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실 수 있잖아요

2002년 12월 9일

by 서재진

평소보다는 늦게 일어나고 새벽예배도 없다만 주일엔 난 항상 고단하다. 주일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육적으로 고단해서 말 그대로 파김치다. 어깨도 쑤시고 점심도 제대로 못 먹어서 허기진 상태에서 뭐든 먹으면 속도 좀 울렁거린다. 아이들이랑 뛰어놀고 유아반 교재, 카세트 플레이어, 인형, 간식 이렇게 무거운 짐 들고 지하에서 3층까지 오르락내리락하면 온몸에 땀도 흥건히 배어 도저히 샤워하지 않고는 도서관에 갈 수가 없다. 샤워하기 전에 점심 겸 저녁으로 밥을 먹고 나면 눈이 확 풀리고 그제야 몸이 녹아들어 가듯 그렇게 졸음이 쏟아지곤 한다.


한 번은 낮잠 참고 도서관에 갔는데 두통에 속도 울렁거려서 12시까지 공부하지 못하고 10 시에 겨우 기듯이 집에 와 쓰러져 잤던 기억도 있다.


오늘은 순두부찌개를 끓여 먹었다. 두부 숭숭, 쉰 깍두기도 넣고, 양파 피망 계란도 넣고 햄도 넣었더니 이건 순두부찌개가 아니라 거의 우리 엄마 특유의 충청도 잡탕찌개가 되었다. 찌개 끓여 먹고 나서 수북이 쌓인 설거지 하고 방구석구석 허한 마음에 치고 나니 순번 대로 잠이 쏟아진다. 1시간 눈 부치고 샤워하고 가방 챙겨 다시 도서관에 오니 밤 8시 45분 경이다.


오늘 영어예배 앞서 찬양을 하는데 눈물이 와락 쏟아지는 걸 억지로 참았다. 그냥 눈곱 떼는 척하며 두어 방울 흘리고 말았다.


"하나님, 저 이스라엘 백성 광야에 40년 동안 내버리신 것처럼 이번학기에도 그렇게 내 버리실 거예요? 한 학기면 충분하지 않나요? 겉으로는 잘 지내는 척 하지만, 저 많이 힘들어요. 자존심도 많이 꺾이고, 지금쯤이면 겸손해진 것 같은데. 이제는 좀 겸손한 마음으로 주시는 돈 받으면서 공부할 때도 된 것 같은데... 다른 계획 있으신 거예요? 말씀해 주세요... 하나님, 저 다음 학기 돈 주시는 거 할 수 있으시잖아요. 애당초 자격도 안 되는 저 여기 보내셨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저 공부시키셔서 쓰실 계획 있으셔서 그런 거 아니셨어요?... 하나님은 하실 수 있잖아요. 광야와 사막에 물이 나게 하시고, 꿀도 흐르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잖아요. 너무하세요..."


아직 내가 더 연단을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하나님 이제 곧 내 앞에 펼치실 더 큰 계획과 뜻을 모르고 지금 내가 어린아이 투정하듯 불평하는지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제까지 큰소리 떵떵 치며 내 믿음이 어쩌고저쩌고 여기서 '서권사'가 내 별명이네 하면서 거만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 모두 다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회개하련다.


주시면 감사히 받는 것이고, 아니 주신다면 과감히 발길 돌려 한국으로 갈 거다. 이런 말 함부로 쉽게 내뱉는 거 아니라는 거 잘 알지만, 이제는 좀 쉬고 싶다. 한 학기 휴학하고 한국에 돌아가서 신중히 재정 지원 문제에 대해 알아보고 나서 다음 갈 길을 준비해야겠다. 이 모든 일들이 나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맞아떨어지길 바라고 기도할 뿐이다.


'지금 제 생각이 하나님 보시기에 괘씸하다면 그냥 절 쳐주세요. 버릇없이 굴고 있다면 절 혼내주세요. 따끔하게 매를 들어 때려주세요. 그렇게 죗값 치르고 나면 오히려 맘이 더 편할 것 같아요. 이 일로 시험에 들지 않게 붙들어 주세요. 지금 제 맘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시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길 일진대 하나님 보시기에 경망스럽게 박사 운운하며 대학 강단이 어쩌고 저쩌고 했던 저를 겸손하게 주님 앞에 무릎 꿇게 해 주세요.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 다 잊고 입술로는 온통 불평만 내뿜는 그런 악한 자가 되지 않도록 제 생각과 입술을 지켜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추신: 기도부탁드립니다. 그전엔 제 알량한 자존심에 이런 기도부탁 안 드리고 저 혼자 기도했는데, 이젠 그런 자존심 다 버리고 제 글 읽으시는 여러분께 기도부탁 드립니다. 저 혼자 기도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여러분의 기도를 빌어 하나님께 간구하고 싶습니다. 두셋이 모여 기도하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더 큼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마음의 평안과 기쁨 잃지 않도록 기도해 주세요. 하나님 하시는 일을 의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주십사 기도해 주세요. 이곳에서 하는 공부가 잘 마무리되어 하나님께 더 큰 영광 올려드릴 수 있도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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