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린 왕자랑 결혼할 거야

by 서재진

배우자 첫 번째 기도 제목은 “새벽에 기도하는 청년”이었다. 새벽마다 깨워 함께 기도하러 갔던 동생에게 귀가 닿도록 난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건 목회자도 지키기 힘든 항목이란다.

20대에는 회사원이 그렇게 멋있게 보일 수가 없었다. 각이 지도록 잘 다려진 양복에 007 가죽 가방을 옆으로 메던 손에 들던 상관없이 성공을 향한 야망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가진 회사원이 내 이상형이었다. 새벽이면 영어 신문을 손에 쥐고 학원으로 자기계발하기 위해 달리는 회사원을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었는데, 30을 넘으니 그들이 시시해 보인다. 야망을 가진 자도, 유학 나와 학문에 정진하는 자도 내 눈에는 그저 나와 다를 바 없는 피조물로 여겨졌다.

그즈음, 동생이 묻는다. 언니는 어떤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으냐고. 그래서, 난 자신 있게 답했다.

“난, 어린 왕자랑 결혼할 거야.”

동생 눈이 점점 커지면서 급기야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앞으로 내가 십 수년간 이 상태로 살 것 같다는 예감이 스쳐 지나갔나 보다.

세상 유혹에 물들지 아니하고, 야심 따위도 절대 넘볼 수 없는 순수함을 가진, 영혼이 맑은 어린 왕자와 같은 사람이 내 이상형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하고 글 쓰고 나를 표현하는 일을 좋아하니, 말 많은 나를 부끄럽다 여기지 아니하는 들을 귀가 있는 돌쇠 형제를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찬양을 함께 할 수 있는 형제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나는 열심히 찬양하는데, 구경만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악기든, 소리든 찬양 사역을 함께 하고 은혜를 나눌 수 있는 분이 배우자이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와 같은 평신도 사역의 비전을 가진 형제를 만나고 싶었다. 내가 섬기고 싶은 평신도 사역의 방향이 같아서, 우리 둘이 하나님을 섬길 때 은혜가 배가 될 수 있는 형제를 만나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했으면 하고 바라왔다.

15, 13, 7, 6, 4, 2번. 중학교 1학년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내 번호는 항상 앞자리였다. 고 3 때 1번이 안되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던가. 그래서, 2번으로 나의 고등학교 생활을 마쳤다. 중학교 1학년때 성장을 멈춘 나로서는 항상 작은 키가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 작은 키를 물려주고 싶지 않으니, 키가 큰 배우자를 만나 종자 개량을 해주십사 간절히 기도했다.

처음에는 184cm 되는 청년을 보내달라고 했으나 아무도 안 나타났다. 설령 나타났다 하더라도 윗 공기를 즐겨 마시는 키 큰 형제님들은 나에게 눈길조차 주질 않는구나! 그래서, 내 기도 제목이 너무 상향 조준되었음을 깨닫고 181cm로 낮췄다.

182cm 인 형제와 183cm 형제가 동시에 나타났다. 그래서, 간절히 새벽에 기도했다. “주님, 182입니까, 183입니까!” 한 달도 안 되어 두 분 모두 ‘날파리’ 임이 증명되었다. 도저히 이제는 지쳐 배우자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체적으로 ‘배우자 기도 안식년’을 갖겠다고 선포했다.

돌아보니, 내 과한 욕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종자 개량에 관련된 기도제목을 수정하여 ‘주여, 저보다 큰 청년을 보내 주소서’라고 기도하니 세상 모든 형제들이 다 포함되는 듯하다!


추신: 2006년 9월 25일 L.A. 총각을 소개받아 매일 도서관에서 싸이월드 업데이트하며 행복했던 순간을 담은 사진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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