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눈물, 주님의 눈물병에 담습니다.

2004년 4월 16일

by 서재진

일기 쓰려고 컴 앞에 앉으면 오만가지 생각에 휩싸여 취해버린다. 딴짓도 겁나게 많이 하면서, 일기 쓸 이 시간이 되면 ‘내가 일기 쓸 시간이나 있나? 이것도 딴짓이야, 시간낭비하는 거라고. 사치야 사치’하면서 곧잘 자학을 하곤 한다. 에이, 괜스레 눈물이 날라한다... 왜 그러지? 소녀도 아닌 것이 소녀처럼~!


어제 하도 나를 주체하기 힘들어서 오피스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그러다가, 정신을 챙겨서 오랜만에 수영을 갔다. 20 바퀴 정해진 시간 내로 다 도느라고 진 빠지는 줄 알았다. 그래도, 몸을 그렇게 굴려주니까 그나마 살 것 같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 거지? 과친구들끼리 모였을 때 스쳐 지나갔던 말이 내 맘에 그렇게 비수처럼 꽂혔던 걸까? 제는 열등의식 때문에 일찍 졸업해야 돼’ 하던 그 말이 난 그렇게 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남들 2년에 끝내는 석사 나는 장작 4년에 걸쳐했다. 결국 내가 하루라도 빨리 석사를 마쳐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남들보다 더디 가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하는 자기 열등의식 때문이란 말인가?


‘너무 약해. 아무한테나 막 상처받고, 아무 말이나 상처로 들리고, 나 너무 약해.’


아침에 일어나니 오전 10시가 다 되어있다. 시계가 눌러져 있는 걸 보니, 잘 때 알람 듣고 깨서 끄고 다시 잤나 보다. 고단한 건지, 아님, 나사가 하나 풀린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침 먹고, 샤워하고, beebe lake를 따라 걸어서 학교에 나왔다. 걸어도 걸어도 좋기만 한 이 길. 걸으면 걸을수록 더 욕심이 나는 이길. 이번에 코넬 한 곳만 고집부리며 오직 믿음하나로 박사과정 지원한 것이 안돼서 내가 오기로 하나님 뜻에 어긋나게 점점 더 코넬을 좋아하는 건지, 박사과정 안 되었다는 기정사실에 순종하기 싫어서 더 악착같이 코넬을 좋아하는 건지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겠다.


‘저도 저를 잘 모르겠어요. 하나님. 입으로는 머리로는 수도 없이 순종한다고 하면서 가슴은 그렇지 않아요. 하루에도 열두 번 더 가슴을 치면서 안타까워해요. 하나님, 저 어쩌면 좋아요. 이 좋은 beebe lake 산책길, 언니랑 같이 걷고 싶어요. 이 좋은 학교 구석구석, 엄마 아빠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지금 제가 걷고 있는 이곳에서 제 조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하나님.’ 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린다. 제 눈물, 오늘도 주님의 눈물병에 담습니다.


청년부 홈 업데이트하고, 청년부 홈페이지로 사용되고 있는 커뮤니티 용량이 얼마 안 남아서 자료정리를 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지구 정반대 편 그리고 이곳의 기사들을 읽고, 다시 오피스로 돌아왔는데,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네. 오후 3시가 다 되어간다. 말씀묵상하고 뭐 하고 보니, 민선이 폴 한국말 과외 갈 시간이 되었다. 오늘 민선이 아버님이 깜빡하시고 민선이랑 폴을 데리고 잠시 쇼핑을 나가셔서 과외시간인데도 집에 아무도 없네. 다행히 민선이 어머님이 2층에 계셔서 어머님 Beta 하고 얘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늦게 온 민선이랑 폴이랑 함께 놀다가 저녁 같이 먹었는데, 어찌나 폴이 수다스럽던지. 민선이도 막 오버한다. 얘들이 내가 한국말 과외하고 바로바로 곧장 집에 가다가 오늘은 특별히 과외 후에 민선이 폴하고 함께 저녁을 먹으니까 좋은가 보다. 저녁 먹고 나서 민선이 아버님께서 과외비를 10불 더 얹어서 21불 주셨다. 그 돈으로 장을 봤다. 여느 때처럼 빈책가방을 메고 갔지. tops express에 가서 식빵, 우유, 크림치즈, 시리얼, 자몽, 오렌지, 입술에 바르는 반짝거리게 하는 거, 이렇게 샀는데 17불 조금 넘게 나왔다. 값을 치르고, 씩씩하게 가방에 잘 담아서 학교 오피스로 걸어왔다.


컴 앞에 앉아서 멜만 확인하려고 했는데, 자꾸 딴짓이다. 이러는 나를 어찌 설명해야 하나. 오늘 조금 충격을 받은 멜이 있었다. 무척 황당하고 화가 나는 메일이다. 석사 디펜스 날짜 잡으려고 부전공 지도교수님에게 멜을 보냈는데, 5월 말까지는 내 논문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불쌍한 어투로, 5월 4일 비행기표 끊어서 한국 가야 한다고. 비자가 5월 23일에 끝나서 여기 미국에 머물 수가 없다고 말씀드렸다. ‘괜스레, 속이 상하네... 난 도대체 왜 이렇게 늑장을 부린 거지? 왜 비자가 다 끝나도록 석사하나 마치지 못했느냐고’ 나를 다시 다그쳐본다.


‘아냐, 넉넉하게 생각해야 해. 이번에 디펜스 못하면 일단 한국 갔다가, 잠시 여행 비자로 미국 나오면 되는 거지 뭐. 편하게 생각하자. 어차피 지난여름 비행기표 취소할 때 항공사로 들어가서 올해 안에 반드시 써야만 하는 비행기 표도 있으니까.


지금 새벽 1시 47분이다. 집에 가야 할 시간인데, 그냥 오늘 학교에서 밤을 새워버릴까 별 생각이 다 든다.


[내 모든 고민을 들어주었던 고마운 Beebe Lake at Cornell]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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