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나서, 남편에게 물었다. 처음엔 냉랭하던 쪽지가 어떻게 일주일 만에 급반전해서 호감어조로 바뀔 수 있느냐고. 새벽에 기도하는 와중에, 네 앞에 나타난 저 여인을 잡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냐고 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를 엮어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남녀 천사 두 명이 있었는데, 그 두 분 사이에 기가 막힌 말들이 오고 갔었다고 한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남편이 말했다.
“뉴욕 코넬에 나 좋아서 죽고 못 사는 자매가 한 명이 있다고 그러더라고...”
나는 그저 어디 '서' 씨냐고 물었을 뿐이고!
L.A. 기도하는 청년과 연락하면서 하루는 그 형제의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들어가 보니, 내가 그날 첫 방문자였다. 게시판에 '기도의 삶'이라는 코너를 개설한다는 공지사항을 걸어놓았다. 명색의 기도의 삶을 만인에게 알리는 공지사항이건만 이것 역시나 조회수 0이었다. 그렇게 조회 수가 0 인 게시물들이 차곡차곡 쌓아 올려져 있었다.
나 같았으면 조회 수 0 이 부끄러워 내가 로그아웃을 한 뒤, 두 자리 수의 조회 수를 향해 마구 게시물을 클릭했을 텐데, 이미 콩깍지가 끼워가고 있는 내 눈에 비친 L.A. 청년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소신 있는 형제로 보였다.
그다음 날 게시판을 보니, 대출 대박~ 하는 상업용 글이 올라오는 데도 그 글을 삭제하지 않고 본인의 기도제목을 충실히 써서 올리는 것이 아닌가! 콩깍지가 쓰인 내 눈엔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악'까지도 품을 줄 아는 속 깊은 청년으로 보였다.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 물었다.
“저 같았으면 불법 광고 글이 게시판에 올라오면 당장 삭제하고, 신고했을 텐데, 어떻게 지우시지도 않고 가만히 두시는지 정말 승훈 씨는 훌륭하신 분 같아요.”
그러자, 반색하며 답을 한다.
“그거 어떻게 삭제하는데요?”
아, 이 분은 홈페이지 게시물 삭제하는 법을 모르셨구나!
게시판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소원 3 가지’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내가 평생 소원하는 3가지
1) 장학재단 설립
2) Equity Fund 설립 및 운영 - 크리스천 문화, 체육시설에 투자
3) 배우자와 함께 미국 50개 주 여행
L.A. 총각이 전하는 평생 소원하는 3가지 중 첫 번째인 장학재단 설립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1989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민 와서, 학년을 2년 낮춰 10학년에 들어가 ESL 기초 영어 수업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하며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1992년 L.A. 흑인 폭동 사태로 가정이 어려워졌다. 우연히 지원한 중앙일보 킴보 장학생으로 선발되고, 딱한 사정을 전해 들은 기자가 단독 기사를 써주었다.
신문이 나가자마자, 익명의 독지가로부터 연락이 왔고, 1992년 당시 매달 천불씩 열 달 동안만 불의 장학금을 받고 대학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그 이후로 L.A. 청년의 첫 번째 소원은 장학재단을 설립해서 본인과 같은 처지의 학생들의 꿈을 사주는 독지가가 되는 것이었다.
나의 꿈은 공부를 하고 싶으나, 불우한 환경 때문에 하지 못하는, 눈빛이 칼날처럼 서려있는 북한의 학생들에게 감자를 쪄주며 그들의 꿈을 키워주는 선생이 되는 것이다.
L.A. 청년이 설립한 장학재단에서 등록금을 지원하고, 나는 감자를 쪄 먹여가며 공부를 가르쳐주고, 우리는 필시 하나님께서 엮어주신 환상의 동역자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나 혼자 들었다!
게다가, 이 청년과 함께라면 덤으로 미국 50개 주 여행은 물론이요, 크리스천 문화, 체육 시설 또한 무제한 이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 청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