놓지는 않았다.
때마침 편의점에서 마주친 동기들이 지나갔다.
나는 괜히 손을 흔들며 아는 척을 했다.
민박집은 거나하게 취해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후끈한 열기와 함께 술 냄새, 웃음소리, 미묘한 페로몬의 향기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신방과 달빛데이트의 효과는 확실했다.
“야, 여기 앉아.”
누군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켰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 딱 두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그 애와 나의 자리라는 것을 모두가 아는 것 같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틈에 끼어들었다.
어깨가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였다.
술자리 게임이 시작됐다.
이미 술에 취해 있는 동기들은 짓궂었다. 이미 취해있는 동기들의 목표는 늦게 들어온 우리였다. 술잔이 그 애 앞으로 밀려왔다. 잔을 들었다 놓았다 반복하기가 네 번이 넘어갔을 때 그 애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나는 괜히 주변을 한 번 훑어보다가 다섯 번째 잔을 뺏어 들었다.
“내가 마실게.”
술잔을 털어 넣었다. 사실 맛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 애가 나를 보고 있었다. 잔을 비우자 환호성이 터졌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너도 술 잘 못 먹잖아. 괜찮아?”
그 애가 물었다.
“응. 원래 내가 대신 마셔주는 거 전문이야.”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말이 대면식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다시 게임이 이어졌고, 결국 우리는 점점 더 취해갔다.
심장소리가 점점 커져 사람들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먼저 취해버린 그 애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새근새근 숨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이번에는 손등이 닿았다. 이번에도 그 애는 피하지 않았다.
그날 밤, 우리 사이 한 달의 유통기한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의 남은 시간이 지난 일주일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의도치 않게 시작된 연애’의 의미는 이미 조금씩 다른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첫사랑 알고리즘]
데이터 기록 완료
위치 : 을왕리
접촉 이벤트 발생
감정 반응 확인
임계점 도달
Version 1 테스트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