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나는 하나님께서 북한을 품는 마음을 주셔서, 나중에 통일되면 북한에 들어가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 감자 쪄 먹여가면서 공부 가르쳐 줄 거야. 북한 아이들에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알게 해주고 싶어. 학생들 다 내 방으로 불러서 지금 가르치고 있는 SAT, 한국에서 가르쳤던 TOEFL 가르쳐줘서 전 세계로 유학 내보낼 거야. 내가 한국에서 태평양 건너 여기까지 공부하러 왔던 것처럼 말이야. 내가 감자 쪄주면서 아이들 공부 가르치면 여보는 뭐 할 거야?”
갑자기 남편의 얼굴이 소명의 빛으로 무섭게 불타 오르며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내뱉는 말이,
“난, 감자에 소금 찍어 줄 거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L.A. 총각을 소개해준 동생에게 물었다.
“은정아, 그런데 넌 왜 L.A. 청년을 나에게 소개해 주는 거야? 그 형제는 보아하니, 이민 와서 20년 동안 캘리포니아를 떠나본 적이 없는 것 같던데, 난 단 한 번도 서부를 놓고 가게 해달라고 기도해 본 적이 없어. 뭘 보고 그 형제를 나에게 소개해 준거야?”
“언니, 언니가 서부에 살게 될지, 동부에 살게 될지, 공부를 더 하게 될지, 아님, 결혼을 하게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하나님만 아시겠죠. 난, 그냥 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또, 모르죠, 그 오빠가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던데, 같이 공부를 하게 될지, 아니면 언니 공부하는 걸 적극적으로 밀어줄지.”
듣고 보니 그러했다.
언제부터 그 L.A. 형제를 보면서 나를 생각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인디언 미션 선교 발표를 금요일 기도회에서 했어요. 천여 명의 교인 앞에서 인디언 미션 선교팀장으로 섬겼던 오빠가 나와서 발표를 하는데, 긴장하셨던지 조금 떠시는 거예요. 처음에만 그러시다 말겠지 싶었는데, 중간되니까 더 많이 떠시다가 마지막에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셔서 내려오시기에, 아, 저 오빠한테는 어려서부터 웅변을 해서 강단연설이 혼잣말보다 더 편한 재진이 언니가 필요해라고 생각했죠.”
그 얘기를 듣고, 더 궁금해져서 시간을 두고 찬찬히 홈페이지를 들여다보았다. 많은 사진들 중에, 유독 세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대문에 걸린 나바호 인디언 선교 중에 인디언 소년과 함께 뛰어노는 사진을 보며, 이 분 연세가 의심스럽긴 하나 어린 왕자처럼 내면이 천진스러우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사진은 34번째 생일 축하 케이크를 앞에 놓고 찍은 모습이었다. 34살 생일인데, 식당 측의 실수로 초가 33개 준비되었다는 말을 하면서, 젊게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설명을 달아 놓았다. 나 같으면,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초하나 딱딱 제대로 못 맞추느냐고 화를 낼 법도 한데, 어찌 저렇게 환하게 웃으며 젊게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말을 할 수 있나? 어떤 상황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온유함이 엿보였다.
마지막 사진은 2006년 1월 1일에 청년부 수련회에 가서 찍은 모습이었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줄 알았다. 새벽 기도회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해서 붙여진 별명 ‘무릎맨’ 답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사진에 담겨 있었다.
1월 1일이면, 12월 31일을 여느 젊은이답게 밤을 새우고, 부스스하게 맞는 것이 관행이거늘, 무릎으로 간절히 2006년 위해 새해를 기도로 여는 모습이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이 무릎맨과 함께라면, 살면서 서로 부대끼며 의견 충돌이 있다 하더라도, 무릎으로 크신 그분께 나아갈 것이고, 하나님께서 중재자 되어 주시니 어떤 역경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오, 하나님! 저는 이 형제가 하나님께서 제게 정해주신 짝인 것 같은데, 이 형제도 저와 한마음 되게 하소서!
하며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